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사기를 최초로 발명한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와 미국의 에디슨은 정작 영화사업에 실패했다. 에디슨은 1918년 파산 직전까지도 영사 기술 전문가를 더 고용했다. 더 낮은 제작비로 짧은 영상을 많이 만들어 최대한 여러 번 상영함으로써 입장료 수익을 올리려는 기술 효율성 관점에 갇혀 있었다. 그 무렵, 헝가리 이민자 출신의 아돌프 주커는 미국으로 밀려드는 이민자들의 고단한 삶을 이해했고 에디슨과는 다른 포맷의 고비용 고품질 콘텐츠를 만들어 이들을 위로했다. 그는 모피 유통업으로 성공했던 사업 로직을 영화에 접목해 파라마운트사를 설립함으로써 세계 영화 산업의 게임 룰을 바꿨다.
에디슨 vs. 주커 형 경영자
신기술로 판이 바뀌면 새로운 게임 룰이 생겨나고, 승자와 패자가 교차 돼 온 것이 미디어 산업의 역사다. 신기술로 탄생한 영화 산업을 기술 개척자가 아니라 시대 정신과 콘텐츠의 힘을 이해하고 기술을 활용한 미디어형 기업가가 차지했듯이 말이다. 치밀한 재무적 계산과 시대 정신을 읽는 비재무적 콘텐츠 로직 사이의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아야 성공하는 비즈니스. 일부 학자들은 이런 미디어 산업의 특성을 ‘역설적 혁신’이라고 부른다. 특히 변혁기에는 기존 조직에는 없던 관점을 융합시켜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 한가지 로직으로 기울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버즈피드 창업으로 레거시 미디어의 규칙을 바꿨다고 평가받던 MIT 출신의 엔지니어 조나 페레티가 결국 버즈피드 뉴스 사업을 접기로 했다. 그의 방점은 트래픽을 극대화하는 마케팅 플랫폼을 만드는 데 있었다. 뉴스는 트래픽의 도구였다. 그런 점에서 조나 페레티는 주커보다는 에디슨에 가까운 인물이다.
뉴욕타임스 지배 구조가 낳은 리더십의 다양성
버즈피드와 뉴욕타임스(NYT)간 운명의 교차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새로운 포인트가 드러난다. 마크 톰슨 전 NYT CEO는 성공 요인을 한 가지만 꼽으라면 ‘프로덕트 매니저(PM)’의 역할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PM은 뉴스 콘텐츠, 편집, 유통, UX(이용자 경험) 디자인과 비즈니스 모델까지 뉴스 기업의 모든 부서를 넘나들며 혁신을 조율하는 관리자다. 다른 관점들 간 연결을 최적화하는 사람이다. 편집국의 발언권이 강한 레거시 미디어의 문화 속에서 NYT는 어떻게 다양한 배경의 인재를 영입하고 PM 제도를 안착시켰을까.
그 단초는 독특한 지배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1896년 아돌프 옥스가 NYT를 인수한 뒤 1935년 무남독녀 외동딸 이피진과 사위 아서 헤이즈 셜츠버거에게 상속하면서 회사는 가족 신탁사 소유로 전환됐다. 둘 사이의 자녀 4명은 1990년 미국 저널리즘 수호의 수탁자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NYT 지배 지분을 매각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들 3세대 4명은 총 13명의 4세대 자녀들을, 이들이 다시 총 27명의 5세대 자녀들을 낳았다. 현재 NYT의 회장 아서 그레그(A.G.) 셜츠버거는 5세대 멤버의 경쟁에서 후계자로 낙점받았다. 이 독특한 지배구조는 두 가지 면에서 차별성을 낳았다. 첫째, 매각이 불가능하고 둘째, 세대를 거칠수록 다양한 후계자 인재풀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디지털 뉴스 혁신의 구심점, 프로덕트 매니저 리더십
NYT에 PM 개념을 안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데이비드 퍼피치도 5세대 중 한 명으로 셜츠버거 현 회장의 사촌이다. 그는 듀크대 경제학과 하버드 MBA를 졸업한 뒤 DJ 양성 음악 아카데미 등 2개의 벤처기업을 성공시킨 경력을 갖고 있다. 컨설팅사 부즈알랜해밀턴에 입사해 소비재, 미디어, 디지털 산업 담당 컨설턴트로도 일했다. 저널리스트의 길을 걸은 셜츠버거 회장과 달리, 자기 사업을 개척하려고 다른 길을 걸었던 그가 NYT에 조인한 계기는 ‘신문의 위기’였다. 2007년 NYT의 첫 유료구독 실험 ‘타임 설렉트’가 실패로 막을 내리면서 ‘디지털 시대에 정보의 유료구독은 불가능하다’는 관념이 만연하자 그는 NYT에 이메일을 한 통 보낸다. 디지털 페이월이 신문의 미래라고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2008년 11월 이 이메일을 쓴 지 1년여 만에 그는 ‘디지털 유료구독 재시도’ 작업을 도와달라는 NYT의 요청을 받는다. 그가 이끈 팀은 주변의 반대와 우려를 뚫고 2011년 디지털 페이월을 성공시켰다.
