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 ‘깻잎 한 장’ 차이의 초박빙 접전이 펼쳐진 20대 대선. 선거일 당일(9일) 자정을 넘기도록 어느 한쪽도 확실히 승기를 잡지 못한 유례없는 초접전에 마음을 졸인 건 양당 선거 캠프와 그 지지자들만이 아니었다. 아침 신문 배달을 위한 마감의 마지노선을 넘어서면서까지 신문사 편집국은 고뇌에 고뇌를 거듭했고, 새벽 4시 무렵이 돼서야 나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당선 수락 인사에 현장 취재 기자들은 밤을 꼴딱 새웠다.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새벽 서울 서초구 자택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당선인은 10일 오전 3시56분쯤 서울 서초구 자택을 나와 “밤이 아주 길었다”고 당선 소감을 전했다. 전날 오후 2시부터 윤 당선인 자택 앞을 지켰던 이기주 MBC 기자 역시 “긴 밤이었다”고 했다. 이 기자는 윤 당선인이 여의도로 떠난 뒤에도 기사 작성과 현장 중계 등을 위해 현장에 더 머무르다가 해뜨기 직전인 오전 6시 반경에 철수했다. 이 기자는 “이런 선거는 처음이었다”며 “직전(19대) 대선이 워낙 빨리 끝나서 더 길게 느껴진 것 같다”고 했다.

신문 마감 급한데 투표 종료 7시간 만에 뜬 ‘당선 유력’

2017년 19대 대선 당시엔 개표가 0.3%가량 이뤄진 시점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의 ‘당선 유력’이 점쳐졌다. 당시 대통령선거는 보궐 선거로 치러져 투표가 오후 8시에 종료됐는데, 개표 시작 한 시간여 만에 당선 윤곽이 나온 것이었다. 이번처럼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에서 오차범위 내 접전이 예상됐던 18대 대선 때도 개표를 시작한 지 3시간도 안 된 오후 8시41분, 개표율 23% 시점에 박근혜 당시 후보가 ‘유력’한 것으로 분석됐고, 20여분 뒤엔 당선이 확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번엔 KBS가 최초로 윤석열 후보의 ‘당선 유력’ 판정을 내린 게 10일 오전 2시10분. 투표가 종료된 지 6시간40분 만이었다. 이날 아침에 배달될 신문에 대통령 당선인 소식을 싣기에는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10일자 조간신문 1면 머리기사가 대부분 당선인의 이름보다 ‘초접전’ ‘초박빙’을 내세운 이유다.

조선일보 3월10일자 1면

이날 아침 서울 중구 배달판 기준, 9대 중앙 일간지 중 1면에 ‘윤석열 대통령’과 사진을 함께 실은 신문은 별로 없었다. 경향신문이 1면 머리기사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 유력…5년 만에 정권 교체’란 제목을 썼지만, 사진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개표상황실 분위기를 나란히 배치하고 윤석열 당선인의 사진은 1단 크기로 작게 실었다. 나머지 신문들은 10일 새벽 1~2시 기준 득표율과 초박빙 상황만을 전하며 대체로 ‘중립적’인 제목을 택했다. ‘초박빙 대통령, 통합 큰 숙제 앞에 서다’를 1면 머리기사로 쓴 한겨레는 “신문 제작·인쇄 공정상 부득이하게 개표 결과를 전해드리지 못한 점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고, 한국일보도 ‘알림’을 통해 “마감시간 관계로 개표 결과를 일부 지역 지면에 싣지 못하게 됐다”고 양해를 구했다. 물론 PDF엔 선거 결과가 모두 들어갔다.

조선일보 “배달 늦춰서라도 당선인 소식 넣자”

조선일보는 ‘윤석열 대통령…5년만에 정권교체’란 제목의 머리기사와 함께 윤석열 당선인이 선거 유세 당시 주먹을 불끈 쥔 사진을 크게 1면에 실었다. 하단에는 이재명 후보가 이날 새벽 대선 결과에 대해 승복 선언한 내용을 2단 기사로 실었다. 이를 1면에 별도의 기사로 보도한 건 조선일보가 유일했다.

조선일보 편집부 기자는 “새벽 3시40분쯤 판을 넘겼다. 처음부터 그렇게 늦게까지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아침에 신문을 받아봤을 때 ‘초박빙’ 이렇게 나가는 건 도저히 아닌 것 같다고 위에서 판단해서 배달이랑 조율해서 (그렇게) 결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후보 당선 소식만 넣었으면 더 일찍 끝났을 텐데 이재명 후보 인터뷰(승복 선언)까지 넣느라 늦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일 다음 날 신문에 으레 들어가는, ‘당선인이 걸어온 길’과 같은 기사들은 조선일보는 물론 이날 종합지 대부분에서 볼 수 없었다. 이미 ‘이재명 후보 당선시’와 ‘윤석열 후보 당선시’에 맞춰 기사와 지면 제작은 마친 상태였으나, 마감 시점 기준 당선이 100%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 몇 개 지면을 털어 이런 기사를 싣는 것은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다수의 신문이 대선 주요 장면 요약과 ‘새 대통령에게 바란다’와 같이 누가 돼도 ‘무난한’ 기사들을 주로 실었다.

