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한 '소유·경영 분리'인가?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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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가 지난 7일부터 릴레이 집회를 시작했다. SBS 대주주인 태영그룹 윤석민 회장이 협의 테이블에 나올 때까지 집회를 이어가는 이른바 ‘끝장 집회’다. 윤석민 회장 측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 원칙’을 내세워 노조와 단독협의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갈등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SBS 노사가 사장 임명동의제 시행 등을 담은 10·13 합의를 맺었던 건 2017년이다. 사장 임명동의제 도입은 국내 방송사 가운데 SBS가 처음이었다. 당시 합의는 윤세영 전 SBS미디어그룹 회장이 사임하면서 선언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실행하는 후속 조치였다. SBS노조는 “이번 합의는 그동안 망가졌던 SBS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첫걸음”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런데 윤석민 회장은 이 합의 이후 단 한 번도 SBS 노조와 만나거나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소유와 경영은 분리되었고 경영상 아무런 직함이 없으니 노조와 만날 일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3월 윤석민 회장이 태영그룹 회장에 취임하면서 SBS 경영 개입 논란이 불거졌다. SBS미디어그룹 콘텐츠 유통 사업을 총괄하는 SBS 자회사인 SBS콘텐츠허브의 이사진을 자신의 측근으로 채우면서다. 이후 노조도 SBS콘텐츠허브가 태영건설 부회장 부인이 소유한 회사에 200억원 규모의 일감을 몰아준 배후에 윤석민 회장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윤 회장과 박정훈 SBS 사장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등 갈등은 잦아들지 않았다.


지난 2월엔 사측이 노조 추천 사외이사 선임을 거부하면서 반발을 샀다. 10·13 합의는 총 3인의 사외이사에 대해 ‘회사와 노조가 각 1인씩 추천하고 나머지 1인은 회사가 추천하는 2인 중 1인을 노동조합의 동의를 얻어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사측은 복수추천이 아니라는 이유로 서류를 반려했다. 이에 노조는 “노사 관계를 근본적으로 붕괴시키고 구성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중대 사태”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노사가 손을 맞잡기는커녕 이미 합의한 약속마저 외면하는 모양새다. 이런 식이라면 합의의 명분이었던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허울뿐이다.


사실 윤석민 회장의 ‘소유와 경영의 분리’ 주장엔 석연찮은 부분이 있다. 지난 6월 방송통신위원회가 승인한 SBS미디어홀딩스 최다액 출자자 변경 건에 대한 이행각서를 제출한 이는 윤석민 회장이었다. 승인 조건엔 △최대주주의 SBS 경영 불개입 △SBS 자회사, SBS미디어홀딩스 자회사 개편 등 경영 계획 마련 △공정거래법 위반 사항의 해소 △경영 계획 수립 시 SBS 종사자 대표와 성실하게 협의 등과 함께 이행각서의 성실한 이행이 포함돼 있었다. 방통위는 승인에 앞서 윤석민 회장과 박정훈 사장을 불러 비공개로 의견을 청취하기도 했다. 이런 정황을 고려하면, 적어도 현재 SBS의 소유·경영 분리가 얼마나 확실히 됐는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당장 SBS노조는 “윤 회장이 추석 전 방통위 고위 관계자를 만난 것을 확인했다”며 “소유와 경영의 분리 원칙에 따라 종사자 대표와는 만날 수 없다면서 방통위 상임위원은 왜 만났냐”고 묻는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실행하기 위해 맺은 합의가 불통의 핑계가 됐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윤석민 회장이 내세우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원칙’이 초라해지지 않으려면 실질적 권한 만큼의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 원칙’은 언론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장치이지 대주주를 위한 방패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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