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호반 대해부' 기사, 온라인서 사라져버렸다

내부선 "경영진의 편집권 침해" 비판
삭제된 경위 설명조차 없어

곽태헌 사장 "김상열 회장이 겸임하시는데
그런 기사가 있는게 맞다고 보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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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이 지난 2019년 보도한 <언론 사유화 시도 호반건설 그룹 대해부> 시리즈 기사 50여개 전부가 지난 17일 서울신문 홈페이지와 포털 사이트에서 사라졌다. 지난해 10월 서울신문이 호반그룹을 새로운 사주로 맞은 이후 호반에 대한 의혹을 보도한 기사를 스스로 지운 것이다. 이를 두고 “경영진에 의한 편집권 침해”라는 서울신문 내부의 비판이 나온다.


‘호반건설 대해부’ 기사 삭제는 지난 16일 오전 곽태헌 서울신문 사장, 김균미 편집인, 황수정 편집국장, 박홍환 평화연구소장, 김준 노조위원장, 박상숙 우리사주조합장 대행 등이 참석한 6인협의체 회의에서 결정됐다. 황 국장은 이날 오후 부장단 회의를 통해 기사 삭제 결정을 공지하며 “경영진 쪽에서 기사를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편집권 침해는 아니다” “언젠가는 갈 길이었는데 시기가 너무 빨리 온 것 같다” 등의 언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진, 편집국장의 기사 일괄 삭제 조치에 “기자로서 부끄럽다”는 서울신문 52기 기자들의 목소리가 나왔다. 기자들은 18일 성명에서 “사주와의 관계를 고려해 기사 게재 지속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부당할뿐더러 그 자체로 자본 권력에 의한 편집권 침해”라며 “기사 삭제 사태의 구체적인 전말에 대한 경영진과 편집국장의 책임 있는 설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글을 쓰면서도 기사가 원상 복구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보다 무력감이 더 든다는 사실에 괴롭다”며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독자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말로 이 사태를 납득시킬 수 없다”고 했다.


6인 협의체는 기사 삭제 조치에 대해 전임 경영진 때 결정된 사안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2021년 5월 당시 서울신문 3대주주였던 호반이 서울신문 지분 전부를 우리사주조합에 매각하는 대신 ‘호반건설 대해부’ 기사 삭제를 요구했고, 전임 경영진과 우리사주조합장, 편집국장 등이 이 조건을 수용했다는 것이다. 호반 주식 매입이 무산되고, 서울신문 대주주가 호반으로 바뀌자 곽태헌 사장이 당시 협상 내용을 근거로 기사 삭제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곽태헌 사장은 지난 17일 기자협회보와의 통화에서 “기사 내용에 대한 사실 여부를 떠나서 김상열 회장이 서울신문 회장 겸임도 하시는 건데 그런 기사가 그대로 있는 게 맞다고 보냐”고 반문하며 “해도 바뀌고, 설 전에 빨리 마무리 짓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구성원 대부분도 그렇게 해야 된다고 동의했던 거고 호반이 최대주주가 됐는데 삭제할 때도 됐다고 봤다”고 말했다. 호반 측에서 먼저 기사 삭제를 요구했는지 묻는 질문에 곽 사장은 “요청은 따로 없었다”며 “전임 경영진 때 이런 합의가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돼 내가 회의를 소집한 것”이라고 했다.


앞서 지난 2019년 6월 호반건설이 포스코가 보유했던 서울신문 지분 전량을 사들이자 서울신문은 특별취재팀을 꾸려 그해 7월부터 11월까지 ‘호반건설 대해부’ 기획을 이어갔다. 취재팀은 시리즈 첫 회에서 “서울신문은 호반건설의 이번 서울신문 주식매입을 언론 사유화 시도로 규정짓고 호반건설의 도덕성과 기업 행태 등을 조목조목 분석하기로 했다. 호반건설이 과연 언론사 대주주로서 적합한지 문제 제기를 하기 위해서다”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온라인상에 있는 모든 특별취재팀의 기사는 삭제됐지만, ‘작업 중이거나 존재하지 않는 기사’라는 문구만 있을 뿐 기사가 삭제된 경위에 대한 어떠한 설명 문구가 없는 상태다. 기사를 읽었거나, 찾아봤을 독자들은 해당 보도가 진정성이 있었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사가 어떤 조건이나 거래의 대상이 됐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서울신문 A 기자는 “실제로 전임 경영진 때 기사 삭제를 검토했다고 해도 당시에 반대했던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지금도 반대가 있는 상황에서 ‘그때도 그랬는데 지금은 기사 삭제 왜 못하냐’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결국 기자들이 없는 이야기를 썼다고 밖에 안 되는 거다. 참담하다”고 말했다.


황수정 국장은 ‘기사 삭제는 편집권 침해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에 대해 “전임 경영진 때 나온 결정을 번복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고, 그래서 집행할지 말지에 대해 결정하는 차원이라고 봤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서울신문 B 기자는 “편집국장이 후보 당시 편집권 침해는 없을 거라고 강조했는데 너무나 실망감이 크다”며 “지배구조가 바뀐 이후 서울신문 기자들이 호반과 관계없이 기사 쓸 수 있냐고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번 사례는 서울신문이 사주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잘 보여주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얼마나 검열을 할까 걱정이 든다”며 “취재원을 만나서 설득시킬 자신도 없다. 실제로 서울신문 기사에 대한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취재원이 많이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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