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 방송통신위원회가 위원들의 잇단 중도사퇴라는 초유의 상황을 맞았다. 지난 9월 이효성 전 위원장이 공식 사퇴한 데 이어 고삼석 위원도 지난 21일 사의를 표명했다. 공교롭게도 대통령 지명 몫의 인사들이 모두 임기를 못 채우고 물러나게 된 셈이다. 방통위는 상임위원 5명 중 위원장을 포함한 2명을 대통령이 지명하고, 나머지 3명은 국회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어 있다.
고삼석 위원 사퇴설은 이효성 전 위원장이 공식 사의를 밝힌 지난 7월 전후로 이미 파다했다. 고 위원이 내년 4월 총선에서 광주 지역 출마를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전부터 끊임없이 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선 출마설은 명분이고, 사실상 ‘교체’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언론계 안팎에서 나왔다. 지난 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방통위 국정감사에서도 고삼석 위원 교체설이 언급되기도 했다.
이 전 위원장과 고 위원 모두 ‘자진사퇴’ 형식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체설이 나오는 배경에는 ‘가짜뉴스’라 불리는 허위조작정보 대응 문제가 있다. 방통위는 지난해부터 가짜뉴스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라는 압박을 정부·여당으로부터 받아왔고, 이에 ‘학자적 소신’으로 맞서온 이 전 위원장이 청와대 눈 밖에 났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결국, 방통위는 지난 6월 ‘허위조작정보 자율규제 협의체’를 사업자가 빠진 ‘반쪽’ 형태로 출범시켰고, 한 달 뒤 이 전 위원장은 사의를 밝혔다. 그리고 임기를 5개월 남겨두고 사의를 밝힌 고삼석 위원 후임으로 유력한 인사는 ‘가짜뉴스’에 관한 책을 쓴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다. AP통신 서울특파원과 국민일보 기자 등을 지낸 김 교수는 지난달 ‘당신이 진짜로 믿었던 가짜뉴스’란 책을 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달 추석을 앞두고 이 책 100여 권을 사비로 구매해 문화체육관광부와 방통위 공무원에게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한국당이 “총선을 앞두고 가짜뉴스를 잡기 위한 선수 교체”라며 비판하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이와 관련해 고 위원은 지난 23일 열린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사의가 곡해되지 않길 바란다”라고 말했지만, 야당 측 위원들은 이 전 위원장에 이어 고 위원까지 중도사퇴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표철수 위원은 “끝까지 임기를 채워 4기 방통위의 임무를 다하길 바랐는데 착잡하다”라고 했고, 김석진 부위원장은 “임기 중간에 두 명이 교체되는 일은 방통위 설립 이후 처음”이라며 “방통위 업무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소신껏 일하라는 뜻에서 임기와 신분을 보장하는 것인데, 방통위법의 입법 정신이 훼손될까 우려스럽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상혁 위원장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한다는 대원칙은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며 “우려하는 부분이 없도록 위원회를 합리적으로 운영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짜뉴스 문제는 4기 방통위의 남은 임기 내내 뜨거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상혁 위원장은 지난 24일 ‘언론사의 가짜뉴스 처벌 촉구’에 관한 국민청원에 대해 직접 답변자로 나서기도 했다. 방통위가 가짜뉴스 문제의 컨트롤타워로 ‘공인’받은 셈이다. 한 위원장은 이날 답변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 뒤에 숨어 민주주의 공론의 장을 훼손하는 악의적인 의도를 지닌 허위조작정보에 대해 방관할 수만은 없다”면서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허위조작정보를 차단할 의무를 부과하거나, 언론사의 오보 등에 대한 정정보도 위치를 신문의 첫 지면에 게재하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은 관련 법안이 빠른 시일 내 입법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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