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과 방송가에서 방송사업자에 대한 대기업의 소유지분 제한 완화를 추진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언론 현업단체들이 이를 “미디어를 대기업에 상납할 법 개정”이라고 비판하며 반발하고 나섰다.
양정숙 무소속 의원은 지난 20일 소유제한 기준이 되는 기업집단 자산총액을 ‘국내총생산액의 1000분의 15 이하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 방송법은 자산총액 10조원을 기준으로 이를 초과하는 기업집단(대기업)은 지상파 10%, 종편·보도채널은 30% 미만의 지분만 소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일 양정숙 의원안 대로 자산총액 기준을 특정금액으로 하지 않고 GDP의 0.015%로 완화할 경우 10조원 기준은 약 29조원까지 확대된다.(2020년 GDP 1933조원 기준) 자산총액 29조원 이하인 상당수 대기업에 지상파, 종편, 보도전문채널에 대한 진입규제가 풀리는 셈이다.
양 의원은 법안 제안 이유로 “자산총액 10조 이상 기업집단 수는 2008년 17개에서 2021년 40개로 늘어나 국내 경제규모 자체가 성장한 점을 보면 현행 민영지상파방송사에 대한 소유규제는 당초 도입 취지와는 달리 시장축소형 규제로 작용하고 있어 개정의 필요성이 지적되고 있다”고 밝혔다.
지상파 방송사 단체인 한국방송협회도 지난 23일 성명을 내어 “자산총액 10조원 규제는 애초 도입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지상파방송의 경쟁력을 제한하는 규제로 작동한 지 오래”라며 “정책당국이 하루라도 빨리 지상파방송사업자의 소유 규제를 개선하는 절차에 착수하도록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방송통신위원회도 ‘2022 업무계획’에 ‘소유·겸영 규제 개선’을 포함했다.
방송협회 주장대로 지상파 소유규제를 풀어주면 “지상파 방송이 다른 미디어 사업자와 대등하게 경쟁하고 콘텐츠 시장의 유효경쟁을 촉진할 수 있는 플레이어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언론 현업단체들은 아니라고 봤다. 방송기자연합회·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기자협회·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한국영상기자협회·한국PD연합회 등 언론 현업 6단체는 29일 성명에서 “29조 이하 기업집단을 보라. 미디어 시장에 대한 사업 경험조차 일천한 자본이 대부분”이라며 “이들에게 방송사업자의 지분을 개방하는 것은 ‘콘텐츠 경쟁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주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공인 인증서를 주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사주와 모기업 수익을 위한 부속품으로 신문과 방송을 이용해 온 건설, 금융, 제조업 자본에게 앞으로 ‘평생 이용권’을 주겠다는 법 개정이야말로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의 연장, 적폐”라고 비판했다.
6단체 중 하나인 언론노조는 지난 28일 ‘제20대 대통령선거 정책 과제’를 제안하며 미디어 자본과 산업 자본을 분리해야 한다는 요구를 내건 바 있다. 지금처럼 민간 자본이 신문과 방송을 지배할 수 있는 기준을 자산총액에 두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으니, 미디어 자본과 산업 자본을 엄격하게 분리해 자본 성격에 따라 규제해야 한다는 게 요지다.
현업 6단체는 “시행령 범위까지 침해하면서 민영방송 사주의 청부 입법을 할 시간에 국회와 방통위는 언론노조의 제안에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길 바란다”면서 “대기업 방송사주의 청부보다 노동자와 시민이 참여할 미디어 체제의 근간을 먼저 바꿀 때”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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