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5일) 열린 ‘제383회 이달의 기자상’ 시상식에서 소속이 모두 다른 전국의 MBC 기자 5명이 하나의 보도로 상을 받는,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지난 5월과 7월 보도된 ‘선거비 미반환 정치인 추적’ 기사로 지역 취재보도부문을 수상한 춘천MBC 허주희 기자, 전주MBC 한범수 기자, MBC경남 이재경 기자, 광주MBC 이다현 기자, 그리고 MBC 서울 본사의 김세진 기자가 그 주인공들이다.
해당 기사는 과거 선거에 출마했다가 부정선거 등으로 당선무효형을 받고도 세금으로 보전해준 선거비를 반환하지 않은 채 올해 지방선거에 다시 출마한 후보들을 공개하고 이들 개인과 가족의 재산 흐름을 추적한 보도다. 우리나라는 선거공영제로 득표율에 따라 선거 비용의 일부 또는 전액을 국고에서 보전해주는데, 공직선거법 등을 어겨 당선무효형이 확정되면 보전받은 비용 전부를 반환해야 한다. 당선자는 물론 낙선자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2018년 말 선거 비용 미반납자 명단을 최초로 공개했던 MBC는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선거관리위원회에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받은 정보와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은 후보들의 판결문에 나오는 정보를 대조해 선거비 미반환자의 신원을 추적해왔다. 그 결과 올해까지 125명의 정치인이 230억원을 반환하지 않은 것을 파악했고, 특히 이 중 8명이 지난 6·1지방선거에 다시 출마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래서 MBC 기자들이 해당 후보들을 찾아가서 물었다. “후보님, 선거비 반환 왜 안 하셨어요?”
지방선거를 닷새 앞둔 지난 5월27일 MBC ‘뉴스데스크’ 톱뉴스로 보도된 리포트가 그 결과물이다. 이 리포트에는 특이하게도 전주, 춘천, 광주, 경남 MBC 기자 4명이 차례로 등장한다. 보도를 기획하고 지휘한 MBC 보도국 네트워크부의 김세진 기자는 이어진 리포트에서 취재 배경 등을 설명했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고 한 달여가 지나 4명의 지역 MBC 기자는 낙선했거나 당선자가 된 그때의 그 후보들을 다시 찾아가 물었다. “언제 반환하실 건가요?”
“서로 본 적 없는” 기자들, 원격으로 데이터와 취재 정보 공유
이번 기획은 서울 MBC에서 축적한 데이터와 아이디어를 토대로 지역 MBC 기자들이 현장을 뛰며 공동취재로 참여한 ‘최초’의 프로젝트다. 김세진 기자는 “제가 서울에서 내려가면 취재 대상을 한 번 보고 올라와야 한다. 그럼 좋은 씽크(인터뷰 영상)가 안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지역 계열사랑 함께하자, 자료와 취재 목적을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기로 한 거다”라고 설명했다.
