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과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

[언론 다시보기] 이진송 계간홀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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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송 계간홀로 편집장.

▲이진송 계간홀로 편집장.

나에게는 나이 터울이 많이 지는 동생이 두 명 있다. 내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일 때 혼자서 동생을 데리고 나가면 사람들은 곤혹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어머니~는…아닌 것 같은데…?” 동생이라고 말하면 그제야 눈에 띄게 안도했다. 눈 앞의 내가 ‘어린 나이에 혼자 아기를 낳아 키우는 여자애’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듯이. 나에게는 해프닝에 불과하지만 엄연히 누군가를 찌르는 폭력인 이런 태도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기반한다.    


김희경의 <이상한 정상가족>(동아시아, 2018)을 인용한다.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는 결혼제도 안에서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핵가족을 이상적 가족의 형태로 간주하는 사회 및 문화적 구조와 사고방식을 말한다. 바깥으로는 이를 벗어난 가족 형태를 ‘비정상’이라고 간주하며 차별하고, 안으로는 가부장적 위계가 가족을 지배한다. 정상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가족이 억압과 차별의 공간이 되어버리는 것”(10쪽)이다.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는 절묘하다. 형태만 갖추면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정상화’된다. 남편이 아내를, 부모가 자식을 때려도 폭행이 아니다. 가족 간의 정서적, 경제적 착취나 통제가 사랑이나 훈육으로 둔갑한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입양의 날, 부부의 날이 있는 5월은 무엇이 가정인지 규정하고 확인하는 날의 연속이다. 이 무렵 미디어를 채우는 것은 봄날을 맞은 정상 가정의 스펙터클이다. 누군가에게는 ‘당신들의 천국’으로 느껴질 장면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나 소수자들의 가정은 잘 가시화되지 않는다. 어린이, 어버이, 부부라는 표현 자체가 필터링을 거치는 단어인 까닭이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으면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언론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다양한 가정을 조명하고,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의문을 제기한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따로 있다. 짜장면이 싫다고 하는 어머니에게 바치는 글, ‘엄마 밥’, ‘부모의 마음’ 같은 표현, 결국 가해자인 부모에게도 사연과 진심이 있다고 설득하며 화해 시키고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예능 프로그램…. 모두 정상 가정을 비호하고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가정을 이루었다는 이유만으로 복잡한 개인이 ‘희생적인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로 수렴되지 않는다. 이기적인 부모도 있고, 자식이 부모를 증오할 수도 있다. 어떤 양육자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니고, 섣부른 화해나 용기는 더 큰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각 가정의 서사나 개인의 감정은 “그래도 가족인데”라는 끈으로 다 꿸 수 없다.


나와 동생이 어떤 관계인지 부지런히 감별하려던 눈빛을 떠올린다. 그런 눈빛에 노출된 삶들을 생각한다. 기존의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이벤트보다, 가정의 의미를 고민하고 확장하자는 목소리를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형태가 어떻든 상관없이 가족이 모든 구성원에게 친밀한 삶의 기지”가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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