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부터 경기방송, MBN까지… '대주주 리스크' 어찌하오리까

방송중단, 폐업 등 경영진 잘못된 판단을 전 구성원이 떠안는 사례 속출
소유·경영 분리 제도화하고 재허가·재승인 필수조건으로 하자는 주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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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금 불법 충당과 회계 조작으로 업무정지 6개월 처분을 받은 MBN. 승인취소라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6개월간 모든 방송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를 앞두고 MBN 구성원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크다. MBN의 말마따나 “프로그램 제작에 종사하는 3200여명의 고용이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책임 소재는 분명하다. MBN 기자협회가 밝힌 대로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에 대한 책임을 전 구성원이 떠안게 된 것”이다. 비단 MBN만의 일이 아니다. ‘대주주 리스크’가 경영에 악재로 작용하는 것은 물론 방송사를 존폐 위기로 내모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경기방송 폐업은 상징적 사례다. 수도권 지역 지상파 민영 방송사였던 경기방송은 대주주의 측근으로 알려진 전무이사가 경영 전반을 장악하는 “비정상적인 상황” 때문에 지난해 말 재허가 심사에서 가까스로 ‘조건부 재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이를 두고 정치권의 언론탄압과 노조의 경영간섭을 주장하면서 지난 2월 돌연 폐업을 선언하더니, 바로 다음 달 주주총회 의결로 폐업을 확정했다. 재허가가 보류되는 위기에서 노조가 직원들을 대신해 방통위에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으나 돌아온 것은 폐업과 정리해고였다.



OBS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경인 지역 민영 방송사인 OBS경인TV는 방통위 재허가 조건을 상습적으로 지키지 않아 재허가 심사 때마다 위기를 겪어왔으나, 대주주와 경영진은 증자와 같은 재허가 조건을 이행하는 대신 폐업 가능성을 운운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OBS희망조합지부가 최근 낸 성명에 따르면 최대주주인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은 지난달 23일 노조와의 면담에서도 구조조정과 임금 삭감, 호봉 동결 등을 주장하며 이를 노조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폐업하는 수밖에 없다고 으름장을 놨다. 노조는 차라리 매각이 낫다며 자격 미달 사업자를 퇴출시킬 것을 방통위에 촉구하고 있다.


SBS 역시 태영건설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뒤 자회사 지분 정리 압박과 매각설 등에 시달렸다. SBS가 TY홀딩스와 SBS미디어홀딩스라는 이중 지주회사를 짊어지게 되면서 공정거래법 위반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태영건설이 자산규모 10조원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어 소유제한 위반 상태도 살펴야 한다. 지주회사 설립으로 ‘오너’인 윤석민 회장의 그룹 지배력은 강화됐지만, 그 여파는 SBS가 감당하는 구조다. SBS노조가 TY홀딩스 체제를 “백해무익한 지배구조 변화”라고 비판했던 이유다. 방통위는 지난 6월 TY홀딩스 설립을 사전 승인하면서 5가지 조건을 부가했는데, 이의 이행실적 여부가 오는 23일부터 시작될 SBS 재허가 심사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어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러나 현행 재허가 심사란 “사업 연장을 기대하는 형식적 심사”에 불과해 실효성이 없다는 게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전문위원의 지적이다. 지난달 27일 열린 민영방송 체제 30년 진단 토론회에서 재허가 제도의 개선을 주장하는 가운데 나온 말이다. 방송사업자로서 큰 결격사유가 없으면 몇 가지 조건을 달아 허가를 ‘갱신’해주다 보니 재허가 조건 이행 의지도 낮을 수밖에 없다. 재허가 제도를 두고 ‘봐주기식’, ‘종이호랑이’라는 지적이 나왔던 건 그래서다.


같은 토론회에서 윤창현 전국언론노조 SBS본부장은 대주주의 대규모 재투자를 강제하자고 제안했다. 윤 본부장은 “방통위는 민영방송에 대한 무관심과 방치에서 벗어나 재허가 심사과정에서 방송발전과 콘텐츠 경쟁

력 강화를 위한 지배주주의 대규모 재투자를 조건으로 부가하고, 불이행 시 사업권 박탈까지 과감히 추진해야 한다”며 “방송을 이용만 하고 재투자에 관심 없는 사업자는 걸러내야 민방 생존의 길이 열릴 수 있다”고 했다. ‘회장님 명함용 들러리 비즈니스’가 아니라 ‘방송 콘텐츠 산업의 유의미한 행위자’로서의 의지를 확인하자는 것이다.


종편 재승인 심사에선 이미 콘텐츠 투자계획을 평가 대상에 넣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사업자의 이행실적이 우수한 건 아니다. MBN은 2017년 재승인 심사에서 콘텐츠 투자 실적이 미미한 것은 물론 타 종편보다 투자 액수도 적은 점 등이 지적을 받았다. 이전에도 이 때문에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받았고, 2019년 1월에도 시정명령을 받은 바 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제도화하고 이를 재허가·재승인의 필수 조건으로 부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사장 임명동의제 또는 공모추천제 △독립 감사제도와 노동이사제 도입 의무화 등이 안으로 제시된다. 양병운 언론노조 특임부위원장은 “방송의 경우 일반 사기업보다 더 강하고 엄격한 공공성, 공정성을 가진다”면서 “현재로선 ‘합법 상태’에 놓여 있는 대주주의 지역 민영방송 사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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