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브랜드 알리는 '똘똘한 PV'가 목표"

[인터뷰] 취임 100일 맞은 이영태 한국일보 뉴스룸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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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태 한국일보 뉴스룸국장은 인터뷰하는 한 시간 남짓한 동안 ‘집중’이란 단어를 12번 말했다. ‘메시지’라는 단어는 10번, ‘집요’하다는 말은 3번 썼는데, 그럴 때면 ‘끈질기게’, ‘뚝심 있게’ 같은 부사어를 함께 썼다.

취임 후 100여 일간 이영태 국장이 매달렸던 일도 이 단어들로 설명할 수 있다. 그는 취임 전부터 ‘메시지, 실험, 변화’를 강조했고, 이를 구현할 인사와 조직개편 같은 “세팅”에 공을 들였다. 변화는 금방 나타났다. ‘제로 웨이스트 실험실’, ‘중간착취의 지옥도’ 같은 탁월한 기획들이 연이어 나왔고, 그보다 먼저 ‘방배동 모자의 비극’을 알린 특종도 있었다. 취임 이후 두 달 연속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을 낸 것이 우연은 아닐 텐데, 이 국장은 한사코 자신의 공이 아니라고 했다. “제가 세팅하면 데스크와 기자들이 움직이는 거잖아요.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잘 해주고 좋은 결과물을 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후배들에게 점수를 준다면 90점 정도 되지 않을까요.”

 

이영태 한국일보 뉴스룸국장이 취임 100일을 맞아 지난 18일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촬영을 할 때만 마스크를 잠시 벗었다.

취임 초기만 해도 사정은 좋지 않았다. 한국일보는 지난해 7월 온라인 중심 조직으로 전환하며 신문과 디지털을 분리하는 조직개편을 감행했다. 뉴스룸국에 속한 대다수 기자에겐 “머리에서 신문을 지우라”는 특명이 떨어졌지만, 몸에 새겨진 기억은 어쩔 수 없었다. 신문과 완전히 헤어지지 못한 채 디지털 세상에 던져진 기자들은 실시간으로 평가되는 페이지뷰(PV)와 높아진 업무 강도에 허덕였다. 지난해 11월 국장 내정 뒤 열린 청문회에서 “쉼에 대한 갈망”이 터져 나온 건 그래서였다. 이 국장은 “효율적인 쉼 보장”을 숙제로 남기고 먼저 “선택과 집중”을 제시했다. “좀 의례적인 기사 있잖아요. 제목이 안 뽑히는데 보도자료가 나왔으니까 굳이 쓰는 기사들. 그런 걸 버리자고 했습니다. 우선순위에 따라 버릴 수 있는 건 과감히 버리자는 거죠. 그러면 더 집중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PV냐 똘똘한 기사냐’ 하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합니다. PV가 목표가 아닐 순 없지만, 그것만이 목표는 아니라고요.”

이 국장은 청문회 때 “어뷰징이나 자극적 기사에 매달리지 않고 속보에 집착하지 않겠다”며 “한국일보의 브랜드를 알릴 PV에 주력하겠다. 그게 우리 목표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의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선 차별화된 관점의 기사와 기획이 필요했다. “사회에 메시지를 주는 굵직한 기획을 집요하게 해보자”며 어젠다기획부를 만들어 기후대응과 마이너리티(소수자) 문제에 집중토록 하고, 경찰팀은 사건이슈팀으로 이름을 바꿔 영역을 ‘라인 밖’으로 확장했다. 실험적으로 ‘1인 랩’도 만들었다. 커넥트팀을 신설해 멀어진 독자와 기자를 연결하고, 부서와 직급별로 나뉜 기자들을 연결할 중책을 맡겼다.

지금까지 분위기는 좋다. 앞서 언급한 탁월한 기획들이 나왔고, 수상 소식도 잇따랐다. 내부 호평도 있다. 특히 커넥트팀이 1주일에 두 번 사내 구성원들에게 보내는 ‘연결레터’는 반응이 좋다. 연결레터를 통해 커넥트팀은 “소소하지만 하나씩 쌓아 가면 디지털 역량으로 구축될” 팁들을 제안하는데 친절하게, 정성 가득 쓴 편지 속 조언들 덕분에 기사의 ‘읽는 맛’이 좋아지고 사기도 진작된다고 호평이 자자하다. 이 국장은 “지금 잘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데스크와 기자들이 기대 이상으로 잘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거듭 공을 기자들에게 돌렸다. 다만 이렇게 덧붙였다. “의미 있는 기사, 공들인 기사를 썼을 때 페이퍼(신문)에선 메시지의 힘으로 오피니언리더에게 주목받고 디지털 공간에선 한국일보의 브랜드를 알리며 높은 PV를 충족할 때 보람 있다고 느낍니다. 과거처럼 신문에만 매달리며 거기 주력하는 게 아니라, 양쪽 공간에서 동시에 힘을 발휘할 수 있구나, 지속적으로 해나가면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는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쓰레기를 사지 않을 권리’를 묻고, 간접고용 노동자 같은 사회적 약자에 집중하며 몇 달이고, 1년이고 “뚝심 있게 메시지를 던지”면 그것이 한국일보의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나아가 “독자들에게 길잡이가 되는 신문”을 꿈꾼다. “중도정론지인 한국일보와 같이 얘기해보고 싶다, 같이 뭔가 해보고 싶다, 이런 독자와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선택적 비판과 선택적 침묵에 지쳐 있는 독자들이 찾을 수 있는 매체였으면 합니다.”

그가 이끄는 뉴스룸국으로 한정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조직”을 만드는 게 목표다. “우리 회사에서 저런 걸 만들어내다니 뿌듯해, 나도 해보고 싶다, 이렇게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시너지를 내며 업그레이드되는 뉴스룸국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 전에 기자들의 ‘쉼’을 보장할 현실적인 방법부터 마련해야 한다. 청문회 때부터 ‘번아웃’을 호소하며 쉼을 요구하던 기자들에게 이 국장은 연초 ‘쉼을 공유하자’는 메시지를 던졌다. 연초부터 계획만 잘 하면 2주 연속 휴가도 누구나 갈 수 있다고 제안한 것이다. 일부 부서에선 이미 휴가 분산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고 한다. 이 국장은 “만일 기자 10명이 있는 부서에서 한 명씩만 꾸준히 휴가를 가면 모두가 충분히 휴가를 쓰고도 업무에 차질이 없을 거로 생각한다”면서 “지금 코로나19 때문에 (해외여행을 못 가서) 달라지긴 했는데, 이런 시스템이 갖춰지면 2주 연속 휴가 정착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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