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손배제는 '언론개혁 끝판왕'인가

표현의 자유 '규제'냐 언론 피해 '구제'냐…언론법학회·언론재단 긴급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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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두고 첨예하게 찬반이 대립하고 있다. 작년부터 간혹 제 견해를 피력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인격권이 중요하다, 언론 자유가 중요하다는 식의 원론적 차원의 대립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한쪽에선 정부의 과도한 규제 시도라고 반대하고 다른 쪽에선 개혁 대상인 언론의 몸부림이라고 비판하는 대립한 관점을 넘어서 구체적이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
 

김민정 한국외대 교수가 2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언론법학회와 언론진흥재단 공동 주최 토론회에서 발제를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징벌적 손배제에 언론을 포함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 언론관련 6개 법률안을 3월 국회 안에 처리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한국언론법학회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이들 법안의 쟁점을 짚고 개선 방향을 모색하는 긴급 토론회를 25일 개최했다. 이날 징벌적 손배제 도입과 언론중재법 개정안 주요 내용(정정보도 형식 요건 강화 등)에 대해 발제를 맡은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이례적으로 결론을 맺지도, 찬반 견해를 밝히지도 않았다. 다만 위와 같이 말하며 “향후의 관련 논의는 언론보도 피해구제 제도 전반을 점검하고 개선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 그리고 시민이 언론에 대해 가지는 불신과 적대를 줄여나갈 여타의 노력과 연결되기를 희망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민주당 입법, 피해구제보다 표현의 자유 규제에 초점”

잘못된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는 방향의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징벌적 손배제, 특히 여당이 3월 국회 처리를 목표로 추진 중인 언론 관련 법들이 이에 부합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있는 게 사실이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이 “징벌적 손배제가 언론개혁의 다가 아닌데 마치 ‘끝판왕’인 것처럼 얘기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한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이날 토론회에서 “피해구제 현실화, 언론의 사회적 책임 강조 차원에서 징벌적 손배제 도입에 찬성한다”고 밝힌 김준현 변호사도 민주당의 접근 방식을 두고는 “법적 체계가 잘못돼 있다”며 “입법 취지를 민주당이 더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이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정부여당 내 흐름은 이렇다. 지난해 6월 정청래 의원이 징벌적 손배제 도입을 골자로 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무부는 지난해 9월 언론사까지 징벌적 손배제를 확대 도입하는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리고 이달 초부터 민주당은 언론 관련 6개 법률안을 ‘언론 민생법’, ‘가짜뉴스 3법’이라 칭하며 늦어도 3월 국회 안에 처리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문제는 우선 처리 대상인 법안 중에 언론사 징벌적 손배 도입은 애초 포함되지 않았는데, 최종적으로 언론사를 포함하기로 하면서 엉뚱하게도 언론중재법이 아닌 정보통신망을 통해 규제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김준현 변호사는 이를 두고 “법체계에도 맞지 않고 자가당착”이라고 꼬집으며 “개인적인 견해로는 민주당이 1인 미디어나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의 표현행위를 규제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거기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까 피해구제보다 표현행위를 규제할 법안을 찾게 되고, 그게 상법이었다가 이번엔 정보통신망법이었다가 하는 식이어서 우려된다”고 말했다.

“징벌적 손배 도입과 명예훼손 형사처벌 폐지 병행돼야”

김 변호사는 “언론중재법이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구제를 다루는 법인 만큼 징벌적 손배를 두고 싶으면 언론중재법에 두면 된다”면서 “이와 병행해서 형사상 명예훼손 처벌 폐지가 함께 이뤄지는 게 맞다. 언론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두텁게 보호하면서 민사상 피해를 구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손해배상액에 대해선 3배, 5배 같은 배수제 보다 ‘매출액의 몇 퍼센트’ 식의 정률제나 정액제가 맞다고 주장했다.

 

김준현 변호사(언론인권센터 미디어피해구조본부장)이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도 손해배상액을 현실화하는 대신 형사처벌은 제외하는 방식이라면 논의해 볼 만 하다고 했다. 관련 입법을 하더라도 속도전으로 해선 안 된다고 했다. “어떤 보도가 악의적이고 입증 책임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 법적 쟁점”을 자세히 살피고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 교수는 “언론 법제의 작은 한 부분이라도 바뀌면 실제 보도 관행에 큰 영향을 준다”면서 “전체적으로 미디어·언론 표현의 자유에 가해지는 규제들을 테이블에 다 올려놓고 ‘핀포인트’로 현실적이고 체계적으로 뽑아내야 한다. 미디어 관련 규제 체계 전반을 지금이라도 차분하게 논의해서 개혁적 결과를 가져오는 게 맞다”고 밝혔다.

“과도한 언론 자유 침해라는 주장 과도해, 언론 신뢰만 낮아질 뿐”

반면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는 “징벌적 손배제 도입은 현행법 정신과 실효성이 약하다는 문제의 대안으로 제시됐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면서 “전반적으로 과도한 언론 자유 침해다, 징벌적 손배로 현장 취재와 보도 위축을 가져올 것이란 주장은 실질적인 내용에 대한 우려라기보다 이 법이 실제 적용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이) 내부 자정의 목소리 없이 법적 문제와 기존 실정법의 한계만 주장하는 것은 논리가 약할 뿐 아니라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을 나누고 언론 신뢰만 더 낮아지게 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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