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신상보도 과한 측면 있지만… 언론에 '내 편다움' 바라면 곤란"

언론개혁, 기자들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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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 장의 사진이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를 뜨겁게 달궜다. 지난달 23일 검찰이 압수수색 중인 조국 법무부 장관의 집에 음식을 배달하고 나온 배달원에게 기자들이 몰려들어 ‘밝은 얼굴로’ 질문하던 모습이었다. 지난 1일 방송된 MBC 〈PD수첩〉의 한 장면을 캡처한 이 사진은 포털에서 ‘조국 압수수색 웃는 기자’라는 자동 완성 검색어를 생성할 정도로 크게 ‘논란’이 됐고, 일부 네티즌은 기자들에게 ‘악마’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이른바 ‘조국대전’이 시작된 지 약 두 달. 기자들은 종종 아연한 경험을 한다. ‘기레기’라는 멸칭으로 불리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지만, 조국 장관 관련 보도에 달리는 댓글이나 편지함에 쌓이는 이메일에 담긴 혐오의 언어까지 가볍게 넘기기란 쉽지 않다. 특히 여성 기자들에겐 외모 비하나 성희롱성 댓글 공격도 무차별로 가해지고 있다. 대체 무엇이 ‘그들’을 화나게 했을까. 궁금해서 지난 5일 서초동 촛불집회를 찾았다. 현장에서 만난 많은 시민은 언론이 검찰의 ‘주장’을 검증 없이 일방적으로 ‘받아쓰고’ 있다며, “검찰과 한통속”인 언론 역시 바꿔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주장과 비판에 대해 기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동의하지 않아요.” 종합일간지 A 기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언론개혁이 뭐냐,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거거든요. 결국, 내 맘에 들게 보도하라는 것 아닌가요.” 그러면서 그는 JTBC를 예로 들었다. 3년 전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서 환호를 받았던 JTBC는 최근 상반된 반응을 경험 중이다. 지난달 28일 열린 촛불집회에선 현장 중계 중인 기자 뒤로 ‘돌아오라 손석희’라는 팻말이 등장했다. 5일 집회에서도 “JTBC에 실망했다”는 이들이 여럿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보수 쪽 역시 JTBC를 비판한다는 점이다. 박성중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4일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JTBC 〈뉴스룸〉을 가리켜 “청와대 민주당 기관방송”이라고 했다. A 기자는 “양쪽에서 욕먹는 걸 보면 JTBC가 잘 하고 있다는 거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방송사의 B 기자도 ‘편가르기’식 비판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사안을 놓고 어느 편에 설 것인지 묻는 것 같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며 “언론이 누구 편을 들어줘야 하는 게 아닌데 자신들 편에 안 서면 기레기라 욕하는 자체가 이상한 문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역 사거리에서 열린 ‘제8차 검찰개혁 촛불 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우리가 조국이다’, ‘검찰개혁! 정치검찰 OUT 언론개혁! 기레기 OUT’ 손팻말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역 사거리에서 열린 ‘제8차 검찰개혁 촛불 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우리가 조국이다’, ‘검찰개혁! 정치검찰 OUT 언론개혁! 기레기 OUT’ 손팻말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기자들이 조국 보도에 대한 모든 비판을 배격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문제 있는 보도도 있었다고, 그리고 비판받는 것은 언론의 숙명이라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기자들도 있다. 종합일간지 C 기자는 “사안의 맥락을 정리하는 보도들은 적고, 단발성에 본질과는 거리가 먼 주변적인 이야기들과 신상에 관한 보도들이 과하게 나왔기 때문에 충분히 비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개인적으로는 부끄러움과 자괴감도 느꼈다”고 밝혔다. 경제지 법조 담당 D 기자도 “이 직업을 가진 이상 비난을 받는 것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압수수색 현장에서 배달원을 인터뷰한 기자들처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기자들을 희화화하거나, 사실과 다른 보도라고 비판하면서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기자를 비난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가령 모든 검찰수사 보도를 ‘받아쓰기’로 폄훼하는 시도가 그렇다. D 기자는 “모든 검찰 기사를 검사가 다 흘려준 거라고 단정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면서 “검찰에서 조사받고 나온 사람을 거꾸로 취재하는 것도 정상적인 취재 방법인데, 이런 것까지 검찰에서 흘려준 걸 받아먹는 식으로 비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종합일간지의 법조 담당 E 기자도 “검증되지 않은 오보를 단독이랍시고 쏟아내는 검찰발 보도는 비판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언론윤리를 지키며 취재하는 기자들도 있는데 몇몇 나쁜 보도와 엮여서 같이 욕먹는 것은 억울하다”고 말했다.


최문선 한국일보 기자는 지난 3일 칼럼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보도에 관한 한, 기레기 판별 기준은 ‘기자다움’보다는 ‘내 편다움’에 가깝다”고 꼬집으며 “언론을 언론답게 만드는 건 저열한 조롱이 아닌 차가운 비판”이라고 일갈했다. A 기자 역시 “언론에 대한 비판은 새겨들어야 하지만, 이 상황을 그대로 수용해야 하는가에 대해선 문제의식이 있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언론개혁 요구에 언론사가 보도의 논조를 바꾸는 식으로 즉각 응답하는 방식으로는 개혁이 될 수도 없고, 그건 개혁이 아니다”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서초동 촛불집회를 꾸준히 집중적으로 보도하며 호평을 받은 MBC가 섣불리 반색할 수 없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MBC의 F 기자는 “시민을 한 덩어리로 볼 수도 없고, 모든 시민에게 칭찬받는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면서 “앞으로가 더 중요한 만큼 자화자찬하지 않고, 사실관계를 호도하지 않고 보도하는 시스템과 취재 역량을 갖추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등을 통해 언론 문제를 꾸준히 비판해온 최경영 KBS 기자는 언론의 책임을 더 강조했다. 최 기자는 “오디언스가 언론의 콘텐츠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시민, 대중과 소통해서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건 우리의 책무”라며 “소비자인 시민의 입맛이 바뀌었다고 화를 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그는 “누구나 정치적이고, 언론사 역시 정치적이지 않은 적이 없는데 시민들에게 왜 정치적으로 불만을 품느냐고 묻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 “시민을 탓할 게 아니라 언론이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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