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X 사업, 인도네시아 '먹튀' 아니다

[글로벌 리포트 | 인도네시아] 고찬유 한국일보 자카르타특파원

고찬유 한국일보 자카르타특파원

▲고찬유 한국일보 자카르타특파원

먹튀. ‘거액의 돈을 벌어들이고 그만큼의 구실은 하지 않은 채 수익만을 챙겨서 떠나는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우리나라와 인도네시아의 방위산업(방산) 협력을 다룰 때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돈은 내지 않고 기술만 가져가려 한다”는 게 골자요, 틀(프레임)이다. 몇몇 사소하고 무관한 사건까지 엮으면서 한쪽으로 몰아가는 고약한 지경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돈부터 내라”는 것이다.


양국 방산 협력의 쌍두마차는 차세대 전투기(KF-X/IF-X) 공동 개발과 잠수함 사업이다. 인도네시아는 쟁쟁한 군사 강국을 제치고 우리 손을 잡았다. 전자는 건군 이후 최대 사업, 후자는 우리나라를 단숨에 세계 5대 잠수함 수출국으로 끌어올린 쾌거로 꼽힌다. 공교롭게도 KF-X는 분담금 미납, 잠수함은 2차 사업 선수금 입금 지연이 발목을 잡고 있다. 동업자이자 최우수 고객이 돈 문제로 분란을 자초한 셈이다.


2026년 목표인 KF-X 공동 개발은 인도네시아가 사업비의 20%(1조7000억원)를 분담하기로 했다. 지불 일정을 따지면 현재 5000억원이 밀려있다. 인도네시아가 계약을 파기하려 한다는 주장의 주요 근거다. 2017년부터 지난해 1월까지 인도네시아 정부가 2200억원을 이미 납부한 사실은 묻힌다. 만약 인도네시아가 지금 손을 뗀다면 그간 한국에 파견한 기술자 100여명의 인건비를 빼고도 2000억원 넘게 손해를 보게 된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국가 신인도 하락이라는 무형의 손실도 불가피하다.


기술만 가져간다는 의혹도 과장됐다. 2016년 개발에 착수한 KF-X는 아직 핵심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실제 가져갈 기술이 없을뿐더러 분담금 비율만큼만 기술을 이전하기로 계약한 터라 함부로 가져갈 수도 없다. 3월 초 경남 사천에 있던 인도네시아 기술자 100여명이 귀국한 일을 문제 삼지만 당시 대구 등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던 상황을 감안하면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현지에 코로나19가 확산되던 4월 초 신태용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등 한국 코치들이 한국으로 돌아간 것과 같은 맥락이다. 취재 결과 인도네시아 기술자들은 현재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결국 KF-X 사업 계약 파기는 오히려 인도네시아 입장에서 ‘돈 잃고 기술도 못 얻는’ 악수다. 그래서 꺼내든 게 재협상 카드다. 분담금 축소, 현물 지급 등 돈에 얽힌 부분이 부각되지만 인도네시아가 중요하게 따지는 내용은 핵심 기술 이전 보증이다. 주요 핵심 기술은 미국과 얽혀 있어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대목이 있는 데다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지난해 말 양국 정상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재협상은 답보 상태에 빠졌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재협상만 타결되면 돈을 지급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 올해 예산에 3000억원을 지난해 배정했다. 다만 기다려주지 않고 믿지 않는 한국 여론에 아쉬운 기색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도네시아는 정권 교체 등으로 한국에서 KF-X 사업이 삐걱거리고 지연될 때마다 기다려줬다. 심지어 개발 일정에 따라 현지에 1000억원을 들여 관련 시설을 짓고 장비를 들여왔다. 1년 가까이 한국을 믿고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는데 정작 한국은 채근만 한다는 얘기다.


단순 무기 구매가 아닌 첨단 무기 공동 개발은 양국 모두에게 전인미답의 길이다. 잡음과 변수는 숙명이다. 다른 나라 전투기 구매 운운하는 최근 인도네시아 국방장관의 행보 역시 공동 개발과는 별개로 판단해야 한다. 당장 계약이 파기되더라도 우리에게 손해는 없지만 동남아시아 시장 개척, 방산 파급 효과, 국가 브랜드 가치 격상 등 우리 미래를 위해 인도네시아는 안보 동맹으로 묶여야 할 동반자다. 무엇보다 인도네시아는 다른 나라가 거들떠보지도 않을 때 우리나라 비행기(KT-1, T-50i)와 잠수함을 처음 사준 통 큰 고객이다.


비용을 완납한 잠수함 1차 사업(3척)은 ‘먹튀’가 애당초 아니다. 우리나라 기술을 전수받아 조립한 3번함이 인도네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수심 250m 잠항에 성공한 1월20일 현장을 취재했을 때 양국 관계자들이 뜨겁게 외친 구호가 있다. 그 구호가 KF-X 사업에도 들리길 기대한다. “우리는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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