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80년 광주항쟁과 언론투쟁 역사 41년 만에 바로잡혔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87회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을 가결하고 있다. 뉴시스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2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5·18 당시 해직자를 비롯해 성폭력 피해자, 수배·연행·구금자, 공소기각·유죄판결·면소판결·학사 징계자 등이 보상 대상자로 새롭게 포함됐다.

 

현행 보상법은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 부상자를 5·18 관련자로 인정해 관련자와 그 유족에게 보상금 등을 지급해 왔다. 해직자가 보상 대상에 포함됨에 따라 80년 해직 언론인들은 5·18민주화운동 관련자보상심의위원회에서 5·18 관련자로 심의·결정되면 보상받을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고승우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가 5·18민주화운동 보상법 개정에 대한 의미를 담은 글을 보내왔다.

 

 

고승우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국회 본회의는 5월21일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1996년 5·18 특별법 제정 당시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해직자를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범위에 포함한 것이다.

1980년 한국기자협회와 전국 언론사 기자협회 분회 소속 언론인들이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학살 만행에 항거해 검열반대, 제작거부를 한 뒤 41년 만에 1980년 광주항쟁과 언론투쟁이 하나가 되었다. 이로써 광주항쟁이 전국 규모에서 벌어진 진실이 만천하에 확인되고 광주항쟁과 언론투쟁에 대한 역사바로잡기가 완성의 단계에 다가간 것이다. 동시에 전두환 신군부가 정권을 찬탈하면서 광주항쟁과 언론항쟁을 분리하고 광주항쟁을 지역항쟁으로 격하, 조작하려던 반민주적 공작이 41년 만에 격파되고 정의가 확립된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2021년 5월21일은 한국 현대사와 언론역사에서 너무 뜻깊은 날이다.

전두환 신군부가 80년 언론투쟁에 대해 폭거를 저지른 이유는 신군부의 광주학살 만행에 전국 언론인들이 검열반대, 제작거부로 정면 대항했기 때문이다. 당시 언론인들은 한국기자협회를 주축으로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 자행된 언론탄압을 비판하면서 민주주의와 언론자유 회복, 유신언론인 청산 등을 외치며 1980년 5월16일 전국 언론사에서 검열거부를 감행할 계획을 확정했었다. 그러나 신군부가 5월17일을 기해 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기자협회 김태홍 회장 등 간부들에 대해 체포령을 내렸다. 동시에 대학가와 시민사회의 민주인사, 야당 정치인들을 대거 연행, 감금하는 폭거를 저지르며 광주학살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신군부는 광주학살의 진상을 왜곡하고 광주를 폭도로 모는 허위발표를 언론에 보도하도록 강제했다.

전국 언론사는 신군부의 광주학살 만행 중단과 정상적인 보도를 요구하며 개별 사별로 사원 또는 기자총회를 열어 광주학살에 항거하는 투쟁을 시작했다. 광주항쟁 기간 신문·방송·통신 제작이 중단되지 않아 국민들에게 언론의 군부에 대한 항거가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광주항쟁 기간 광주 일원을 제외하고 신군부에 저항한 세력은 언론계가 유일했다. 전두환은 주요언론사 사장을 불러 제작거부 중단을 지시하면서 협박하고 일부 언론사 앞에 장갑차를 배치하는 등의 무력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광주에 파견된 기자들과 외신기사를 통해 계엄군의 광주시민, 대학생에 대한 살육, 폭력행사에 분노한 전국 언론인들은 항거를 계속했고 광주가 계엄군에게 짓밟힌 1980년 5월27일 분루를 삼키며 제작거부를 중단해야 했다.

당시 신문과 방송은 신군부의 강압으로 광주를 폭도의 도시로 몰아가는 식으로 보도했고 광주에선 방송사가 불타기도 했다. 이에 대해 80년 투쟁언론인들도 무한책임을 진다는 점을 가슴 깊이 새기고 5공화국 등장과 함께 ‘말지’ 창간 등을 통한 반독재 투쟁을 벌였다.

전두환 신군부의 최악, 최대의 언론탄압

전두환 신군부는 광주항쟁 이후 정권 찬탈 작업을 본격화하면서 언론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폭거를 자행하기 시작했다. 신군부는 △1980년 7월 정기간행물 등록 취소와 폐간조치를 내려 수백 종의 월간지 등의 발행을 저지하고 △대중매체 언론사 전체를 상대로 일괄사표를 강요한 뒤 언론인 1000여명을 불법 해직시키고 △언론사 통폐합 조치를 취해 전국 수십 개의 신문·방송사의 문을 닫게 하면서 300여명의 언론인들이 직장에서 내몰았고 △언론사를 장악하기 위해 언론악법인 언론기본법을 만들어 신문, 방송을 정부의 나팔수로 전락시켰고 보도지침을 만들어 언론보도를 철저히 통제했다.

전두환 신군부의 언론 전반에 걸친 야만적인 폭거는 정부수립 이후 국내 언론에 가해진 최악, 최대의 언론탄압이었다. 신군부는 특히 언론인 1000여명을 불법 해직시키면서 해직 사유를 국시부정, 반정부 등으로 분류했다. 블랙리스트를 돌려 취업을 방해하면서 해직언론인들의 집단저항을 약화시키는 공작을 자행했다. 신군부와 그 동조세력은 김영삼 정권 들어 5·18 특별법을 만들 당시 광주 현지 투쟁과 언론인들의 투쟁을 분리시키는 특별법을 제정해 광주항쟁에 대한 역사적 사실조차 왜곡하고 훼손시켰다.

