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면 언중위 가시던가요"… 이런 말은 이제 그만

[이슈 분석] '언론불신' 넘어 '피해구제'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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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논의할 여야 8인 협의체의 상견례 겸 첫 회의가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운영위 소회의실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입장하며 인사하고 있다. 협의체는 14일 5차 회의까지 가졌으나 징벌적 손배제 도입, 열람차단청구권 신설 등 쟁점 사항에 대한 대립각이 이어지고 있다. /뉴시스

언론중재법 개정의 동력이 된 ‘언론불신’이 상수(常數)라면, 그래서 언론계 전체가 뼈를 깎는 자성을 해야 한다면, 언론중재법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인 ‘피해구제’는 어떨까.


누군가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피해를 봤다고 하자. 정치인, 기업가 같은 권력자라면 반박 자료를 내고 바로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일반인들이 그러기란 쉽지 않다. 먼저 기사에 적힌 기자의 이메일로 항의 메일을 보내거나 해당 언론사로 전화를 걸어서 정정을 요청하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게 바로 고충처리인의 역할이다. 고충처리인은 2005년 언론중재법이 시행되면서 언론사 스스로가 언론피해를 자율적으로 예방하고 피해를 구제한다는 목적 아래 도입됐다. 종합편성·보도 전문편성 방송사업자, 일반일간신문 사업자와 뉴스통신사업자는 사내에 고충처리인을 반드시 두게 돼 있다.

고충처리인 제도 제대로 활용하면 언중위·법원 안 가고도 ‘신속 구제’

고충처리인의 직무는 ‘언론의 침해행위에 대한 조사’와 시정권고, 정정·반론 또는 손해배상의 권고 등이다. 고충처리인 제도만 잘 운용돼도 준사법기구인 언론중재위원회나 법원까지 가지 않고도 ‘신속한 구제’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일단 고충처리인 제도 자체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권한 행사도 제한적이다. ‘언론의 침해행위 조사’는 물론 “(언론사는)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고충처리인의 권고를 받아들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법은 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접수된 민원을 해당 부서에 전달하고, 그 처리 결과를 민원인이나 독자에게 알리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고충처리인 대부분이 겸직·겸업을 하고 있다는 점도 한계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언론사에서 피해구제와 관련된, 기사의 정정이나 보도의 문제를 제기하는 시민들의 창구 담당(자)의 지위가 너무 낮다”며 “고충처리인도 사내 지위가 낮고 겸직이 많아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언론사 내부에서 해결이 안 되니 언론중재위 위상은 더 커진다. 윤 이사는 “언론사에선 피해자 입장을 헤아리며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방어적인 태도로 ‘억울하면 언중위 내시던가요’ 하는 식이다. 유명인, 공인과 관련된 언론의 의혹 제기는 강하게 나가야 하는 게 맞지만, 요즘엔 그런 알 권리 차원의 보도보다 사건·사고 보도가 너무 많아졌고 사고와 관련해선 일반인이 많은데 그들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터넷상에서 빈번하게 이뤄지는 기사 수정이나 삭제 또한 피해구제보다는 잘못을 ‘숨기려는’ 데 방점이 찍힌 경우가 많다. 사회적으로 크게 논란이 되거나 유명인과 관련된 보도가 아닌 이상 기사 일부를 수정하거나 아예 삭제하고도 사과하기는커녕 변경된 사항을 알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일부 네티즌들은 그런 기사의 원본을 찾아내 ‘증거’로 확보하고 박제하는 걸 언론 감시 활동으로 여기기도 한다.

전문가들 “무분별한 기사 삭제는 도움 안 돼”

전문가들은 이런 무분별한 기사 삭제는 언론 신뢰는 물론이고 피해구제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잊힐 권리’와 언론피해구제 연구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쓴 구본권 한겨레 선임기자는 “기사가 일단 보도되면 데이터베이스에 어떤 식으로든 남아서 접근 가능하게 하는 걸 기본 원칙으로 해야 한다. 다만 2014년 구글의 ‘잊힐 권리’ 판결에서처럼 특정 조건에서 무차별적으로 노출되는 것을 막는 정도로 기준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면서 “오보나 악의적인 왜곡보도인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2003년 미국 뉴욕타임스는 제이슨 블레어라는 기자가 수십 건의 ‘가짜 기사’를 써온 사실을 조사해 신문 1면과 4개 면 전면에 걸쳐 경위를 전하고 사과했다. 뉴욕타임스는 당시 블레어가 쓴 허위 기사들을 삭제하지 않고 날조됐다는 주석을 단 채 그대로 DB에 남겨두고 있다. 구 기자는 “해외의 권위 있는 언론사 대부분은 기사를 수정할 경우 기록을 반드시 남긴다. 반면 우리 언론은 기술적으로 어려워서가 아니라 치부가 드러나기 때문에 안 한다”면서 “인터넷은 기본적으로 휘발성이 있고 변경 가능하기 때문에 추적할 이력을 동시에 기록해줘야 인터넷상에서 신뢰를 회복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물론 언론 보도 피해자들은 정정이나 반론보다 인터넷상에서 기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을 원할 때가 많다. 기사 삭제와는 형식상 차이가 있지만, 기사 열람차단이 언론중재위 조정 과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주당이 언론중재법 개정 과정에서 언론계 반발에도 불구하고 열람차단청구권 도입을 포기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 언론중재위가 지난해 이용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신청인측의 95.1%가 열람차단청구권 제도의 도입을 찬성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정정보도나 반론보도 할 것도 다 열람을 차단해달라는 거로 나타나 언론중재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다”며 열람차단청구권 자체에는 우려를 나타냈다. 다만 “언론중재법 제15조에 항을 하나 신설해 정정보도에 한해서 잘못된 (원)기사가 남아 있는 것보다 차단하는 게 언론에도, 피해자에게도 이롭다고 상호 협의가 됐을 때 열람을 차단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만 마련해주는 것은 어떨까”라며 “정정·반론보도나 인격권을 흔들지 않으면서도 현실 적용이 가능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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