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자협회가 1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제18회 ‘기자의 날’ 기념식을 열었다. 기자의 날은 1980년 5월20일 전두환 신군부의 언론 검열에 맞서 전국의 기자들이 일제히 제작 거부에 들어간 날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2006년 제정됐다.
이날 기념식에는 김동훈 한국기자협회 회장을 비롯해 역대 기자협회장들이 참석해 기자의 날을 자축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표완수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 송기헌 민주당 의원, 조성호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김동현 동아투위 부위원장, 성한표 조선투위 위원장, 고승우·유숙열·현이섭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이용성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 윤창현 전국언론노조 위원장, 양만희 방송기자연합회장, 김경희 한국여성기자협회 회장 등도 참석했다.
김동훈 회장은 “1980년 5월 광주에선 진실을 알리기 위해 많은 선배 기자들이 신군부의 만행과 현장의 참혹한 상황을 취재했지만, 신군부의 총칼 앞에 진실은 땅에 묻혔고 허위 조작된 뉴스만이 전달됐다”며 “이에 기자협회는 1980년 5월 20일 자정을 기해 계엄사의 검열을 거부하고 제작거부 투쟁에 돌입했다. 이를 계기로 당시 신군부와 언론 사주에 의해 해직된 기자만도 1000여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자의 날을 광주에 가둬둬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10.24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동아일보에 가둬둬선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80년 5월 투쟁은 전국적으로, 동시 다발적으로 벌인 투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김 회장은 “불편부당하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는 언론의 생명이다. 우리의 기사는 천년이 흘러도 부끄럽지 않아야 하고, 어떤 어려움에도 기사를 팔아먹지 않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어야 한다”며 “이런 고민과 분투와 각오라면 끝내 위기에 빠진 언론을 소생시킬 것”이라고 기자들에게 당부를 전하기도 했다.
이날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기자의 날 기념식을 찾아 축하의 뜻을 전했다. 김기현 대표는 축사에서 “신군부 독재에 강력한 저항을 한 기자들의 노고가 오늘 대한민국의 번영된 모습을 만든 주춧돌”이라며 “매일 아침 기자들에게 시달리는 게 일이긴 한데 그 기사들이 있기 때문에 국민들은 진실을 접하는 기쁨이 있을 거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들어 온 기자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바탕으로 국민들이 잘 사는 나라로 나아가는 등대, 나침반이 되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광온 원내대표는 “여기 계신 동아투위, 조선투위 선배님들의 역사는 한국 언론의 긍지를 지켜주는 가장 강한 토대”라며 “언론의 환경이 다변화된 상황 속에서 언론인들은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다고 느낀다. 한국 언론의 자유, 언론 시장의 정상화, 언론인들의 좀 더 나은 근무 환경 조성을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지혜와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정미 대표는 “자유의 기본 가치를 지키는 것은 언론의 자유로부터 시작된다고 믿고 있다. 그 어떤 권력도 언론에 재갈을 물려서는 안 되기에, 숱하게 외치고 강조돼 온 지난 1년간의 자유라는 단어가 때로는 허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며 “객관성과 공정성의 잣대는 언론인 스스로가 자기에게 엄격해야 할 일이고, 권력의 잣대가 관여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다. 권력은 언론 앞에 자신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감시당해야 할 대상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조성호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축사에서 “전두환 신군부 지령 하에 당시 언론들은 광주항쟁을 철저히 은폐하고 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하는 등 역사에 엄청난 죄를 지었지만, 긴긴 세월 그 언론들 중에 하나도 사죄한 적이 없다”며 “기자의 날은 5·18 당시 허위 날조 보도를 하고도 사죄를 하지 않은 언론들이 역사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제대로 사죄해야 함을 일깨워주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의 혼' 상에 신군부 보도지침 폭로한 김주언 이사장
이날 기념식에선 축사에 이어 ‘기자의 혼’ 상 시상식이 열렸다. 기자협회는 “서슬퍼런 신군부의 언론 검열에 맞서 1986년 월간 말지를 통해 보도지침의 존재를 폭로해 구속 수감되는 등 언론 자유를 위해 온몸으로 저항한 기자의 표상”이라며 김주언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에게 기자의 혼 상을 전달했다.
김주언 이사장은 한국일보 기자 시절 1985년 10월부터 1986년 8월까지 날마다 문화공보부가 각 언론사에 시달한 보도지침을 수집해 584건을 폭로했다. 이 일로 외교상 기밀 누설과 국가모독죄로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10년 가까운 오랜 법정 투쟁 끝에 1995년 12월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김주언 이사장은 “기자로 사회에 발을 디딘지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받았던 어떤 상보다도 뜻깊은 상”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권력의 언론통제에 과감하게 맞서며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기자상이 필요할 때”라며 “그것이야 말로 기자의 혼을 바로세울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소감에서 “독재정권 치하에서 엄격하게 조종되던, 보도지침이라는 언론의 족쇄는 풀렸다. 그럼에도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아직도 밑바닥을 헤매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후배 기자들에게 여러 조언을 전했다.
그는 “기자들에게는 하이에나 떼처럼 몰려들어 특정인에게 글폭탄이나 말폭탄을 쏟아낸다는 비판 아닌 비난이 따라다닌다. 의혹이라는 이름의 폭탄”이라며 “물론 의혹 제기 자체가 진실을 추구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임은 분명하지만 정확하지 않은 내용으로 한 사람의 인격을 박살내는 경우도 많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군사독재시절 당시 젊은 기자들에게 회자되던 기자라는 단어를 한자로 다르게 표현해 풍자한 ‘기자론’을 소개하면서 그 중 ‘밑바닥을 기자’라는 말은 오늘날 기자들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밑바닥을 기면서 약한 자의 설움을 몸소 체험하고 그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기 위해 언론의 기본 역할인 권력감시와 환경감시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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