1980년 불법 해직된 언론인들은 1984년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를 만들어 민주언론시민연합 창립, ‘말’지 발행 등을 통해 전두환 정권에 맞섰다. 90대 이후 수차례에 걸쳐 80년 해직언론인 배상 또는 보상 특별법이 발의되도록 노력했고 2005년부터 매년 광주항쟁 기간 5·18재단 지원 등을 받아 광주 현지에서 언론세미나 등을 개최해 왔다. 특히 광주항쟁에 언론투쟁을 포함하는 것이 역사바로잡기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특별법 제정에 노력했고 광주항쟁 행사에 동참하면서 ‘광주의 전국화’가 당위라는 것을 실천했다.

언론인 강제해직은 1997년 전두환, 노태우에 대한 내란 사건 등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 그 불법성이 확인됐고,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09년 신군부의 1980년 탄압에 대한 진상을 규명해 발표한 바 있다. 80년 언론인 투쟁은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를 통해 수백명이 민주화 관련자로 인정받아 그 역사적 의미가 공식 확인되기도 했다. 한국기자협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PD연합회, 자유언론실천재단 등은 2019년 3월과 2020년 5월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80년 언론인 투쟁의 역사적 사실이 포함되어 언론 역사가 바로잡힐 수 있도록 하고 해직 언론인에 대한 배상법이 국회를 통과할 것도 촉구했다.

문 대통령 1980년 언론투쟁 역사 수차례 강조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1980년 전국 언론인들이 전두환 신군부에 맞서 검열반대와 제작거부 투쟁을 벌인 것에 대해 진상 규명, 역사바로잡기 등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18 민주화운동 제37주년 기념사에서 광주항쟁의 역사적 의미와 함께 “진실을 밝히려던 많은 언론인과 지식인들도 강제해직되고 투옥당했습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2020년 5월18일 제40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경찰관뿐만 아니라 군인, 해직 기자 같은 다양한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노력하겠다”고 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한국기자협회가 지난 5월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제16회 ‘기자의 날’ 기념식에 보낸 축전을 통해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를 위해 청춘을 바친 원로 언론인들께 존경의 말씀을 드리며 취재 현장과 편집국에서 땀 흘리고 계신 모든 언론인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며 “언론 뒤에 따라올 수 있는 단어는 오직 자유다. 독재와 검열 언론 통제에 맞선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의 사직서 제출과 한국기자협회의 검열거부라는 용기있는 행동이 있었기에 오월의 진실은 광장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16회 '기자의 날' 기념식에 보내온 축전.

기자의 날은 1980년 5월20일 기자들이 전두환 군사정권의 언론 검열에 맞서 제작 거부에 들어간 날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2006년 제정됐다. 

언론 역사 바로잡기, 우리 사회 정상화 첫걸음

80년 언론투쟁이 역사 속에 광주항쟁의 일부로 합체되기까지 정말 오랜 세월이 흘러야 했다.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했던 36년보다 더 긴 세월이 흘러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전두환 신군부는 내란, 정권찬탈 사건 과정에서 언론을 세계 언론 탄압사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반인륜적이면서 전면적, 심층적, 야만적으로 파괴하고 진실을 은폐, 허위조작했기 때문이다. 또 권력기관을 총동원해 언론투쟁에 대한 철저한 공작정치로 진실을 거짓으로 낙인찍고 대중을 기만했기 때문이다. 신군부가 불법 해직한 언론인을 5·18 관련자로 포함하는 것은 역사바로잡기의 일환으로 ‘광주정신’을 부정하는 일부 세력의 왜곡과 폄훼에 맞서고 5·18의 전국화 실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5.18 특별법이 1996년 제정될 당시 신군부와 그 추종세력의 반대로 1980년 언론인 투쟁은 이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4·3특별법, 부마항쟁법 등 여러 민주화 관련법에 모두 해직이 들어 있는 것에 비춰 형평성에 문제가 있었다. 동시에 광주항쟁 당시 신군부의 반헌법적 폭거에 대해 전국 언론인들이 항거한 것은 당연히 광주항쟁의 일부로 포함시켜야 했다. 그것은 역사바로잡기 차원에서 당연했고 ‘광주의 전국화’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광주항쟁 발생 이후 41년이 되는 오늘날에도 5·18 당시 계엄군에 발포 명령을 내린 자가 누구인지, 계엄군이 시민군을 향해 헬기 사격을 가했는지 등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980년 언론투쟁이 광주항쟁의 일부로 법제화된 것은 광주항쟁의 진상이 철저히 규명되는데 한 발 더 다가선 것을 의미한다. 이런 노력이 지속되고 그에 따른 법적 조치가 완벽히 취해져야 한다. 그래야 역사와 정의, 진실을 외면한 적폐세력들이 광주항쟁을 폄훼하는 망언이나 행동을 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

1980년 언론투쟁에 대한 역사적 자리매김이 이뤄진 것을 계기로 박정희 정권이 자행한 언론 탄압을 상징하는 75년 동아· 조선 투쟁 등 해방 이후 전개된 언론 민주화투쟁에 대한 올바른 자리매김과 원상회복이 시급히 취해져야 한다. 언론 투쟁역사의 정상화가 전체 사회의 비정상을 정상화하는데 첫 단추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국회는 시대의 요구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언론적폐 청산과 언론 정상화 등에 대한 입법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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