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포자'라 불린 필즈상 수상 허준이 교수, 직접 '팩트체크'했다

"수포자란 말 적절치 않아"... 정정 후에도 언론들 여전히 '수포자'라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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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계 노벨상’이라는 필즈상(Fields Medal)을 한국계 수학자가 최초로 수상한 소식으로 언론이 떠들썩했다. 지난 6일 전국 단위 종합일간지 1면엔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이자 한국 고등과학원(KIAS) 석학교수인 허준이 교수의 사진이 일제히 실렸다. 핀란드에서 수상 소식이 날아든 지난 5일부터는 허 교수와 관련된 기사가 연일 주요뉴스로 보도되고 있고, 이를 계기로 한국 수학 교육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따끔한 질책과 제언도 이어지고 있다.

일반 대중에게 생소한 필즈상 수상 소식이 이처럼 화제가 된 것은 ‘한국인 최초’여서만은 아니었다. 알고 보니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을 뜻하는 은어) 출신이더라는, 특이한 이력(?)이 호기심을 더 키웠다. 지난 5~6일 허 교수의 수상 소식을 전한 언론은 대부분 그가 ‘수포자’였음을 강조했다. 6일 조선일보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은 <고교 중퇴 수포자, 수학의 노벨상 받다>였고, <구구단도 늦게 뗀 ‘수포자’, 수학계 ‘노벨상’ 안았다> <고교 자퇴하고 PC방 다니던 ‘수포자’…수학계 노벨상 품었다> 같은 유사한 제목의 기사가 쏟아졌다.

조선일보 7월6일자 1면 머리기사

그런데 지난 5일(핀란드 현지시각) 국내 언론들과 화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허 교수는 자신은 수포자가 아니었다며 직접 “팩트체크”를 했다. 그는 “수학을 아주 잘한 건 아니었지만 중간 정도는 하는 학생이었다”면서 자신을 수포자라 부르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구구단 초등 2년 때 외우면 수포자?

스스로 수포자가 아니라는데, 왜 다수의 언론이 그를 수포자로 만들었을까. 발단은 과거 언론 인터뷰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5월 허 교수를 인터뷰한 매일경제신문 기자가 유년 시절에 대해 물으며 “수포자였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고 질문을 던졌다. 허 교수는 “구구단 떼는 것도 꽤 늦었다. 초등학교 2학년 돼서야 다 외웠다고 한다”면서 “수학에 별 재능이 없는 편이었다”고 말했다.

뒤이어 조선일보가 올 1월1일자 인터뷰에서 그를 가리켜 “어린 시절엔 구구단 외기도 버거웠던 수포자(수학 포기자)였다”고 소개했다. 기사의 제목부터가 <‘수포자’에서 ‘천재수학자’로… “인생도, 수학도 성급히 결론 내지 마세요”>였다. 허 교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구구단 외우는 걸 힘들어 해서 부모님이 많이 좌절하셨다, 이런 얘기를 했더니 기사 제목이 수포자로 나갔다”고 했다.

한국경제신문의 7월6일자(사진 위) 기사와 7일자 기사. 허준이 교수는 수포자일까 아닐까.

결과적으로 그를 수포자로 만든 건 언론이었다. 그리고 그의 수상 소식을 전하며 조선일보, 연합뉴스 등이 수포자라 그를 칭하자 많은 언론이 그대로 따라 썼다. 뒤늦게 자신은 수포자가 아니었다고, 심지어 고교 수학도 “굉장히 재미있어했고, 열심히 해서 충분히 잘했다”고 정정한 뒤에도 여러 언론이 그를 수포자 출신으로 보도했다. 그를 가리켜 수포자라는 기사와 수포자가 아니라는 기사가 같은 언론 안에서도 공존하고 있다. 수포자에 시인이 되겠다고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PC방에 다니던 평범한 학생의 필즈상 수상. 이렇게 오보 혹은 과장에서 시작된 기사로 극적인 ‘성공 서사’가 완성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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