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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보도, 가해자에 초점… 조주빈 신상공개 후 더 심화

[언론에 조주빈 신상 첫 공개된 후부터 나온 'n번방 관련기사' 분석해보니]
얼굴 공개 후 8일간 '조주빈'으로 2500여건 검색… 일평균 300건 꼴
범죄 무관한 과거 행적 쫓아… '짐승·악마' 표현, 가해행위 축소 우려

김고은 기자2020.03.31 23:02:59

이른바 ‘n번방 사건’으로 불리는 텔레그램 상의 신종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커지면서 언론의 취재 경쟁도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인 빅카인즈 분석 결과, SBS가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범씨의 신상을 처음 공개한 3월23일부터 30일까지 8일간 ‘n번방’으로 검색된 기사는 총 2898건, ‘조주빈’으로 검색된 기사는 총 2477건이었다. 하루 평균 300건 이상의 기사가 쏟아진 셈이다. 대학생 2명으로 구성된 취재팀 ‘불꽃’이 지난해 9월 텔레그램 내 성 착취 현장을 처음 고발하고, 같은 해 11월 한겨레가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칠 당시 조용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난 1월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n번방 관련 국제 공조 수사를 요청하는 청원이 올라온 뒤 조씨가 검거되기 직전인 3월16일까지 75일간 빅카인즈에 등록된 54개 언론사가 n번방과 관련해 쓴 기사는 총 143건. 하루 평균 2건이 채 되지 않았다. 이마저도 국민청원과 국회 입법청원 현황을 단순 중계 보도하거나 처벌 강화 입법을 약속한 여당 원내대표의 발언을 전달하는 보도가 주를 이뤘다. 지난 3일 국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사상 첫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은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을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않고 다음 날 법제사법위원회에선 청원 취지의 극히 일부만을 반영한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의결했지만, 언론은 “1호 청원 법사위 넘었다”, “‘n번방 방지법’ 국회 통과” 식으로 단편적인 사실만 전달했다. 당시 여성단체 등으로 구성된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는 “미흡하고 졸속적인 대응”이라고 비판했지만, 언론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이후 조씨가 검거되고 n번방 피의자와 가입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청원이 수백만에 달하자 언론은 뒤늦게 사건을 주목하며 국회의 ‘졸속입법’과 ‘뒷북대책’을 나무랐다.


지난달 25일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씨가 탄 차량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와 검찰 유치장으로 향하자 시민들이 조씨의 강력처벌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그 다음날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은 포토라인에 선 조씨의 얼굴 대신 이 사진을 1면에 실었다. /연합뉴스

▲지난달 25일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씨가 탄 차량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와 검찰 유치장으로 향하자 시민들이 조씨의 강력처벌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그 다음날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은 포토라인에 선 조씨의 얼굴 대신 이 사진을 1면에 실었다. /연합뉴스


기록적인 국민청원을 계기로 본격 가열된 취재 경쟁은 조씨 신상공개를 기점으로 극에 달했다. 지난 23일 하루 동안만 468건의 보도가 쏟아졌고, 다음날 보도는 600건에 육박했다. 조씨가 다닌 학교와 학보사 활동 당시 쓴 글, 봉사 활동 경력 등 그가 저지른 범죄와 상관없는 과거 행적을 좇는 보도들이 이어졌다. 〈장애인 돕던 오빠가 ‘n번방’ 그놈이었다〉(조선일보),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전문대 다닐 때 평점 4.17 우등생〉(연합뉴스) 같은 기사는 “선량한 청년”이자 “평범한 전문대생”으로 비쳤던 그의 이중성을 주목했다.


이처럼 언론 보도가 가해자에 집중하는 양상을 보이자 전국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와 민주언론실천위원회는 지난 24일 “피해자 보도가 최우선”이라는 긴급지침을 발표했다. 이 지침은 ‘짐승’, ‘늑대’, ‘악마’와 같은 표현을 쓰지 않을 것을 권고하며 “이런 용어는 가해 행위를 축소하거나, 가해자를 비정상적인 존재로 타자화 하여 예외적 사건으로 인식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여전히 다수의 언론이 악마라는 표현을 썼다. 〈‘악마’ 조주빈 얼굴 공개〉(충청일보), 〈‘n번방의 악마들’ 어떻게 탄생했나···그들에겐 ‘믿음’ 있었다〉(중앙일보), 〈“공포감 더 커진다”..‘악마’ 손에 내 영상이 있다면〉(SBS) 등이다. MBC ‘뉴스데스크’는 26일 〈‘새끼손가락 든 사진’ 인증‥‘일베’가 괴물 키웠나〉란 제목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언론이 주목한 인물은 조씨만이 아니었다. 손석희 JTBC 사장이 과거 조씨에게 협박당하고 돈을 뜯긴 사실이 알려지자 손 사장이 보도 전면에 등장했다. 3월23~30일 빅카인즈에서 조주빈으로 검색된 기사 2477건과 연관성(가중치)이 높은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 ‘박사방’, ‘텔레그램’, ‘착취물’ 다음으로 ‘손석희 JTBC 사장’이 많았다. ‘피해자들’이란 키워드의 2배가 넘었다. 중앙일간지 중에선 세계일보(45건) 다음으로 조선일보(44건)가 손 사장 관련 기사를 많이 썼다. 조선은 〈수갑 찬 조주빈이 손석희를 갖고 놀다〉, 〈손 사장님, 그날 밤 무슨 일이?〉 등의 칼럼에서 협박 ‘피해자’인 손 사장의 행적을 더 주목했다. 지난 27일에는 지면과 온라인의 ‘촌철댓글’ 코너에서 “손 사장이 이렇게 달라는 대로 주는 줄 알았으면 나도 한번 달라고 해볼걸”이란 댓글을 소개하기도 했다.


사안의 심각성보다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한 보도 행태는 n번방 사건을 최초로 고발한 ‘불꽃’에 대한 과도한 관심으로도 이어졌다. 결국 ‘불꽃’팀은 지난 29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언론은 저희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며 “5일 동안 30개 정도의 언론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 똑같은 내용을 30번 말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인터뷰는 이미 다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년을 깊은 곳에서 숨죽이고 있어야 했을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리다”며 “이대로 흐지부지 끝내지 않을 수 있도록 부디 국민 여러분도 좀 더 힘을 내달라”고 당부했다.


언론노조는 긴급지침에서 “사건 자체에 대한 관심을 넘어 성범죄를 유발하거나 피해를 확산한 사회구조적 문제제기에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구조적인 문제 해결과 피해자 보호·지원 대책을 다룬 보도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현저하게 부족하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26일 논평을 통해 “대중이 관심 가질 만한 사건이 생기면 맹렬하게 보도하다가 관심이 가라앉았다 싶으면 순식간에 외면해 버린 ‘냄비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지적하며 “이제라도 언론은 ‘n번방’ 사건에서 드러난 위기 청소년 문제, 피해자 영상 문제,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새로운 방식의 성착취 문제 등을 해결할 대안 모색에 적극 나서서 변화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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