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메달' 기사가 드러낸 온라인 출고 부실
서울신문 '중국이 메달 가져가라' 보도
편집국장이 수정 요청했지만 거부
사측 "기자 제재·징계 고려 안 해"
언론사들, 데스크 아닌 기자에게도
온라인 송고 권한 부여하곤 '무신경'
지난 7일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000m 경기 이후 “그냥 중국이 메달 모두 가져가라고 하자”는 문장으로 도배된 서울신문의 온라인 기사<사진>가 올라왔다. “중국 선수 셋이 편파 판정에 힘입어 결승에 올랐는데 깔끔히 무시해 버리자”, “박장혁은 준준결승에서 충돌해 레이스를 마치지 못했지만 다른 선수들의 반칙에 어드밴스로 준결승에 올랐지만 외손을 다쳐 기권했다.?”처럼 곳곳에 정제되지 않은 문장이 담긴 기사였다.
오후 10시17분에 송고된 기사는 10시45분께 삭제됐지만, 편파 판정으로 인한 한국 선수 실격 논란과 맞물리면서 파장은 오래갔다. 기사가 송출되고, 삭제된 이유가 명확히 알려지지 않으면서 그 배경을 두고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서울신문의 ‘중국 메달’ 보도는 단순 실수가 아닌, 기자가 기사 송출 권한을 남용하면서 일어난 문제로 나타났다. 해당 기사가 올라간 직후 서울신문 편집국은 기사 수정을 요구했지만, 기사를 쓴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겸 논설위원은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신문 디지털미디어센터 관계자는 “기사의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감정 발산형의 개인 블로그 성격의 기사를 올린 건 서울신문 대외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편집국장과 온라인 담당 부장이 해당 기사에 대해 수정을 요청했다”며 “하지만 기자가 수정을 거부해 기사 삭제라는 강한 조치를 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서울신문은 데스크 외 기자들에게도 CMS 상에서 온라인 기사를 송고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있다. 해당 사고가 일어난 다음날 서울신문 편집국은 “온라인 기사는 자신의 소속 부서와 관련된 기사를 출고함을 원칙으로 한다”는 등의 ‘온라인 기사 출고 원칙’을 공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임 논설위원은 현재까지(15일 기준) 소속 부서와 무관한 스포츠 분야 기사를 포털 사이트와 서울신문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다.
임 논설위원이 편집국장의 기사 수정 요구를 거부하고, 공지된 온라인 기사 원칙 또한 지키지 않고 있지만, 서울신문 측은 이에 대한 제재나 징계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디지털미디어센터 관계자는 “편집국 안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있는 건 사실이고, 자제하라는 입장을 전달했으나 본인이 기사를 쓰겠다는 의지가 강해 난처한 상황”이라며 “규정을 어기고 있어 조직 차원에서 (징계) 논의가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현재 그런 상태는 아니”라고 했다.
지난 2020년 8월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가 사전 보고나 데스킹 등 게이트키핑 없이 ‘박재동 미투 반박 보도’를 전송해 물의를 빚자 해당 기자의 기사 송출 승인 권한을 없앤 경향신문의 대처와는 대조적이다. 박재현 경향신문 콘텐츠랩부문장은 “긴급하게 사건·사고가 발생해 기자가 사전 보고를 하고 기사를 출고한 후에 데스킹을 하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어 시스템 상으로 경향신문 기자들도 기사 전송을 할 수 있긴 하다”면서도 “기본적으로는 데스킹 이후 부장이 기사를 쏘는 게 원칙이기 때문에 강진구 기자에게는 웹 출고 권한을 회수했다”고 말했다.
서울신문에서 발생한 문제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앞서 경향신문 사례와 함께 지난해 6월 조선일보는 성매매 관련 기사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딸 조민씨를 연상시키는 삽화를 사용해 사과문을 게재하는 등 이전부터 언론사들의 허술한 온라인 기사 관리로 인한 사고가 잇따랐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언론사들은 속보 대응과 온라인 기사 데스킹에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들면서 기자 자체 출고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지난 9일엔 한겨레 기자들의 보고 내용이 포털에 송출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노현웅 한겨레 노조위원장은 “기사 출고 프로그램에서 아이디를 발급받은 이들은 승인 버튼을 누르면 바로 퍼블리싱 된다. 시스템 상 아예 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보고가 실수로 승인돼 부랴부랴 지우는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최소 한두 번의 데스킹을 거친 뒤 기사 승인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디지털뉴스팀에서 출고된 기사 제목, 사진 편집, 유통 등을 관리하고 있어 기사를 한 번 더 점검한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특히 이번 서울신문의 ‘중국 메달’ 보도는 기자가 송출 권한을 이용해 얼마든지 마음대로 최소한의 게이트키핑없이 기사를 올릴 수 있는 위험성을 보여준 사례다. 사고가 터지면 수습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언론사 전반의 온라인 기사 사전 관리감독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중앙일보 한 기자는 “중앙일보 취재부서의 경우 주니어 기자들은 기사 출고 권한 자체가 없고, 다른 부서의 기사를 쓰면 해당 부서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유통팀이 엄격하게 관리하기 때문에 기사를 다 썼다고 무조건 내보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디지털과 지면을 구별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인데, 여기선 디지털이라고 (데스킹 과정이) 확 바뀌었다는 걸 체감하지 못한다”며 “지면 중심일 때도 하루에 20여개씩 올라오는 여당, 야당, 청와대 기사 다 보지 않았나. 디지털로 옮겨오면서 불가측성이 커진 건 맞지만 재발 방지를 위해 CMS를 정비하는 등 저널리즘의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 디지털에 잘 적응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바로잡습니다
경향신문은 2020년 8월 강진구 기자의 ‘박재동 미투 반박 보도’ 이후 기자들의 온라인 기사 송출 권한을 제한했습니다. 강 기자에 한해서만 웹출고 권한을 회수했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므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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