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을 알면서도 풀지 못하는 숙제. 언론 윤리란 그런 것 아닐까요? 언론 윤리를 준수해야 한다는 데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강령과 헌장, 준칙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한국 언론의 윤리 수준이 낮은 건 방향을 모르거나 지침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다 나와 있는 답을 실천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래서 언론학자들은 언론 윤리를 위한 가이드라인의 관건은 언제나 ‘실효성’이라 말합니다.
왜 답을 알면서도 숙제를 하지 않는 걸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일단 현장의 기자들은 너무 바쁩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매일 뉴스를 쫓다보면 윤리와 같은 고담준론에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출입처나 회사 내에서의 인정에 목이 말라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들에게 성과 이외의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사내에 윤리강령이 구비돼 있는 줄 아예 모르거나, 알더라도 한 번도 찾아본 적 없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래서 언론 윤리강령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뉴스룸 조직의 의지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조직은 데스크를 매개로 기자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발제부터 취재, 기사 작성까지 현장의 업무 전반에 데스크의 교육과 지시가 작용합니다. 데스크를 맡고 있는 중견 이상 선배 기자들의 각성과 노력 없이 언론 윤리는 언제나 먼 나라 얘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언론 윤리 담론은 현장의 실천에만 초점을 맞춰온 측면이 있습니다. 윤리강령과 보도준칙도 모두 현장에서 뛰고 있는 기자를 위한 지침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뉴스는 언제나 현장 기자와 그 파트너라 할 수 있는 데스크 사이의 협업을 통해 제작된다고 본다면 그간의 논의는 반쪽짜리였던 거지요. 데스크의 역할에 대한 인식 부족이야말로 언론 윤리와 관련된 논의를 공허하게 만들어온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입니다.
외부인의 눈으로 본 바로는, 요즘 젊은 기자들은 윤리 이슈에 상당히 예민합니다. 줄곧 기자들을 향한 손가락질에 시달린 세대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고 늘 자기검열을 하는 것 같습니다. 취재원 앞에서 예의를 지키고 언론의 힘을 과시하지도 않습니다. 식사를 함께 하면 자기 몫을 따로 계산하거나 먼저 밥값을 내는 기자들을 만난 적도 있습니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들을 보며 언론의 변화에 기대를 품기도 합니다.
그러나 취재·보도 윤리의 중요성이 강조되지 않았던 시절에 현장에 몸담았던 중견 또는 고참 기자들의 윤리 기준은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지난해 한 방송사 기자가 경찰을 사칭해 취재를 했다가 논란이 됐을 때, 기자 출신의 한 국회의원이 “나이 든 기자들에겐 굉장히 흔한 일이었다”며 옹호한 일이 있었지요. 이 말이 거짓은 아닐 겁니다. 그땐 정말 그랬으니까요.
사무실이나 집에 무단 침입해서 서류나 사진을 훔쳐와 단독을 했던 경험을 가진 베테랑 기자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이 특별히 도덕성이나 준법정신이 떨어져서 그런 건 아닐 겁니다. 취재 윤리보다 단독기사와 같은 결과물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시절의 부산물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그런 과거의 경험 때문에 변화한 시대에도 여전히 언론 윤리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건 다른 문제입니다.
데스크가 언론 윤리에 무관심하거나 성과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현장에서 뛰는 젊은 기자들이 언론 윤리를 준수하기 어렵습니다. 데스크가 취재 윤리에 어긋나는 지시를 내리는 경우도 많고, 꼭 명시적으로 지시하진 않더라도 성과를 내도록 다그치고 불호령을 내리는 데스크 때문에 기자들이 무리한 취재에 내몰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면 취재 과정에서 언론 윤리를 준수했는지 꼼꼼히 챙기는 데스크를 찾아보기는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선배 기자들을 폄하하거나 세대 간 ‘갈라치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여느 세대 담론이 갖는 한계처럼, 모든 문제의 원인을 세대로 환원할 수는 없습니다. 윤리 의식의 수준이 나이를 기준으로 무 자르듯 나누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누구보다 윤리 의식이 투철한 베테랑 기자도 있고, 선배보다 비윤리적인 신참 기자도 있겠지요. 제가 강조하려는 건 시민사회가 바라는 언론 윤리의 구현을 위해 데스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에도 아직 데스크에서 일하는 중견 이상 기자들의 의식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국장단과 데스크가 먼저 윤리적 취재·보도의 실천 없이 독자·시청자들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내·외부에서 제정한 윤리강령과 보도준칙을 숙지해야 합니다. 보고를 받을 때 현장에서 취재한 내용뿐 아니라 취재의 방법을 파악하고, 윤리 규정 준수 여부를 꼼꼼히 체크해야 합니다. 윤리적 판단이 애매한 상황에서 젊은 기자들이 혼란스러워 할 때, 데스크가 경험과 관록을 바탕으로 윤리 멘토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데스크야말로 뉴스룸에서 가장 바쁜 분들이니까요. 보고를 받고, 회의를 하고, 판단을 하고, 지시를 내리고, 기사를 고치고, 부서원들의 고충을 처리하고...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하루지요. 그러나 갈수록 윤리적 언론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시대입니다. 바닥을 친 신뢰를 회복하고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선 언론 윤리를 지키기 위한 더 민감한 더듬이가 필요해졌습니다.
이제 윤리적 보도를 위한 소통과 관리는 다른 어떤 일보다 중요한 데스크의 핵심 업무가 됐습니다. 데스크가 현장 기자들보다 언론 윤리에 대한 더 많은 지식과 의지를 갖춰야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시점이 됐습니다. 다른 일이 바쁘더라도 윤리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데스크가 윤리 에디터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조직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예컨대 데스크를 대상으로 언론 윤리 교육이 주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현장 기자들의 실천에 초점을 맞춘 윤리강령에 데스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규정하는 䃲부’를 추가해야 합니다. 윤리보다 성과를 중시하는 조직 문화도 고쳐나가야 합니다.
윤리 실천의 주체는 결국 개인입니다. 하지만 기자나 데스크 개인에게 모든 고민과 부담을 지우려 해선 안 됩니다. 개인이 윤리적 실천을 위한 선택을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이 작동해야 합니다. 그래야 윤리적 취재·보도가 ‘특별한 결심’이 아닌 일상적 행동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박영흠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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