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부유(共同富裕)

[글로벌 리포트 | 중국] 이재호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이재호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주말이었던 지난 12~13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 일대에서는 1만4000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군악대와 합창단 공연, 국기 게양, 예포 발사 등의 연습이 이뤄졌다. 오는 7월1일로 예정된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경축 행사 개최를 위한 사전 준비다. 최근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6000자가 넘는 장문의 선언문 두 편을 이틀에 걸쳐 게재했다. 먼저 실린 문장의 제목은 ‘사회주의는 중국을 저버리지않았다’, 그 다음 편은 ‘중국은 사회주의를 저버리지 않았다’였다. 편년체에 가깝게 써 내려 간 글은 아편전쟁 직후 서구 열강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던 시기부터 시작해 중국 내 사회주의 유입 및 공산당 창당 과정 등을 소개했다. 이어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鄧小平)의 최대 업적인 신중국 수립과 개혁·개방 도입을 설명한 뒤 시진핑(習近平) 시대를 집중 조명한다. 문장은 “시 주석이 거둔 역사적 성취로 중화민족은 민족 부흥이라는 위대한 목표에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다”며 “사회주의의 제도적 우월성이 선명하게 드러났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일당 독재 체제다. 공산당 외에 8개의 소수 정당이 존재하지만 ‘일당 독재’라는 수식을 걷어낼 만큼의 영향력은 갖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해 공산당 내 고급 간부 육성·교육 기관인 중앙당교의 한 노교수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20세기 초반 중국에서는 340개가 넘는 정당이 난립해 이전투구를 벌였고, 뒤이어 등장한 쑨원(孫文)과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도 중국을 하나로 통합하는 데 실패했다. 1921년 7월 상하이에서 1차 당대회를 개최하며 등장한 공산당이 중국 대륙을 통일할 수 있었던 건 다당제 실패에 따른 분열과 혼란을 수습할 대안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중국의 일당제는 시대상이 반영된 결과이며, 이는 경제 발전과 인구 증가 등으로 이해관계의 충돌이 더 빈번해진 현 시점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중국은 이미 물질적으로 풍요하다. 이제 분배의 문제가 중요해졌다. 마윈(馬雲)과 알리바바 등 일부 개인이나 기업이 부를 독차지하는 부작용을 공산당이 아니면 누가 나서 해결할 수 있는가. 미국이나 한국에서 감히 가능한 일인가. 노교수의 일침이다.


그래서인지 중국에서 새삼스럽게 회자되는 화두가 다 함께 잘 살자는 ‘공동부유(共同富裕)’다. 중국 사회주의의 핵심 개념인 공동부유는 마오쩌둥 시대에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이라는 처절한 실패를 겪으며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덩샤오핑이 집권하면서 재등장했다. ‘가난은 사회주의가 아니다(貧窮不是社會主義)’라는 말로 유명한 덩샤오핑은 일부 지역부터 잘 살게 만들고 점차 다른 지역으로 부를 확산시켜 최종적으로 공동부유를 이루자는 이른바 ‘선부론(先富論)’을 제창했다. 그렇게 시작된 발전 전략을 40여 년간 지속한 끝에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지만, 양극화와 빈부격차 역시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런 세태를 드러내는 유행어가 탕핑과 네이쥐안이다. 탕핑은 반듯이 눕는다는 뜻이며, 네이쥐안은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소모적인 경쟁을 의미한다. 수많은 중국 젊은이들이 “나는 탕핑을 하겠다. 네이쥐안은 너희들이나 하라”며 탕핑족으로의 변신을 선언하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취업과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등에서 원하는 성과를 거둘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비아냥이다. 중국 관영 언론들이 나서 탕핑족을 맹비난할 정도로 중국 내 위기감은 상당하다. 시진핑 국가주석 등 중국 수뇌부가 내년 20차 당대회를 앞두고 농촌 지역의 탈빈곤과 향촌진흥을 입버릇처럼 반복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에서 가장 소외된 계층인 청년과 농민을 아우르지 못한다면 공산당의 집권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


얼마 전 인터뷰한 중국 유명 대학의 교수는 내년 시 주석의 재집권은 기정사실이라고 고백했다. 중국이 설정한 스케줄에 따르면 미국의 경제 규모를 넘어설 2035년에는 공동부유를 위한 견실한 보폭을 내딛고, 건국 100주년 이듬해인 2050년에는 공동부유를 기본적으로 실현해야 한다. 중국 공산당이 지난 100년을 넘어 다음 100년을 도모할 수 있을 지, 시 주석이 집권의 정당성을 유지할 수 있을 지가 여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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