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쓴소리… 하고 싶은 말만 울려퍼졌다

윤 대통령, 취임 1년 기자회견도 패싱… 더 요원해진 언론과의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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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취임하고 매일 봤잖아요? 근데 안 보니까 좀 섭섭하죠? 그런데 나는 살이 찌더라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일 용산 어린이정원 개방을 기념해 열린 출입기자단 오찬 간담회에 ‘깜짝’ 등장해 이처럼 농담 섞인 말을 던졌다. 대통령이 출입 기자들과 공개된 자리에서 만난 건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 중단 이후 반년만이다. 윤 대통령은 당선 직후 ‘일하는 정부, 소통하는 열린 대통령실’을 만들겠다며 청와대를 떠나 용산에 집무실을 차렸고, 취임 다음 날부터 용산 청사로 출근하면서 기자들과 약식 문답을 시작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아침 기자들을 만났다. 그러나 이 만남은 지난해 11월18일 61회째를 끝으로 중단됐다. 당시 대통령실은 코로나19 확산세를 이유로 도어스테핑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는데, 재개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2일 “그건(도어스테핑) 없어졌지만”이라며 폐지를 기정사실화했다.

지난 2일 용산 어린이정원 개방을 기념해 열린 대통령실 출입기자단 오찬 간담회에 윤석열 대통령이 ‘깜짝’ 등장했다. 윤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기자들과 대면한 건 지난해 11월 출근길 문답을 중단한 이래 반년만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선 기자들과 대통령 사이에 날카로운 질문과 답변 대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한담만 오갔다. /대통령실 제공


이전 대통령들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도어스테핑은 대통령의 소통 의지를 드러내는 파격적 행보로 시작부터 주목을 받았다. 언론도 일제히 환영했다. “대통령들의 ‘권력형 침묵’에 종지부를 찍은 역사적 변화”(중앙일보), “천지개벽 같은 일”(매일경제)이란 호평이 잇따랐다. 지난해 8월 대통령 취임 100일에 즈음해 한국기자협회가 기자 1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도 도어스테핑만큼은 긍정 평가(57.7%)를 받았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대언론 소통 의지를 피력해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불통(不通) 행보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것이기도 했다. 지난해 2월 기자협회 주최 대선 후보 토론회에선 “대통령은 언론에 자주 나와서 기자들로부터 귀찮지만 자주 질문을 받아야 되고 솔직하게 답을 해야 된다 생각한다”면서 “대통령에 취임하면 아마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 1회 정도씩은 기자들과 기탄없이 만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당선 직후엔 인수위원회 앞에 차려진 ‘천막 기자실’을 깜짝 방문해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두 분이 5년 임기 동안에 (기자실에) 100회 이상을 가셨다”고 언급하며 “나도 가급적 우리 기자분들 자주 보려고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짐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해 9월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을 보도한 MBC에 대한 보복성 조치 이후 코로나19를 구실 삼아 도어스테핑을 중단하면서 언론과의 소통에 차단막을 쳤다. 이후 기자들이 대통령에게 자유롭게 질문할 기회는 사라졌다. 기자회견은 지난해 8월 취임 100일을 기념해 열린 게 마지막이고, 해외 순방 귀국길에 관례적으로 열리던 기내 기자 간담회도 첫 순방 이후 끊겼다. 윤 대통령은 올해 신년 기자회견을 생략한 채 신년사만 낭독했고, 취임 1주년 기자회견도 열지 않는다. 대통령 직선제 시행 이후 취임한 대통령이 첫 신년 기자회견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모두 건너뛴 경우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윤 대통령밖에 없다.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대신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 발언을 생중계하는 등의 방식으로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기자회견이나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는 회피하면서 외신 인터뷰엔 적극적인 것도 특이점이다. 윤 대통령은 국내 언론 중엔 유일하게 조선일보와만 인터뷰했는데, 외신과는 이미 수차례 인터뷰에 나섰다. 당선 후 첫 인터뷰를 워싱턴포스트와 했고, 지난 3월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요미우리, 아사히 등 일본 언론과 인터뷰했다. 지난달 방미를 전후해선 워싱턴포스트, NBC, 로이터 등과 연이어 인터뷰했다. 국내 언론보다 외신 인터뷰를 선호하는 경향은 이명박 전 대통령부터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비슷했지만, 기자회견 등 국내 언론과의 대화는 차단한 채 외신만 상대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보수진영 내에서도 나온다. 이승헌 동아일보 부국장은 지난 2일 칼럼에서 “대통령 생각을 외신을 통해 아는 게 정상인가”라고 꼬집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기자들과 만나 “(참모들에게) 자화자찬의 취임 1주년은 절대 안 된다고 해놨다”고 말했다. 그래서 기자회견도 ‘패싱’하겠다는 대통령실과 정부가 지난 3일부터 ‘자유와 연대의 1년-국민과 함께 이렇게 바꾸고 있습니다’란 제목하에 지난 1년의 주요 성과를 홍보하는 자료집과 영상물 등을 차례로 공개하고 있다. 일방통행식의 홍보가 소통의 자리를 대체한 셈이다. 언론은 대통령이 이제라도 기자회견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겨레는 9일 사설에서 “대통령은 지난 1년간의 성패를 국민들에게 소상히 설명하고, 국민들의 의문에 대해 행정부 수반으로서 성실히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자회견에 적극 임해야 한다”며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지금 방식으로는 ‘불통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도 같은 날 사설에서 “기자회견을 자꾸 회피한다면 집무실 용산 이전 시 표방한 국민 소통은 공염불이 되고, ‘불통 대통령’으로 굳어질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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