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그 후 4년

[이슈 인사이드 | 젠더] 박정훈 오마이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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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오마이뉴스 기자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

 

2017년 2월16일,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여성 정책을 발표하던 자리에 곽이경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활동가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이 항의 방문했다. 3일 전 문 후보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찾아가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라며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의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곽 활동가는 이날 문 후보의 기조연설 도중 “차별금지법 반대하시는가요? 저는 여성이고 동성애자인데 제 인권을 반으로 자를 수 있습니까?”라고 외쳤고, 문 후보는 “나중에 말씀드릴 기회를 드릴게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문 후보 지지자들이 박수를 치며 성소수자 활동가들을 향해 외친 구호가 ‘나중에’였다.

 

이는 매우 징후적이었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입장이 바뀐 유력 대선 후보를 향해, 연설 도중 기습 발언을 할 수밖에 없었던 성소수자의 절박함에 대한 응답이 결국 ‘나중에’로 귀결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4년이 지나 문재인 대통령 임기 5년차에 들어섰고, ‘나중’은 오지 않았다.

 

혐오는 단순히 앞에서 공격하고 비난하는 일만을 뜻하지 않는다. ‘배제’도 혐오다. 민주당은 성소수자를 배제하고 ‘투명인간’ 취급하는 사회를 바꾸는 데는 관심이 없다. ‘거대 여당’이 된 이후에는 ‘나 몰라라’로 태도를 바꾼 듯하다. 2월12일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클럽하우스를 통해 “(과거 차별금지법을 반대했을 때와 달리)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기본권에 관련된 부분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틀 뒤 민주당 ‘설 민심 간담회’에서 서울시 퀴어퍼레이드에 관한 기자의 질문엔 두 번이나 ‘무응답’으로 회피하면서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저 ‘반대 대신 침묵’을 택하는 식으로 전략만 달라진 것은 아닐까?

 

또한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상민 민주당 의원이 공동발의를 요청한 ‘평등법’(차별금지법)에 민주당 의원들을 포함한 20여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법안 발의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모습이다. 민주당 차원의 적극적인 입법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 총선에선 윤호중 당시 민주당 사무총장이 비례연합정당 추진 계획을 밝히면서 “성소수자 문제로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일으킬 정당과의 연합에는 어려움이 있다”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김기홍씨가 비례대표 후보였던 녹색당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성소수자 가시화 활동에 힘쓰던 김씨는 최근 세상을 등졌다. 인권위는 그의 죽음을 추모하며 “우리 모두가 더 이상 성소수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의 경우 그 책무는 더 크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국회 의석의 5분의 3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의 책무는 야당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하지만 민주당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보수 개신교 세력이 무서워 눈치만 보고 있다. 이것이 한 명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두 명의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을 탄생시킨 정당의 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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