햐신타 루이사(25)씨는 한국 도서 번역가다. 2년 만에 소설 4권, 에세이 3권, 시집 1권을 인도네시아어로 번역했다. 11쇄까지 찍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인도네시아 서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2016년 서강대에서 한 학기 공부한 걸 빼면 사실상 한국어를 독학했다. 평균 번역료는 권당 200만 루피아(약 16만원)로 적은 액수다. 그는 기자에게 “한국 책을 사랑하지 않으면 쉽게 나설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클라라(16)양은 중1 때부터 한국 드라마를 봤다. 장당 550원짜리 해적판 CD를 사서 일주일에 3개 드라마 전편을 시청했다. 밤을 새우는 날이 허다했다. 지금껏 본 한국 드라마가 200편 이상(CD 800여장 분량)이다. 학교에서든 학원에서든 한국어를 제대로 배운 적도, 한국인을 직접 만난 적도 없지만 한국어 실력은 유창하다. “한국어가 좋아서 자막을 보지 않은” 덕이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문화원이 처음 마련한 ‘한국문학 번역자 발굴 공모전’에 최연소 수상했다. 또래 한국 학생도 버거울 근대소설 ‘봄봄(김유정)’을 인도네시아어로 옮겼다.
두 사람 모두 한류가 낳은 우리의 귀한 자산이다. 인도네시아는 한류가 으뜸이다. 아니 생활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튜브에서 한류 언급 및 시청 비율 세계 1위, 한국에 대한 국가이미지 조사(2018년)에서 ‘긍정’ 비율(96%) 세계 1위다. 어느 시골에 가도 간단한 한국어 인사를 하는 주민을 만날 수 있다. 기자가 직접 취재한 한국어 독학자들은 손에 꼽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많다. 한국어를 조금이라도 구사하는 현지인에게 물으면 열에 네댓은 “혼자 공부하고 있다”고 답한다.
인도네시아의 한국 사랑은 짝사랑에 가깝다. 단지 취업 수단이나 돈 때문이 아니라 그저 한국이 좋고 알고 싶어서 한국어를 독학하는 청춘이 많다. 주로 대중매체로 한국을 접하다 보니 일부 인식이 왜곡돼 있기도 하지만 그걸 바로잡아 나가야 하는 건 결국 우리 몫이다. 한국문화원과 세종학당 등에서 올바른 한국어 교육법을 가르치고 민화, 역사, 문학 등 다양한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노력들은 그래서 반갑다. 그리고 응원한다.
반면 우리는 인도네시아를 잘 모른다.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구전된 특정 개인의 경험이나 잘못된 정보가 사실로 굳어지곤 한다. 현지에서도 기이하게 여기는 사건들을 그 자체가 인도네시아인 양 일반화하기도 한다. 고유명사를 잘못 표기하는 사례도 많다. 예컨대 알파벳을 문자로 쓰는 인도네시아에서 ‘C’는 ‘ㅋ’이 아니라 ‘ㅊ’이나 ‘ㅉ’으로 발음한다. 코모도왕도마뱀이 서식하는 코모도국립공원의 ‘Rinca’섬은 ‘린차’로 적어야 하는데도 인터넷 지식백과사전엔 ‘린카’섬으로 올라있다. 기사를 쓰면서 늘 고민할 수밖에 없는 대목들이다.
무지는 근거 없는 무시로 이어진다. 대개 우리의 시선과 태도는 경제력을 앞세운다. 값싼 노동력 덕에 노동집약적 사업체를 운영하는 교민이 많고, 주재원들도 쉽게 가사도우미와 운전기사를 고용하는 현실도 영향을 미쳤을 게다. 마천루와 밀림이 공존하는 대국이라는 점도 간과된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인도네시아는 배울 점이 많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개방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른 문화를 존중한다. 300여 민족이 ‘다양성 속 통일(Bhinneka Tunggal Ika·비네카 퉁갈 이카)’을 지향한다. 발리, 보로부두르 사원, 프람바난 사원 등은 인류 문화의 보고다. 2018년 세계기부지수 1위일 정도로 장애인 등 소외계층을 살핀다. 같은 해 우리나라 순위는 60위였다. 평균 연령 29세로 젊고 역동적이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유니콘 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차세대 전투기 사업 문제로 인심을 잃었지만 우리나라 무기를 가장 많이 사 준 국가다.
기실 우리의 무지는 언론의 탓이 크다. 기사 부담에 짓눌려,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한 기사를 쓰고 베끼느라 인도네시아의 실체는 가려진다. 2년 넘게 쓴 기사 목록을 살펴본다. 안 써도 좋았을 기사가 꽤 있다. 현지에 특파된 나부터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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