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4년 보내보니… 유료구독 전환 가능성 25배 높아져"

[잃어버린 독자를 찾아서/해외편] ⑤ 뉴스레터 독자만 18만… 미국 시애틀 타임스의 디지털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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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1일 시애틀의 데니 웨이 1000번지에 자리 잡은 시애틀 타임스 본사 주변은 빌딩 공사가 한창이었다. 여러 대의 타워크레인이 선회했고, 빌딩에선 망치 등을 두들기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옆에 짓고 있는 건물은 아마존 빌딩입니다. 예전에는 그 땅이 시애틀 타임스 소유였어요. 브래튼 가문이 땅을 팔아가며 신문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데니 가우로프스키 시애틀 타임스 편집국 부국장은 창문 밖 풍경을 가리키며 말했다.


1891년 설립된 시애틀 타임스는 브래튼 가문이 1896년에 인수해 125년째 운영하고 있다. 현재 시애틀 지역에서 유일하게 발행하고 있는 종이신문이다. 경쟁 신문이던 시애틀 포스트-인텔리전서는 10년 전 경영난으로 종이신문을 폐간하고 온라인 매체로 전환했다. 지난해 10번째 퓰리처상을 받을 정도로 미국 북서부 지역의 유력 언론이지만 사옥 주변 땅을 매각했다는 가우로프스키 부국장의 말은 어려운 경영 상황을 웅변해 주고 있다.


구독 수익으론 신문 인쇄·배달비용 조달에 빠듯하고, 그나마 언론사를 먹여 살렸던 광고 수익은 매년 수직 하락하고 있다. 디지털 광고 수익 또한 페이스북과 구글이 80%가량 독점하고 있다. 뉴스 소비는 어떤가. 뉴스는 페이스북 등 소셜 플랫폼을 통하지 않고는 독자에게 도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미디어 환경 속에서 시애틀 타임스는 독자에 집중하고, 궁극적으로 디지털 구독을 끌어낼 수 있는 혁신 전략을 시작했다.


2010년부터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냈던 시애틀 타임스는 2013년 미터드 페이월(metered paywall)을 도입했다. 하루에 몇 건까지는 무료로 볼 수 있되 그 이상의 뉴스를 보려면 구독료를 내야 하는 모델이다. 현재 ‘디지털 전용 구독’ 4주에 1달러, ‘디지털+일요일 종이신문’ 5주에 1달러, ‘디지털+7일치 종이신문’ 5주에 3달러를 받고 있다. 구독료는 시범 기간이 지나면 3.99달러에서 많게는 8.70달러까지 받는다.


데니 가우로프스키 편집국 부국장(왼쪽)과 제프 홀드리지 프로덕트 매니저가 주황색과 노란색, 하늘색 스티커에 빼곡히 적혀 있는 3분기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데니 가우로프스키 편집국 부국장(왼쪽)과 제프 홀드리지 프로덕트 매니저가 주황색과 노란색, 하늘색 스티커에 빼곡히 적혀 있는 3분기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레터, 유료 구독 전환률 25배 높아
지불 장벽(paywall)을 쌓으면 아무래도 독자가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다. 주목 받는 기사를 써서 독자를 붙들어야 하고, 충성도 높은 독자를 유지하면서 그들을 유료 구독자로 전환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2015년 IT 인프라와 디지털 구독 플랫폼에 투자를 확대한 이후 다양한 디지털 제품 실험이 뒤따랐는데, 특히 이메일 뉴스레터에 눈을 떴다. 시애틀 타임스는 지난 3년간 기사 주제, 발행 빈도, 기사 길이 등에 따라 뉴스레터 구독에 차이가 있는지 연구하면서 더 나은 뉴스레터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첫 뉴스레터는 2016년 가을에 나왔다. 워싱턴주 프로 풋볼팀 시애틀 시학스를 취재한 주간 ‘시학스 팬 픽스(Seahawks Pan Fix)’로, 이메일 본문에 기사가 실렸다. 2017년 들어 워싱턴 대학 풋볼팀 허스키스(Huskies)를 취재한 기사를 추가하고 ‘풋볼 픽스(Football Fix)’로 이름을 바꿨다. 작년 2월부터는 시애틀의 모든 스포츠를 포괄해 다루는 ‘팬 픽스(Fan Fix)’로 서비스하고 있다. 뉴스레터 포맷도 기사 링크가 달린 다이제스트 형식으로 달리했는데, 기사를 클릭하면 시애틀 타임스 웹사이트로 넘어가 그 기사를 볼 수 있게 했다. 독자들이 계속 웹사이트를 찾게 하고, 페이월에 여러 번 부딪히게 만들어 궁극적으로 유료 구독으로 유도하는 전략이다.


