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처 관행, 그 너머를 향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신년기획 | 다시 쓰는 저널리즘] (1) 돌고 돌아 출입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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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2019 언론수용자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언론을 신뢰하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한 응답자는 전체의 28.1%였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매년 내놓는 ‘디지털뉴스 리포트’에서도 드러나듯이 우리 언론에 대한 낮은 신뢰도는 이제 놀라운 일도 아니다. 혹자는 그 이유를 지난해 ‘조국사태’에서 찾고, 조금 멀게는 ‘세월호’에서 찾겠지만,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그 기원은 오래됐다는 것을. 언론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위기’를 말했다.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찾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변죽만 울리는 데 그쳤다. 그렇게 말뿐인 혁신을 부르짖는 사이, 미디어 환경은 격변했다. 언론만 빼고 모든 것이 다 바뀌었고, 이제 언론을 향해서도 변화하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기자들의 익숙한 취재 관행, 뉴스 제작, 뉴스룸의 의사결정 방식 등 모든 것이 도전을 받고 있다. 그래서 기자협회보가 준비한 2020년 첫 기획의 주제는 ‘다시 쓰는 저널리즘’이다.  /편집자주


KBS1라디오 ‘열린토론’과 JTBC ‘뉴스룸’은 1일 방송되는 신년 특집 토론의 주제로 ‘언론개혁’을 선정했다. 지난해 이른바 ‘조국 사태’를 지나면서 분출된 언론개혁 이슈가 해를 넘어 이어진 것이다. 언론개혁이 이처럼 국민의 관심을 받는 사회 의제로 떠오른 것은 이것이 뉴스룸, 나아가 언론사 조직을 뒤흔드는 위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KBS다. KBS는 ‘유시민의 알릴레오’ 이후 ‘검언유착’의 상징처럼 여겨지며 ‘수신료 분리 징수’ 국민청원 20만명 돌파라는 전무후무한 상황을 맞았다. 위기감을 느낀 경영진과 보도 책임자가 일제히 ‘쇄신’과 ‘제도 개선’을 다짐했고, 그 과정에서 새로 선임된 보도국장(통합뉴스룸국장)이 첫 번째 공약으로 들고나온 것이 ‘출입처 제도 혁파’였다. 국내 최대 규모의 언론사 보도국장이 앞장서 출입처 제도의 대안을 고민하겠다는 선언은 그 자체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그리고 기자단의 폐쇄적 운영, 특권 논란과 결합하며 출입처 제도는 청산해야 할 대상으로 떠올랐다. 출입처 문제가 언론계를 넘어 사회 의제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사실 출입처 문제야말로 언론이 오랫동안 풀지 못한 숙제였다. 일례로 한겨레는 지난 2006년 초 ‘제2창간’ 선언을 통해 출입처 체제를 버리겠다고 공언하며 “이제부터 기자는 출입처가 아니라 영역별 팀에 속해 각 사안에 대한 종합적 접근을 위해 취재하고 기사를 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7년 뒤 한겨레가 창간 25년을 맞아 낸 보고서에는 이런 지적사항이 적혔다. “출입처와 보도자료 위주의 기사를 일방적으로 독자에게 공급하고 있다.”


출입처가 언론의 잘못된 관행을 상징하는 키워드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랜 시간 출입처 제도에 익숙했던 기자들은 근본적인 시스템 자체를 바꾸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3월 전남 목포신항에 마련된 기자실. /뉴시스

▲출입처가 언론의 잘못된 관행을 상징하는 키워드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랜 시간 출입처 제도에 익숙했던 기자들은 근본적인 시스템 자체를 바꾸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3월 전남 목포신항에 마련된 기자실. /뉴시스


2000년 창간 당시 출입처와 기자실 제도를 비판했던 오마이뉴스도 지금은 다수의 기자가 출입처를 갖고 있거나 기자단에 가입해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전신인 한국언론재단이 지난 2006년 현직 기자와 언론학자 등으로 꾸렸던 ‘2020 미디어위원회’ 역시 출입처 관행을 주요의제로 다루며 출입처 사이의 벽을 허물고 “입체적 취재”를 해야 한다고 제언했으나, 현실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 위원회에 참여했던 안수찬 한겨레 기자는 2013년에 쓴 책 ‘뉴스가 지겨운 기자’에서 출입처 체제를 전족(纏足)에 비유한 바 있다. “한국의 언론사는 출입처 시스템과 하루 단위 마감 압박으로 기자들의 발을 꽁꽁 묶어 훈련시키고 있다.”


출입기자단 제도는 1920년대 일제하에 도입돼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100여년을 존속해왔다. 그러나 현재 언론이 놓인 환경은 100년 전은 물론이고 20년, 10년 전과도 다르다. 기자들이 쓴 기사가 이용자들에 의해 거의 실시간으로 평가받고 팩트체크 당하는 것을 넘어 취재방식까지 비평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기자들도 출입처 제도를 대놓고 옹호하진 않는다. 출입처 유착, 기자단 특권 논란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기자들이 공감을 표하고 개선이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수습 기간이 끝나자마자 출입처를 배정받는 것으로 기자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당연한 환경에서 다른 ‘대안’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출입처 제도가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태 지속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정훈 신한대 교양교육원 교수는 말한다. “관행이 문제없이 굴러가면 그대로 두면 된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피해를 느낀 소비자가 등을 돌리기 시작하면 부정적 이미지만 남을 것이다. 관행이 주는 편리함에 안주하다 보면 변화하기는 힘들다. 둘 중 하나다. 내몰려서 바뀌든지 스스로 바꾸든지. 시간이 많은 것 같지는 않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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