연금개혁으로 돌아보는 언론의 역할

[언론 다시보기] 윤형중 LAB2050 대표

윤형중 LAB2050 대표

일간지 현장 기자였던 2016년에 남몰래 추진하던 출판 프로젝트가 있었다. 회사에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출판사를 섭외했다. 출간 시기는 2017년 중반으로 계획했다. 책의 내용은 박근혜 정부의 공약이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다는 빼곡한 취재이자, 정책 검증이었다. 대선을 앞두고 출간되면 자연스레 화제를 모으고, 정책 보도의 중요성을 환기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현실은 달랐다. 갑작스런 탄핵 정국으로 “조속히 원고를 마무리하지 않으면 출판을 접겠다”는 출판사의 경고를 받았고, 부랴부랴 원고를 마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된 이틀 뒤인 3월13일 책 ‘공약파기’가 출간됐다. 안타깝게도 탄핵 당한 대통령의 공약과 정책을 궁금해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오래된 경험을 굳이 꺼낸 이유는 이 책의 출간이 나름 정책 저널리즘을 언론에서 구현하기 위한 ‘빅픽처’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정책 보도로 화제를 모으고 반향도 일으킬 수 있음을 입증해 언론사에서 정책 저널리즘을 체계화하고자 했지만, 대통령 탄핵으로 시작부터 어그러졌다. 결국 현실은 정치부 기자로서 선거의 한복판에서 철저히 비주류화된 정책을 목도하는 것이었다.


최근 연금개혁을 둘러싼 논의를 지켜보면 정책에 대한 언론의 딜레마를 다시금 절감한다. 정책이 중요한 것은 이해하지만, 깊이 있는 정책 보도를 하기가 쉽지도 않을뿐더러 독자의 관심을 받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연금개혁에 대한 언론의 주된 보도는 ‘기금 소진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거나, 연금개혁안에 대한 각 입장 간 차이를 나열하는 데 그쳤다. 국민연금과 노후보장 정책의 상태가 어떤지, 연금개혁안 각각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궁극적으로 정부가 국민들의 노후 보장에서 책임질 수 있는 수준이 어디까지인지 등에 대한 논의가 심도 있게 이뤄지지 못했다. 언론이 제대로 된 공론장을 만들지 못하니, 개혁이 지체되는 현상도 반복됐다.


연금은 국민 대다수의 노후를 책임지는 중요한 사회보장제도인 동시에 제도의 안정성, 지속가능성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그때마다 적절한 개혁과 조정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연금제도를 설계하면서 앞으로의 연금 기금의 재정을 5년마다 추계하도록 제도화했고, 2003년 처음으로 재정추계가 시작됐다. 첫 재정추계의 결과부터 충격적이었다. 당시의 보험료율(9%)과 소득대체율(60%)이 유지될 경우 2036년에 기금이 적자로 전환되고, 2047년에 완전 소진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참여정부와 17대 국회는 2007년 연금제도를 개혁했다. 당시의 개혁이 옳았느냐는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재정추계에 따른 개혁을 미루지 않고 한 셈이었다. 하지만 2008년 2차 재정추계부터 2023년 5차 재정추계까지 결과는 개혁의 시급성을 알렸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그때마다 해야 할 일들을 방기했다. 연금개혁의 좌절은 공론장의 실패인 동시에 언론의 실패였다. 재정추계를 하는 이유 자체가 ‘현황에 맞게 공론장에서 개혁의 동력을 만들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언론이 역할을 방기하진 않았다. 시사IN의 전혜원 기자, 주간경향의 송윤경 기자는 상당 기간 연금 의제를 입체적으로 다뤘고, 경향신문은 여러 견해를 가진 전문가들이 논의하는 장을 마련했다. 중앙일보는 기금 안정론의 입장을 주로 기획과 칼럼을 통해 제기했고, 한겨레신문은 전문성 있는 논설위원들이 중요 국면마다 정확한 해설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이 언론계 전반으로 퍼지진 않았다. 정책 저널리즘의 역할은 좋은 질문을 통해 의제와 정책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고, 사회가 합의할 만한 지점을 찾는 것이다. 그렇게 숙의와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정책은 현실과 정합성을 가지고 사회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


현재 그 어느 때보다 정책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국민연금을 비롯해 건강보험과 여러 사회 복지 정책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고,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저출생 고령화 추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전환적인 정책이 요구된다. 이런 전환기에 과연 정책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세상이 바뀌는 속도에 맞게 정책을 전환할 수 있을까. 결과는 언론이 정책 저널리즘을 얼마나 구현하느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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