시애틀 타임스는 현재 7종의 뉴스레터를 발송하고 있다. 모닝브리프(Morning Brief), 이브닝브리프(Evening Brief), 팬 픽스(Pan Fix)는 월~금요일 주 5일 발행하고, 이츠앤드링크(Eats & Drinks), 에듀케이션랩(Education Lab) 등은 위클리로 나가고 있다. 7월 현재 뉴스레터 구독자는 18만3000여명에 달한다. 가우로프스키 부국장은 “뉴스레터는 소셜 플랫폼을 경유하지 않고 독자에 직접 도달할 수 있고, 유료 구독을 이끄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며 “뉴스레터 독자들이 유료 구독자로 전환하는 확률이 페이스북 등을 통해 들어온 독자보다 25배 높다. 보내는 빈도가 잦은 뉴스레터일수록 독자들에게 습관을 형성하고 구독에 이르게 한다”고 말했다.


시애틀 타임스 뉴스룸 풍경. 시애틀 타임스에는 기자 150명을 포함해 600여명이 일하고 있다.

▲시애틀 타임스 뉴스룸 풍경. 시애틀 타임스에는 기자 150명을 포함해 600여명이 일하고 있다.


뉴스레터 전담 조직은 따로 없다. 에디터들이 주 업무와 병행하고 있다. 가령 1면 에디터가 이브닝브리프를 담당하는 식이다. 팬 픽스 등 몇몇 뉴스레터의 경우 콘텐츠를 선별하고 스토리라인을 짜기까지가 어느 정도 자동화되어 있다. 에디터의 역할은 기사가 정확하게 들어갔는지 확인하는 수준이다. 모닝브리프처럼 중요한 뉴스레터는 담당 에디터가 수작업으로 쓴다.


시애틀 타임스의 월간 순방문자 수(Unique Visitors)는 800만. 800만 방문자 중 35%가 웹사이트로 직접 들어오고 구글(30%), 페이스북·트위터(12%), 이메일 뉴스레터(8%) 등을 통해 들어온다. 제프 홀드리지 프로덕트 매니저는 “뉴스레터를 타고 들어온 독자들이 가장 많은 페이지를 본다”고 했다. 물론 뉴스레터를 열지 않거나, 본문만 훑어보고 기사 링크를 클릭하지 않은 독자도 많다. 시애틀 타임스는 뉴스레터 오픈율 30%, 클릭률 7%를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어떤 뉴스레터가 잘 운영되는지 반복 실험하면서 1·2·3단계로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시애틀 타임스 사옥 1층에는 역대 퓰리처상 수상작과 수상자들이 벽면에 붙어 있다.

▲시애틀 타임스 사옥 1층에는 역대 퓰리처상 수상작과 수상자들이 벽면에 붙어 있다.


◇자체 분석 툴로 구독자 전환 성과 추적
시애틀 타임스는 수년간 독자를 추적해왔다. 편집국과 디지털 부서가 협업하는 ‘미니 퍼블리셔(mini-publisher)’, 어떤 기사가 독자를 유료 구독으로 이끄는지 확인하는 ‘애널리틱스 허브(analytics hub)’가 두 기둥이다. 미니 퍼블리셔는 편집국과 디지털, 비즈니스 부서가 공동으로 참여해 독자들이 무슨 콘텐츠를 좋아하는지, 어떻게 하면 그런 콘텐츠를 더 많이 만들 수 있는지 실험하고 그에 따른 보도 전략을 취재에 적용하고 있다. 2017년 지역 정치와 워싱턴 대학 풋볼 등 2개팀을 시작으로 지난해 시애틀 시학스, 오피니언, 부동산, 여행, 음식 등으로 10개 분야로 확대했다. 실험이 거듭되면서 기자들의 자발적인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스포츠부 기자들은 정규시즌만 발행하던 시애틀 시학스에 대한 뉴스레터를 비시즌에도 작성하기로 결정했다. 퓨젯 사운드(Puget Sound)에 서식하는 올카 고래 기획시리즈를 보도했던 팀은 올카 관련 얘기가 있으면 재빨리 속보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올카를 다룬 기사에 대해 독자들이 엄청난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미니 퍼블리셔는 뉴스룸 조직 문화에 점진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지난 2년을 돌아보면 조직이 많이 변했죠. 과거에는 항상 뉴스 쪽과 사업부서 쪽을 가르는 장벽이 있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진 것 같아요. 기자라는 사람은 직업상 의문을 많이 제기하잖아요. 처음엔 기자들과 협업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데이터도 신뢰하지 않았죠. 지금은 여러 부서가 매우 효과적으로 협업하고 있어요. 아직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미니 퍼블리셔의 성과를 묻자 홀드리지 프로덕트 매니저는 이렇게 얘기했다.  


