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논리'서 독립한 새 언론을 갈망하며

[스페셜리스트 | 경제] 곽정수 한겨레신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곽정수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곽정수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최근 언론단체의 연례 송년모임이 있었다. 이른바 보수·진보 등 여러 성향의 기자들이 함께 자리했다. 한 해 동안 수고 많았다는 덕담을 주고 받다가, 그만 “우리 모두가 마치 패잔병 같다”는 넋두리가 나왔다. 공연한 소리를 했는가 싶었는데, 한 동료 기자가 공감을 나타냈다. 다른 기자들도 착잡한 표정이었다.


2019년 한국 언론은 위기다. 언론인 중에 이를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기자를 ‘기레기’라고 부르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은 세상이 됐다. 언론의 생명인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최근 미국방송인 ‘폭스뉴스’에서 중견기자들이 잇달아 사직했다. 개국멤버이자 간판앵커인 셰퍼드 스미스가 10월에 돌연 그만두더니, 역시 개국멤버이자 워싱턴지국장인 캐서린 헤리지가 ‘CBS방송’으로 옮겼다. 헤리지가 성명에서 “팩트와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CBS방송에 합류하게 돼 영광이다”라며 팩트(사실)를 강조한 것을 두고 폭스뉴스에 대한 비판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폭스뉴스는 대표적인 친트럼프 매체다. 기자들이 트럼프에 대한 비판기사를 쓰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 언론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진보성향 언론은 보수성향 독자로부터 외면받은지 오래다. 요즘에는 진보성향 언론이 어쩌다 진보 정부를 비판하면, 팩트 여부와 상관없이 진보성향 독자들로부터 ‘기레기’라는 욕이 쏟아진다. 보수성향 언론도 똑같은 처지다. 기사의 기본인 ‘팩트’가 설 자리가 사라졌다. 언론 위기의 뿌리에는 ‘팩트 위기’가 놓여 있다.


기자들이 언제부터인가 팩트를 확인하는 노력에 앞서 독자들이 기사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먼저 살피게 됐다. 독자에게 박수받을 기사는 열심히 찾아쓰고, 나머지는 외면하는 ‘자기검열’이 갈수록 심해졌다. 입맛에 맞는 기사는 대서특필하고, 그렇지 않은 기사는 축소·누락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아예 팩트를 입맛에 맞게 과장·축소·왜곡하는 온갖 ‘사기술’까지 등장했다. ‘조국 사태’ 보도는 그 결정판이다. 2019년 언론의 위기는 ‘자승자박’의 결과다.


국민은 30여년 전 ‘땡전뉴스 시대’에 살았다. TV와 라디오 뉴스를 켜면 항상 전두환 전 대통령 소식이 머리기사로 올라왔다. 사실을 정확·공정·신속하게 전달해 건전한 여론을 형성하는 언론의 기능은 사라졌다. 국민은 언론을 믿지 않았다. 정치·자본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새 언론을 갈망했다. 그리고 드디어 새 언론이 출현했다. 새 언론은 성역없는 보도로 신뢰를 얻었다.


하지만 어느덧 ‘진영논리’라는 새로운 성역이 만들어졌다. 언론이 진영논리에서 독립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언론이 자율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국민은 새로운 언론을 찾을 것이다. 새 언론을 찾지 못하면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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