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 경제에 대한 오해

[언론 다시보기] 노혜령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노혜령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구독 경제’가 유행이다. 디지털 전환에 성공한 뉴스 기업들은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구독료에서 벌어들인다. 하지만 낙관하기엔 이르다. 성공 모델로 꼽히는 노르웨이 신문 산업의 구독 매출 비중은 2006년 45%에서 2019년 62%로 늘었지만 매출은 17% 줄었다. 뉴욕타임스의 구독 매출도 20%에서 80%로 증가하는 사이 총 매출은 절반 가까이 줄었다. 더 큰 문제는 구독 경제 피로감이다. 미국에서는 넷플릭스 같은 구독할 매체가 하나씩 늘어나면서 지출이 증가하자 절독 흐름이 시작됐다. 그래서 광고 모델 인기가 다시 상승 중이다. 훌루 등 레거시 미디어에서 출범시킨 구독 플랫폼들은 모두 광고를 보는 대신 구독료를 안 내는 옵션을 두고 있다. 독자들의 차등적 ‘지불 의사’에 기반해 가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단일 가격보다는 가격 차별화를 구현할 때 기업 매출이 더 커지고 고객 후생도 높아진다는 것은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다. 다만 현실에서 구현이 어려웠다. 크게 두 가지가 장애였다. 첫째 다양한 번들링 상품을 관리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었다. 둘째 고객들의 지불 의향을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디지털은 번들링 상품을 다양하게 패키징하는데 들어가는 ‘메뉴 비용’을 제로에 근접하게 낮췄다. 또 디지털 고객들의 행동을 분석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지불 의향을 추론할 수 있게 됐다. 두 가지 장애가 해결된 것이다.


영국 더 가디언지가 오랜 적자에서 탈출한 비결을 가격 전략면에서도 볼 수 있다. 가디언지의 디지털 기사는 원칙적으로 무료다. 이들 무료 독자들에게서 광고 매출을 얻는다. 2021 회계연도(2020년 4월~2021년 3월 말) 기준으로 매출의 약 27%가 여기서 나온다. 같은 디지털 뉴스지만 광고 없이 유료 구독할 수도 있다. 월 11.99파운드를 내면 된다. 해설, 탐사보도 등 고품질의 롱 폼(long-form) 기사와 라이브 뉴스를 편하게 볼 수 있는 기능이 있다. 후원자 멤버십도 있다. 각종 이벤트 초대 등의 혜택에 따라 연간 1200~5000파운드짜리 3종류의 멤버십 중 선택이 가능하다. 구독은 하지 않고 기부금만 내도 된다. 이렇게 ‘돈 내는’ 독자에게서 매출의 30%를 번다. 물론 신문 구독도 가능하다. 옵서버지와 가디언지 인쇄판을 같이 받아보면 67.99파운드, 가디언지만 선택하면 57.99파운드의 월 구독료를 낸다. 이미 보도했던 지난 1주일간의 뉴스를 ‘주간 주요 뉴스’의 잡지 형태로 패키징해 주는 가디언 위클리도 있다. 월 27.50파운드다. 이런 인쇄 뉴스 독자들에게서 31%의 매출을 얻는다.


같은 뉴스를 보지만, 어떤 디바이스로 어떤 패키지를 어떤 기능과 혜택으로 누리느냐에 따라 무료에서 연 5000파운드까지 수많은 옵션이 있는 것이다. 객관적 상품 가치에 기반해 산출된 가격이 아니다. 어떤 콘텐츠에 가치를 부여하느냐는 독자들의 주관적 요소와 지불 능력에 따라 좌우된다. 결국 지불 의향이 다른 독자들에게 해당 가격을 내도록 ‘정당성’을 어떻게 세련되게 제공하느냐의 문제다. 그러려면 독자의 특성을 데이터 기반으로 분석하고 효과적으로 세분화할 수 있어야 한다. 언론사 브랜드를 후원하고 싶게 만드는 고유의 스토리텔링 등 전략적 브랜딩 능력도 필수다. 구독이냐 광고냐 택일보다는 20세기에는 없던 이런 역량을 어떻게 키워갈 것이냐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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