시애틀 타임스는 구글 애널리틱스, 챠트비트(Chartbeat), 라이브파이어(LiveFyre), 크라우드탱클(Crowd -tangle) 등을 활용해 자체 독자 분석 툴인 애널리틱스 허브를 만들었다. 이 분석 툴을 이용하면 독자들이 어떤 기사를 읽고, 어떤 기사를 읽지 않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즉, 독자(reader)가 구독자(subscriber)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어떤 기사를 읽었는지 데이터 분석이 가능하다.


부동산 담당 마이크 로젠버그 기자의 사례는 흥미롭다. 로젠버그 기자는 작년에 아마존이 어떻게 시애틀을 미국에서 가장 큰 회사 도시로 만들었는지를 공들여 취재했다. 일요일날 프론트 페이지에 걸린 그 기사는 140명의 구독에 영향을 줬다. 그가 2년간 취재한 어떤 기사보다 많은 구독자를 유치한 것이다. 같은 해 그는 소형 아파트에 대해 보도했다. 비교적 빨리 간단히 쓴 기사였는데, 그날 가장 많이 읽은 기사가 됐고, 10만 페이지뷰를 기록했다. 하지만 7명의 구독에 영향을 미쳤을 뿐이다. 가우로프스키 부국장은 “어떤 기사가 구독과 연결되는지 알고,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어떤 기사를 써야할지 파악하게 됐다”며 “기자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기삿거리를 찾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시애틀 타임스는 지난 4월 ‘시애틀 탐사 저널리즘 펀드’를 시작했다.

▲시애틀 타임스는 지난 4월 ‘시애틀 탐사 저널리즘 펀드’를 시작했다.


◇탐사 저널리즘 펀드, 5개월만에 39만달러 모금
시애틀 타임스는 지난 4월 ‘시애틀 타임스 탐사 저널리즘 펀드’의 시작을 알렸다. 새로운 펀드는 ‘지역 탐사 저널리즘은 불의를 폭로하고 부패와 권리의 잘못과 싸운다’를 모토로 내걸었다. 관련 이벤트에 장기 구독자 120명을 초청했다. 이벤트 개최 후 현장에서 2만6000달러(한화 약 3000만원)를 모금했다.


과거 크라우드펀딩에 재단, 기업, 비영리기관이 참여했다면 이번 탐사 저널리즘 펀드는 개인 후원에 초점을 맞췄다. 시애틀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시민 지도자들, 시애틀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사람들, 시애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새로운 젊은 투자자 등을 목표로 삼았다. 시애틀 타임스는 기부자에게 건강한 민주주의 발전 및 언론자유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독자는 웹사이트(https://company.seattletimes.com/investigativefund/)에서 자신이 기부할 금액을 100~5000달러까지 선택하거나 원하는 금액을 정할 수 있다. 기부금은 법률에 따라 세금 공제가 된다. 모금액은 1단계로 50만달러(한화 약 6억원), 2단계로 100만달러를 책정했는데, 9월8일 현재 39만8351달러(한화 약 4억7500만원)를 모았다. 이 기금으로 에디터 1명, 기자 2명을 신규 채용하고 취재 관련 경비로 사용할 예정이다.


시애틀 타임스는 2010년부터 2018년까지 크라우드펀딩으로 400만달러 이상을 모아 교육, 교통, 노숙인 등에 대한 탐사보도를 벌였다. 이런 보도는 시애틀의 광범위한 개혁으로 이어졌다. 가우로프스키 부국장은 “기부자들은 지역사회에 애착이 많고, 언론이 민주주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탐사보도를 통해 지역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원한다”고 말했다.


시애틀 타임스의 구독자는 매년 35~40% 성장하고 있다. 디지털 유료 구독자 수는 4만3000여명. 그냥 얻어진 구독자가 아니다. 뉴스레터, 미니 퍼블리셔, 애널리틱스 허브, 탐사 저널리즘 펀드 등 부단한 노력에 힘입은 결과다. 특히 독자에 초점을 맞추는 뉴스룸으로 변화한 성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미셀 마타사 플로레스 시애틀 타임스 편집인은 “지역 언론사의 비즈니스 모델은 불확실하고, 인력도 대폭 줄어든 상황에서 어렵게 일하고 있다”며 “우리는 더 많은 독자와 만나고, 젊은 독자를 끌어들이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후 기자 kshoo@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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