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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A씨 인스타 가보니 헉?'… “제가 이런걸 왜 써야하나요?”

온라인 이슈팀 기자들의 고뇌… 썼던 기사들 돌아보며 나날이 자괴감

박지은 기자2019.11.06 16:31:21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는데 수업에서 하지 말라고 배운 것을 그대로 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일하며 돈 받는 게 싫어 그만뒀습니다.” 올해 초 한 경제지에서 온라인 기자로 근무하다 그만둔 A씨는 자신이 그동안 쓴 기사를 돌아보면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털어놨다. “당시 한 여성 유명인이 큰 화두였어요. 그 사람의 SNS를 수시로 들어가 조회수가 잘 나올 만한 것들을 기사화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데스크는 개인의 사생활을 보도하는 것을 알 권리라며 정당화하더군요.”


A씨의 사례는 언론사 온라인 기자들의 한 단면이다. 디지털에 대응한다면서 언론사들은 유명인을 대상으로 한 사생활 보도, ‘논란’ 장사, 악플 중계 기사들을 거의 24시간 내내 쏟아낸다. 종합일간지, 경제지, 온라인매체 어디든 어뷰징, 트래픽용 기사들을 재생산하는 최일선에 온라인 기자들이 있다.


한 종합일간지 온라인 대응팀에서 일하고 있는 B기자는 하루에 많게는 20건 정도의 기사를 쓰고 있다. 500자 분량의 기사 하나는 15분이면 충분하다. 발제 회의나 데스킹도 없다. 오직 실검과 온라인 이슈를 따라 쓸 뿐이다. B기자는 “유명인의 SNS 사진이나 악플을 가지고 ‘논란’으로 명명해 기사를 보도하면 기사에는 악플이 달리고, 실검에는 해당 유명인 이름이 오른다. 온라인 기자들은 실검에 대응하기 위해 그 유명인이 겪은 과거 사건을 기사화한다. 과거 사건까지 실검이나 연관검색어에 뜨며 악순환은 반복된다”며 “해당 유명인은 SNS에 사진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갇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포털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실검)는 온라인뉴스 콘텐츠의 주요 아이템이다. A씨는 “온라인이슈 기사 소재의 70%는 실검, 유명인 인스타그램이고 나머지 30%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라며 “데스킹이라는 게 있다면 제목 조정 정도다. 제목이 밋밋하거나 평범하면 싫어한다. 대중의 클릭을 유도하는 더욱 자극적인 제목을 원한다”고 했다.



온라인이슈 대응 기사 대부분은 계약직이나 인턴 기자들이 담당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디지털 부서로 이동한 공채 출신 정규직 기자들이 맡기도 한다. 여기서 비정규직 기자와 정규직 기자 간의 일의 차이가 발생한다. 한 경제지 C기자는 “온라인 이슈만 따라가면 되고 재택근무가 가능해 기자들 사이에서 온라인 기사 전담 부서는 일종의 ‘꿀보직’으로 여겨지고 있다”며 “편집국 출신 기자들이 정치, 사회 쪽 속보를 맡고, 연예나 온라인 논쟁 이슈는 비정규직 기자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무분별한 사생활 보도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건 수익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포털을 통해 기사를 보는 현실에서 실검 대응을 하고 자극적인 기사로 클릭을 유도해야 기사 조회수가 높아진다. 조회수는 곧 온라인 광고 단가의 기준이 된다. 그렇게 온라인 기자에게 기사 조회수는 모든 평가의 기준이 된다. A씨는 “회사 곳곳에 모니터가 있는데, 현재 홈페이지에서 많이 읽히는 기사 순위가 나와 있다. 기사 조회수와 순위를 계속해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며 “트래픽을 유발하는 사람은 칭찬을 받았다. 하지만 그게 좋은 기사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온라인매체에서 1년 동안 일했던 D씨는 “현재도 기사 건수와 트래픽, SNS 조회수가 부족하면 위에서 압박이 상당하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조회수에만 매달려야 했던 온라인 기자들은 무비판적으로 기사를 썼던 자신들을 돌아보지 못했다고 했다. B기자는 “최근 여성 유명인의 사망 이후 회의감이 강하게 들어 유명인 논란 기사를 쓰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데스크는 문제 되지 않는 선에서 쓰라고 지시했다”며 “당시에는 ‘이 사람이 자꾸 SNS에 사진을 올려 기삿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자신의 개인 공간에 자유롭게 사진을 올린 것뿐인데 말이다. 조회수만 신경 쓰면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채 한 개인에게 상처를 주는 기사를 쓰게 됐다”고 토로했다. D씨는 “사실 언론사 입사 공부를 했던 사람이라면 누가 이 일을 하고 싶겠나. 용돈 벌이로 3개월 정도만 일하다가 그만두려고 했다”며 “근무 환경이 편하고 비교적 일이 쉽다는 생각에 1년이나 다니게 됐다”고 했다.


가수 겸 배우 설리의 사망 이후 유명인 ‘SNS 논란 장사’ 문제가 거론됐지만, 똑같은 현상은 반복되고 있다. 한 경제지 E기자는 “최근에는 이슈를 따라가는 수준으로만 하고 자극적으로 쓰거나 억지로 논란거리로 만들지 말자는 기조가 생겼다”고 말했다. B기자는 “온라인 기사를 쓸 수밖에 없다면 온라인이슈 기사 가이드라인이 있었으면 한다”며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면 데스크가 자극적인 기사를 강요하는 것만큼은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은 기자 jeeniep@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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