NYT는 조직을 재편하면서 ‘상품 개발 그룹’을 신설해 퍼피치에게 책임을 맡겼다. 그는 기자, 엔지니어, 디자이너, 사업개발, 마케터 등 다양한 배경의 팀원들로 구성된 비뉴스 상품(stand-alone product)팀을 이끌며 쿠킹, 와이어커터 등을 잇달아 성공시켜 뉴욕타임스 비즈니스 모델의 전환을 성공시키는 데 큰 몫을 했다. NYT에 PM이라는 새로운 직책을 안착시킨 일등 공신인 셈이다. 지금은 최근 인수한 스포츠지 디애슬레틱(The Athletic)의 발행인으로 NYT 뉴스와 디지털 번들링 통합 작업을 지휘하고 있다. 그는 신탁회사 주주의 일원으로 어릴 때부터 매년 열리는 이틀짜리 비공식 가족 워크숍에서 저널리즘 책무에 대한 교육을 받아왔다. 덕분에 뉴스의 본질을 이해하면서도 밖에서 쌓은 디지털 비즈니스 경험을 NYT에 접목할 수 있었던 셈이다. NYT 쿠킹 상품 개발팀에서 퍼피치와 함께 일했던 한 에디터는 그의 성공 리더십의 핵심을 서로 다른 부서의 관점 각각을 이해하고 함께 혁신하도록 이끄는 역량으로 꼽았다. “저널리즘을 가장 똑똑하게 이해하는 비-저널리스트”라는 평가도 뒤따른다.
테크 기업과 레거시 미디어간 인재 교류가 혁신의 견인차
반면 저널리즘에 대한 이해가 없는 제프 베조스는 워싱턴포스트(WP) 인수 후 아크 등 디지털 기술 부분을 지원하되 편집국에는 관여하지 않고 프레드 라이언 현 발행인에게 맡겼다. 라이언은 레이건 행정부의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이다. 디지털 정치뉴스 매체 폴리티코 공동 창업자지만, 언론인이라기보다는 정치인에 가깝다. 제프 베조스에게도 서로 상의하기보다는 보고하는 상하 관계에 가까워 경직된 리더십의 한계를 보인다는 평가다.
이렇게 연결자의 역할을 하는 PM은 영미 언론계의 디지털 혁신을 확산시키는 중심으로 부상했다. 미국 35개, 영국 14개 언론사에 고용된 적이 있는 PM들의 프로필 데이터를 분석한 2021년의 한 연구를 보면, 테크 기업들이 레거시 미디어에 PM 인력을 공급하고 있다(그림 1과 2). 그림에서 원과 화살표가 클수록 화살표를 받는 기업들에 인력 공급자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언론사 중에서는 미국의 경우 NYT, WP, NPR 등이, 영국의 경우 BBC, FT, 채널4가 언론계 PM 사관학교 역할을 한다. 특히 NYT는 페이스북, 구글, 애플과 굵은 선으로 연결돼 있다. 빅테크 3사와의 이직이 활발하다는 뜻이다. 결국, NYT와 테크 기업 간 활발한 이직 덕에 디지털 플랫폼 경험을 한 인력이 뉴욕타임스로 유입돼 PM 역량을 키우고 다른 언론사들로 이동하면서 혁신이 전파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미국 언론사의 PM 10명 중 4~5명(42%)은 비언론 출신으로 분석됐다. 반면 디지털 전환기의 한국 언론사 경영진은 대부분 기자 출신들로 채워져 있다. 광고 등 비즈니스 분야도 기자 출신들이 맡는 사례가 늘고 있다. 편집국 문화의 지배 속에서 다른 분야의 경력자가 들어와도 융합되지 못하고 튕겨져 나가곤 한다.
이종 교배 없는 동종 문화의 한국 언론이 갖는 한계
신기술의 등장으로 판이 바뀌는 시기에 ‘다른’ 경험의 유입과 연결은 미디어 경영의 성패를 가른다. 핵심 인력이 어떤 구성일 때 성과가 높은지 연구한 논문들의 결론을 단순화하면, 인력의 다양성은 역 U자형의 성과를 보인다. 어느 정도까지는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끼리 팀을 이룰수록 성과가 좋지만,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성과가 하락으로 반전된다는 것이다.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적정 수준으로 섞여 있고, 기존 멤버들이 이들의 ‘다른 관점’을 잘 수용할 때 성과가 높아진다는 얘기다. 같은 배경을 가진 사람들끼리 팀을 이루면 손발이 착착 맞아 일할 맛이 난다. 하지만 같은 사고의 반복은 관성으로 이어진다. 특히 혁신기에 이런 인적 구성은 치명적이다.
혁신이란 이전에 연결되지 않았던 지식, 경험, 노하우가 새롭게 연결될 때 나온다. 편집국 역량이 탄탄하고, 테크 역량이 강해도 서로 융합되지 않으면 실패한다는 점을 최근 재매각설까지 나도는 워싱턴포스트의 부진과 버즈피드 뉴스의 중단이 보여주고 있다. NYT 사례는 다양한 관점을 융합시키는 PM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 증명한다. 한국 언론사들이 편집국 중심의 ‘동종 문화’와 ‘디지털 트래픽’ 강조의 단선적 경영에 대해 한 번쯤 돌아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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