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레이마니 암살과 항상성(homeostasis)

[글로벌 리포트 | 미국] 이태영 텍사스대 저널리즘 박사과정

이태영 텍사스대 저널리즘 박사과정.

▲이태영 텍사스대 저널리즘 박사과정.

모든 유기체는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항상성이란 환경의 변화에도 최적의 상태를 지키려는 특성을 말한다. 항상성이 교란되면 유기체의 안전은 위협받는다. 거대한 유기체인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전쟁은 외부로부터 사회의 항상성을 깨뜨리는 주된 요인 중의 하나다.


새해 시작부터 미국은 물론 전세계가 항상성이 무너질 위기 앞에서 불안에 떨어야 했다. 지난 3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카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을 암살하면서 두 나라 사이에 전운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군부 실세가 살해된 데 대해 이란이 보복을 선언하면서 3차 세계대전의 가능성이 제기되자, 미국에서는 선발징병시스템(Selective Service System) 웹사이트가 접속 폭주로 마비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예고대로 이란은 지난 8일 이라크 내 미군 기지에 대해 보복 공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고,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의 확전 대신 경제제재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란이 미국에 대한 보복이라는 명분은 세우되 인명피해는 막음으로써, 전면전을 원치않는다는 뜻을 전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3차 대전으로 치달을 뻔 했던 일촉즉발의 위기는 면했다. 그러나 안도하기엔 아직 이르다. 전쟁의 도화선이 될 뻔한 솔레이마니 살해가 정당했는지를 둘러싼 논란이 해소되지 않은 탓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미국 대사관 4곳에 대한 공격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며 자국민의 안전을 위한 ‘방어적’ 선택이었음을 강조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솔레이마니가 미국에 ‘중대한 위협’을 줄 만한 공격을 ‘단기간’ 내에 감행하려 했다고 거들었다. 그러면서 “정치적 동기에 인한 갑작스런 살인”을 뜻하는 ‘암살(assassination)’이라는 표현 대신 ‘표적살해(targeted killing)’ 등의 용어를 사용했다. 솔레이마니 제거가 대내외적으로 적법하고 정당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국제법상 자위권은 ‘실질적이면서 임박한 무장공격’에 대한 증거가 있을 때에만 인정된다.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이 1976년 행정명령으로 불법으로 규정한 이래, 정치적 동기에 의한 암살은 미국에서 불법행위에 해당된다. 미 언론들도 정부 행위의 위법성을 판단하는 정치적 부담을 피하고자 덩달아 ‘암살’이라는 단어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 사건 초기 ‘암살’이라고 표현했던 일부 언론조차 기존의 제목을 바꾸는 등 단어 사용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과 상당수의 전문가들은 솔레이마니를 살해할 만한 ‘임박한 위협’에 대한 증거가 없다고 반박한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제외하면 솔레이마니가 미 대사관을 공격하려 했다는 그 어떤 증거도 제시되지 않았다. 이러한 가운데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12일 CBS 인터뷰에서 “대사관 4곳을 공격하려 했다는 증거를 하나도 보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솔레이마니 살해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은 더욱 커지고 있다.


구체적인 위협도 없는데 솔레이마니를 살해했다면 이는 국제법 위반은 물론 정치적 암살에 해당한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솔레이마니 살해는 11월 재선을 위한 지지층 결집과 현재 진행중인 탄핵에 대한 여론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정치적 동기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언론은 여전히 ‘암살’이라는 단어 사용에 소극적이다.


항상성은 외부의 자극은 물론 내부적 요인에 의해서도 깨어진다. 항상성이 교란되면 생존 자체가 위협받기 때문에 모든 유기체는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제들을 갖고 있다. 이 중에서도 현 상태를 파악하고 문제를 감지하는 수용기(receptor)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사회의 존속을 위한 수용기는 언론이다. 언론이 정치적 부담보다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는데 집중할 때 사회의 항상성이 지켜질 가능성은 높아진다.


솔레이마니가 미국을 공격하려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그는 암살된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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