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가 어떻게 수사기관에 넘어갔는지, 알 필요가 없다?

['통신자료 무단수집' 대법 상고 기각]
수사기관이 통신자료 요청하면
현행법상 법원 통제 강제 안 해
언제든지 정보 넘어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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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들이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수집 이유를 공개하라며 제기한 상고가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대법원 1부는 지난달 31일 전국언론노조 소속 언론인들이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를 상대로 제기한 ‘통신자료제공요청서 공개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한 원심을 확정했다. “통신자료제공요청서의 내용이 정보통신망법상 열람청구 대상이 되는 개인정보가 아니”라며 기각한 1,2심 판결이 최종심에서 확정된 것이다.


앞서 지난 2016년 정보·수사기관이 국민의 통신자료를 광범위하게 조회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충격을 안겼다. 당시 언론노조가 17개 언론사 소속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긴급 조사를 한 결과, 수사기관의 요청에 따라 97명의 통신자료가 194회에 걸쳐 제공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중 다수가 기자였으며, 통신자료를 요청한 수사기관은 군, 검찰, 경찰 등 다양했다. 기자들의 취재와 관련해서 수사기관이 통신자료를 요청한 정황도 있었다. 현행 법률은 수사기관의 통신자료제공요청에 대해 법원의 통제절차를 강제하지 않아 이용자 자신도 모르게 이름, 주소, 주민등록번호 같은 신상정보가 언제든 정보·수사기관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래서 언론인들이 수사기관이 자료제공을 요청한 사유와 요청한 정보의 범위 등만이라도 사후에 확인코자 소를 제기했으나, 대법원은 공개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민주노총, 언론노조,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등은 지난달 31일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대법원이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수집 이유를 공개할 의무가 없다고 판결한 데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진보네트워크센터

▲민주노총, 언론노조,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등은 지난달 31일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대법원이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수집 이유를 공개할 의무가 없다고 판결한 데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진보네트워크센터


이날 판결 직후 민주노총, 언론노조,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등은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이라는 헌법적 권리를 침해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대법원은 정보 주체가 자신의 정보가 왜 제공되었는지 알 권리조차 인정하지 않았다”며 “국민의 권리를 외면한 대법원의 결정에 실망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판결이 언론 자유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우려도 크다. 언론노조는 “통신자료 조회만으로도 수사기관은 제보자 및 공익신고자가 누구와 접촉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KT를 상대로 한 재판과 향후 진행될 추가적인 소송 결과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수원지방법원은 지난해 6월 KT 이용자가 같은 취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으며,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이와 별개로 통신자료 무단수집의 근거가 된 법률(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 및 제4항 단서)에 대한 헌법소원과 경찰, 국정원, 이통사 등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과 행정소송도 계속되고 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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