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여성은 또 뭔 코로나땜에 불이익을 받았대?”
코로나19 이후 비정규직과 여성 노동자의 소득이 더 많이 감소했다는 조사결과를 보도한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성별 차이가 노동영역에서 차별과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현실은 자명하지만, 이는 종종 단순한 ‘차이’의 문제, 개인의 문제로 축소되고 젠더 이슈로 주목받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군 복무 문제부터 포스터 속 ‘손가락 이미지’ 같은 것들은 곧잘 ‘젠더 이슈’로 포장되고, 성별 갈등의 온상인 것처럼 여겨지곤 한다. 구조와 맥락을 보지 않고 ‘현상’ 또는 결과에만 주목했을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모든 격차가 차별은 아니다. 하지만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격차는 차별일 가능성이 크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의 말이다. <페미니스트 경제학> 27권호에 실린, 코로나19 이후 노동시장의 성별 격차를 분석한 논문을 보면 나이와 결혼 여부, 고용 형태 등 성별 격차를 설명할만한(explained) 요소는 휴직자의 경우 39.2%, 실업 상태에선 45.2%밖에 안 됐다. 설명되지 않는(unexplained) 차별이 더 크다는 뜻이다.
그래서 성인지적 관점에서 통계를 읽을 땐 익숙한 관점을 버리고, 통계 속에 숨은 전제나 가정을 의심하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고, 신 교수는 말했다. 신 교수는 8일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주최로 열린 ‘데이터와 젠더, 어떻게 읽고 보도할까?’란 주제의 강연에서 “누가 빠져 있는지, 누가 분리되어 있는지, 배제되고 분리되고 금기시돼 있거나 모순적인 것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국가나 기업의 중요한 정책 결정을 하는 자리는 어째서 남성들로만 가득한지, 고용노동부가 만든 가족돌봄휴가제도 안내문 속에서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은 왜 모두 여성으로 그려져 있는지 ‘촉’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모든 정책 결정이나 집행의 기준이 되는 통계와 데이터가 특히 그렇다. 당연히 성별을 분류해서 내야 할 통계가 그렇지 않은 등 젠더가 “지워진” 사례는 많다. 이를 보도하는 언론 역시 가려진 젠더를 보지 못하고, 따라서 구조와 맥락을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은아 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 교수는 이를 “젠더 데이터 공백”이라고 했다. UN 등 국제기구에선 젠더 관련 통계를 기본으로 제공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성별 분류 통계를 낼 책임이 있는 부처나 담당 과에서조차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 일일이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받아야 한다.
성별 분류 통계는 남녀를 단순히 구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교한 정책”을 위해 필요하다고 신 교수는 강조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지급한 1차 재난지원금은 세대주만 신청이 가능했는데, 그 결과 수령인의 70%가 남성으로 압도적이었다. 이혼·별거 중인 여성의 지원금 수령은 제약됐다. 가구 구성 시 주로 남성이 세대주가 되는 가부장적 관행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다. 애초에 세대주 성별 통계를 내지 않았거나 고려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은아 교수는 “기본적으로 모든 부처가 생산하는 통계는 성별 분류가 필요하다”며 “이를 지적하고 요구하는 게 언론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 아닐까”라고 했다.
통계와 데이터를 잘 읽고 활용하기 위해선 질문을 잘 던지는 것도 중요하다. 여성할당제가 논쟁이라면 실제 여성할당제가 얼마나 있는지, 20대에 성차별이 없다는 게 사실인지, 묻고 또 들여다봐야 한다. 신 교수는 “통계 하나만으로 해석하려 하지 말고 코어(핵심)에 다다를 때까지 관련된 것들을 파고들어야 한다”고 했다.
성별 분류 통계 안 하는 부처들…“언론이 지적하고 요구해야”
언론이 자주 활용하는 통계인 여론조사도 마찬가지다. 이때 핵심은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요즘같이 백래시가 강한 시대에는 젠더 갈등 관련 여론조사를 한다고 해도 현상을 확인하는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조사를 한다면 과거에 비슷한 질문을 던졌을 때와 비교해서 본다거나 통시적 연구를 통해 세밀하게 설계를 해서 현상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구조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신 교수는 강조했다.
이은아 교수도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를 보여줘야 한다”며 “모두를 위한 기사가 되려면 보이지 않는 집단에 관한 기사가 필요하고, 그게 바로 젠더 기사”라고 했다. 그러면서 “변화에는 늘 긴장과 저항이 따르는데 이 저항을 어떻게 하면 생산적인 긴장으로 만들 것인가, 이에 관한 정치가 더 필요하다”며 “여성은 계속 차별을 얘기해왔는데 이게 왜 ‘갈등’의 문제가 됐는지. 젠더 갈등이란 말 대신에 구조적 문제에 집중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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