문제의 후보들이 출마한 각 지역 MBC의 협조를 얻어 “서로 본 적 없는” 기자들의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김 기자는 후보들 재산 내역 등의 자료를 분석해서 공유하고, 지역 MBC 기자들은 선거 사무실과 유세현장 등 후보가 있는 곳을 찾아가 인터뷰를 하고, 가족이 보유한 부동산 등을 찾아내 카메라에 담았다. 4년 넘게 선거비를 반환하지 않은 정치인 명단, 이들과 가족이 보유한 재산 내역 등 서울 MBC가 축적해온 데이터를 가지고 지역을 잘 아는 기자들이 현장 취재를 통해 그림을 완성한 것이다. 김 기자는 “방송사가 데이터 저널리즘을 하긴 하지만 방송으로 숫자를 보여주는 건 싫어하지 않나”라며 “숫자를 쥐고 현장에 가서 그림을 얻는 방식이 잘 결합되지 않았나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보도된 8명의 정치인은 기초단체장과 도의원, 기초의원 후보들로 소위 국회의원이나 광역단체장 같은 ‘급 높은’ 정치인이 아니었다. 이들 8명이 반환하지 않은 선거비도 합해서 약 5억원으로, 지금까지 미반환된 선거비 230억원에 비하면 크지 않은 금액이었다. 허주희 춘천MBC 기자도 그래서 처음엔 “이게 될까?” 싶었다. 하지만 허 기자는 “퍼즐을 완성하면 훌륭한 작품이 되듯이 퍼즐을 다 맞추고 보니 좋은 보도가 된 것 같다”며 “(특정 후보) 단 건으로 보도했으면 자칫 정치적 의도가 있나 의심할 수도 있는데 전체를 묶어서 볼륨을 키워서 보도하니 항의도 없었다. 이번 보도를 통해 네트워킹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볼륨 커지니 기사의 힘도 커져…“네트워킹의 좋은 선례 보여줘”
지방선거가 끝나고 약 한 달 반이 지난 7월15일엔 여전히 미납 선거비는 반환하지 않으면서 이번 선거비 보전을 신청한 당선자들과 징수 책임이 있는 선관위와 세무서의 무관심을 취재한 5분30초짜리 리포트가 방송됐다. 이 리포트에선 광주의 이다현 기자와 춘천의 허주희 기자가, 그리고 경남의 이재경 기자와 전주의 한범수 기자가 서로 다른 장소에 있으면서 한 화면에 등장하는 이색적인 장면도 연출됐다. 이렇게 각 지역에 있는 기자들이 ‘한 팀’처럼 움직였기에 이번 보도는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는 국지적 뉴스에 그치지 않고 전국적 이슈가 될 수 있었다. 보도 이후 선관위는 이기찬 강원도의원과 화순군수 선거에 나섰던 전완준 후보가 이번 선거에 신청한 선거비 보전 금액에 대해 채권 압류조치를 했다. 전완준 후보에 대해선 첫 보도 이후 광주세무서가 5000만원을 징수하기도 했다고 MBC는 밝혔다.
이다현 광주MBC 기자는 “각 지역 사례를 한데 모으니 보도 힘이 커진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이다현 기자는 지난달 21일 서울 MBC의 아침 뉴스 ‘뉴스투데이’에 직접 출연해 취재 및 보도 과정과 의미 등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 기자는 “팀으로 일한다는 느낌이 좋았다”면서 “지역사에선 팀으로 일할 기회가 흔치 않은데, 몇 명이 하나의 기획을 위해 팀처럼 일한 게 즐겁고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허주희 기자도 이번 기획이 “네트워킹의 좋은 선례”라고 거듭 강조했다. 허 기자는 “MBC는 독립채산제여서 회사가 다 다른데 MBC란 크레딧이 같아 효과가 난 것 같다”면서 “단편적인 보도를 전국적인 볼륨으로 키우면 파워도 커진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이어 “이게 되는구나, 국회의원급이 아니라도, 콘텐츠가 되면 좋은 보도가 되는구나 하는 걸 느꼈다. 지방의회 등 언론이 소홀히 했던 정치인들도 콘텐츠가 좋으면 좋은 보도가 될 수 있구나, 고무적으로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김세진 기자는 네트워킹과 함께 “데이터를 꾸준히 모아서 여럿이 공유하고, 취재로 디벨롭 하는 게 주효했던 것 같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번 기획은 취재 기한을 딱히 정해두지 않고 데일리 취재를 하면서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한 점이 효율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도 평했다. 김 기자는 “한쪽(후보)이 약속을 안 지키는데, 선거공영제가 성립될 수 있는지, 제도의 허점을 놔둔다는 게 선거공영제의 의미를 퇴색시킨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MBC 뉴스 홈페이지에 기획취재를 모아둔 인터랙티브 페이지가 있는데 선거비 미납자들의 반환 여부 등을 확인해 계속 업데이트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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