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당당하지 못한 정정보도

'정정보도 크기·시간, 원 보도 2분의 1 이상 의무화' 입법 추진… 인색한 정정보도, 이대로 괜찮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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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입법을 추진 중인 언론 관련 6개 법안에는 정정보도 크기나 시간을 원 보도의 2분의 1 이상으로 의무화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애초 발의된 법안이 ‘최초 보도와 같은 시간·분량 및 크기’를 명시한 데서 한발 뒤로 물러난 것이다. 민주당의 수정 방침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일률적 규제가 신문·방송의 편집권을 침해하고 신속한 피해구제를 오히려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연속적인 보도나 60분짜리 시사고발 프로그램 같은 경우에도 ‘정정보도 2분의 1 이상’을 실제로 적용할 수 있겠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해당 입법 추진을 강행하고, 이에 대해 민주언론시민연합 같은 시민단체조차 “적절한 입법”이라며 찬성 의견을 낸 배경엔 현행 정정보도 방식이 미흡하다는 인식이 있다. “(지금까지) 잘못된 보도는 크게 나왔는데 정정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에서 판정이 내려져도 구석에다 조그맣게 써도 문제가 안 됐다”(김종민 민주당 최고위원)는 비판이 나오는 건 그래서다. 안타까운 건 이 같은 주장을 반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신문은 정정보도문을 지면 하단에 1단 크기 정도로 배치하고, 방송 뉴스도 단신처럼 소화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언론중재위원회가 2019년 언론 관련 판결(민사) 236건을 분석해서 낸 보고서에 따르면 정정보도등(반론보도·추후보도 포함)의 청구가 받아들여진 84건 중에서 대부분(67건, 79.8%)이 원 보도와 같은 지면이나 프로그램에 보도됐으나, 그 분량은 400자 이하가 절반이었다(48.8%). 대개는 그 내용도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데만 그칠 뿐, 잘못된 내용을 취재하고 보도한 경위를 설명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작은 크기로 ‘바로잡습니다’... 취재보도 경위 설명한 경우 드물어

물론 지난해 우리 언론계엔 기념비적이라 할 만한 정정보도 사례도 있었다. 한겨레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별장 접대 의혹을 보도했다가 7개월 만에 1면과 2면 등을 통해 정정과 사과를 하고, 취재보도준칙도 새로 마련했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3월 창간 100주년을 맞아 주요 오보를 정리하고 사과하더니 6월부턴 2면에 ‘바로잡습니다’를 고정 게재하고 있다. 빅카인즈로 검색한 결과 조선일보가 2020년 한 해 동안 ‘바로잡습니다’로 보도한 건수는 총 121건(디지털 포함)으로, 다른 전국 단위 종합지 10개사(82건)를 합한 것보다 훨씬 많았다. 조선은 국가명 ‘튀니지’를 ‘튀지니’로 잘못 쓴 것부터 직책·출처·연도·한자 등의 오기까지 일일이 바로잡습니다를 통해 정정하고 있다. 단순 오류는 굳이 바로잡지 않거나 슬쩍 고치고 넘어가는 언론계 관행을 생각할 때 정정에 관한 조선일보의 적극성만큼은 단연 돋보인다.

그러나 조선이 ‘오직, 팩트’를 선언하며 밝혔던 제1원칙, “잘못을 바로잡고 사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보를 낸 경위까지 밝히겠다”는 약속이 지켜진 사례는 많지 않다. 예를 들어 정의기억연대 이사가 16억1400만원의 보조금을 “셀프로 심사하고 수령한 사실이 없”다고 바로잡으면서도, 그런데 왜 ‘단독’까지 달아 보도했었는지, 그 경위는 설명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만 그런 게 아니다. 대다수 언론의 정정보도문은 “사실 확인 결과 (원 보도와 다른 내용이) 확인되었다(혹은 밝혀졌다)”는 식으로 쓰인다. 애초에 사실 확인을 제대로 못 한 이유가 무엇인지, 최소한의 취재 경위나 게이트키핑 과정을 밝히는 언론사는 거의 없다.

인터넷 기사 역시 마찬가지다. 언론중재위 조정 등에 따라 정정보도나 반론보도문을 게재하더라도 기사 하단에 배치하거나 오보를 낸 경위 등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정보도문을 게재하면서 잘못된 제목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놔두는 일도 있다. 중앙일보의 <무릎 꿇린채 뒷수갑 찬 엄마, 10살 아들은 지켜봤다>, <“‘아미’가 기부한 패딩···이용수·곽예남 할머니 못 받았다”> 같은 기사는 하단의 ‘바로잡습니다’를 통해 무릎 꿇리는 행위가 없었음을, ‘아미’가 기부한 패딩을 이용수·곽예남 할머니에게 전달했음을 밝혔으나 제목은 수정되지 않은 채 그대로 있다. 신용우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지난해 7월 낸 보고서에서 “기사나 방송의 제목만을 보고 판단하는 미디어 소비 형태가 늘어나고 원 보도나 영상을 별도로 분리해 전파하는 사례가 많다 보니 단순히 기사 하단에 정정보도 등의 문구를 추가하거나 별도로 정정보도 등의 영상을 제작하고 방영하는 것만으로는 미디어 이용자가 정정보도 등의 사실을 인식하기 어렵다”며 “(언론중재위는) 제목에 정정보도 등의 사실을 병기하도록 하는 방안과 방송보도에 대한 정정보도 등을 원 보도와 결합해 게시하도록 하는 방안을 언론사 등에게 적극 권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호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기사의 제목 및 내용에 정정보도등이 있음을 표시”하도록 한 신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NYT 등 해외선 제목-본문 사이에 '정정 박스'... 수정된 내용 먼저 알려

미국의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같은 유력 언론들은 기사에 정정된 내용이 있으면 제목과 본문 사이에 ‘정정(correction)’ 박스를 달아 정정된 내용을 먼저 알리는 게 일반적이다. 보도 이후 변화된 내용이 있으면 역시 서두에 ‘업데이트(update)’ 표시를 해서 그 사실을 알린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2019년 7월 푸드 섹션에 실린 기사 한 편을 정정하면서 기사 본문이 시작되기 전에 무려 16개의 ‘정정’ 박스를 달기도 했다.

국내 사례도 있다. 조선닷컴은 지난 2008년 2월부터 오보 기사 제목에 ‘정정 내용 있음’이라고 표기하기 시작했다. 당시 황순현 인터넷뉴스팀장은 칼럼을 통해 “인터넷에서 제대로 된 정정, 반론 기사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알리며 “비록 작긴 하지만, 이렇게나마 하는 것이 독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2018년 8월을 끝으로 맥이 끊겼다.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인터넷신문협회가 지난달 선포한 ‘언론윤리헌장’에는 이런 내용이 담겼다. “잘못이 있다면 신속하고 분명하게 바로잡는다.” 그리고 “기사를 수정했을 경우 수정의 내용과 이유를 독자가 알 수 있게 표시한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언론은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자율규제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연대는 지난 17일 ‘언론의 신뢰회복과 시민의 피해구제 강화를 위한 6가지 제안’에서 “앞으로도 이런 상태에 머문다면 법적처벌을 강화하라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면서 “시민과 동떨어진 자율기구의 전면 개편, 독자가 참여하는 권리구제 기구와 공동규제 시스템 도입 등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자율적 피해구제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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