‘윤석열 당선’ 넘기고 ‘설마’ 싶어 집에도 못 가고 대기

매일경제신문과 한국경제신문은 달랐다. 매경은 10일자 아침 신문에 ‘윤석열이 걸어온 길’, ‘윤석열의 사람들’ 등 준비한 기사를 대부분 실었다. 1면에도 윤석열 당선인의 사진을 크게 싣고 ‘윤석열 ‘정권교체’ 해냈다’(매일경제), ‘1%가 갈랐다, 20대 대통령 윤석열’(한국경제) 등의 제목을 달았다. 한국경제는 윤 후보가 확실히 승기를 잡은 오전 3시30분까지의 득표 상황을 반영했다.

매일경제신문 3월10일자 1면

매경은 아직 아슬아슬하던 오전 1시30분까지의 상황만을 반영했는데, 배송을 최대한 늦추며 2시30분경 마지막 판을 털기 직전, KBS에서 윤 후보의 ‘당선 유력’ 판정을 내리자 결정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다고 불안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니었다. 윤 후보가 아직 ‘매직넘버’를 획득한 건 아니었기에 뒤집힐 가능성도 전혀 없진 않았기 때문이다. MBC와 SBS도 ‘당선 확실’ 판정을 망설이고 있었다.

박태일 매경 편집부 기자는 “편집국에 30~40명이 있었는데, (잘못될 경우) 어차피 서울판이니까 회수된다, 너 강동 가라, 구로 가라, 이러면서 일단 3시10분쯤 퇴근을 했다. 여차하면 다시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거리가 먼 집 대신 회사 근처 저렴한 호텔에 가서 잠을 청하는데 잠이 안 오더라. 새벽 4시 넘어 당선인 메시지를 지켜보고야 잤다”고 말했다. 박 기자는 “대선, 총선 다 해봤지만, 이 정도 매운맛은 없었다”면서 “20년차 선배들도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전쟁터 같다고 했다”고 전했다.

꽃샘추위에 16시간 대기…지지자들 분위기로 개표 상황 읽어

후보자들 자택 앞에서 현장 중계를 하던 기자들은 개표 상황에 따라 주변에 모여든 지지자들의 시시각각 변하는 분위기를 피부로 느꼈다. 9일 오후 2시부터 이재명 후보 자택 앞에서 대기하던 김대겸 YTN 기자는 “자정 넘어서까지 이 후보가 우위를 점하고 있었고, 어쨌든 여론조사랑 다르게 출구조사가 초박빙으로 예상되다 보니 늦은 시간까지 사람들이 상기된 상태로 있었는데, 판세가 뒤바뀌고 하면서 분위기가 살짝 얼어붙고, 마지막에 이재명 후보가 자택에서 나왔을 땐 지지자들이 울기도 했다”고 전했다.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새벽 서울 서초구 자택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이기주 MBC 기자는 주변의 지지자들 분위기로 개표 상황을 ‘간접’ 확인했다. 중계차도 없이 영상기자와 둘이 팀을 이룬 채로 9일 오후 2시부터 대기하며 거의 매시간 현장 중계를 해야 했는데, 덕분에 노트북과 휴대폰 배터리가 금세 방전됐다. 그래서 취재차로 배차받은 전기차에 가서 수시로 충전을 하고 그사이 현장 취재를 하느라 정작 개표 상황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이 기자는 “출구조사가 발표될 때는 ‘아’ 하는 탄식 소리가 들리고 그 뒤로 사람들이 거의 다 빠졌다가 자정 가까이 되면서 표가 나오니까 다시 몰려들더라. 그리고 새벽이 되니 자택 주변 분위기가 밝아졌다. 다들 스마트폰으로 개표방송을 보고 있는 거였다. 모인 사람들이 좀 수다스럽고 밝아지는 느낌에서 (윤 후보 쪽)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구나, 간접적으로 느꼈다”고 전했다.

이날 오전 8시에야 집에 들어간 이 기자는 잠시 쉬고 정오에 다시 출근했다. 취재 대상인 후보가 당선인 신분이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 기자는 “인수위원회가 출범하면 앞으로 더 바빠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