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잘 날이 없다. 요즘 서울신문을 설명하기 위해 이보다 적절한 말이 있을까 싶어 안타깝다. 내우외환에 시달려온 서울신문이 최근엔 또다른 구설에 올랐다. 2022년 연말에 어울리지 않는 ‘계도지’ 관련 논란이다. 그것도 서울신문 발행인을 겸한 곽태헌 사장이 직접 언급된 사안이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발단은 강북구청에서 일명 ‘계도지’ 관련 부수 삭감이다. 계도지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집권 당시 지방자치단체가 대량으로 신문을 구매해 주민 생활을 관리하던 일선 통반장에게 제공하던 것을 의미한다. 통반장의 노고에 대한 편의 제공이라지만, 정부에 유리한 논조 및 정책 선전을 우선으로 하는 일부 신문을 대량 무료 배포하기 위한 권언유착형 꼼수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측 자료에 따르면 2000년 경남도청이 최초로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계도지 폐지가 확산했으나 서울 및 강원 등 일부 지역에선 계도지 예산이 집행되고 있다.
강북구청도 그 중 하나였으나 지난 6월 이순희 구청장 당선 다음 달, 계도지 부수 절감을 결정했다. 서울신문의 기존 구독부수 1150부가 385부로 삭감됐다. 약 66%가 줄어든 대폭 삭감이다. 강북구의 지난 7월 기준 연간 계도지 예산은 약 3억8600만원인데, 이중 서울신문이 2억4900만원(약 65%)으로 최대였고, 그 뒤를 문화일보(5490만원), 한겨레(3240만원), 내일신문(2652만원), 경향신문(2340만원)이 이었다.
문제는 그 뒤다. 약 한 달 뒤인 지난 8월2일, 서울신문 곽태헌 사장이 관련 부장 및 취재 기자를 대동하고 강북구청을 방문했다. 미디어오늘에 보도된 강북구청 측의 전언에 따르면 “청장님 재선도 생각하셔야”라는 언급도 나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서울신문은 10월25·26일 연이틀 ‘단독’이라며 강북구청 관련 비판 기사를 1면을 포함한 지면에 수차례 게재했다. 대표적 기사가 강북구 폭우 피해에도 불구하고 구청장이 수십만원 법인카드 회식을 했다는 기사다. 지난 10월25일은 영국에서 첫 비(非) 백인 총리가 선출된 뉴스부터, 강북구민 이외 전국민의 관심사인 심야 택시 호출료 인상 등 굵직한 뉴스가 가득했다.
온라인에 실린 이날 기사의 구성을 보면 이 구청장의 프로필 사진과 함께 헤드라인엔 “거짓”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다. 마지막 문장은 “이 구청장은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2위 후보와 438표 득표 차이로 당선됐다”는 것으로, 1~2위 간 득표차가 얼마 되지 않았음을 부각했다. ‘단독’이란 문패는 의아하다. 단독기사란 전국민의 관심사가 되는 사안에 대해 치열한 타사와의 경쟁을 뚫고 찾아낸 특종에 걸맞은 문구이거늘 강북구청장의, 그것도 두 달 전의 폭우 당시 회식이 얼마나 많은 언론인과 국민의 관심사인지 묻고 싶다.
물론 65% 삭감은 뼈아프다. 그러나 공사다망한 사장이, 일선 취재기자를 데리고 직접 구청을 찾아간 뒤 보란 듯 1면과 ‘단독’ 문패를 동원해 이렇게 대처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이런 처사는 레거시 미디어로서 스스로의 품위를 훼손하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서울신문의 내우외환 소식은 새롭지 않다. 젊은 기자들이 무더기로 서울신문을 줄줄이 떠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정 필요한 것은 때아닌 계도지 삭감을 되돌리기 위한 근시안적이고도 치사한 압박이 아니다. 서울신문은 물론 서울신문의 기자들을 응원하는 언론계 동료들을 실망시키는 일은 이제 그만두길 바란다. 디지털 시대의 파고를 어떻게 넘을 것인지, 자사의 유능한 기자들의 사기를 어떻게 올릴 것인지 고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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