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 위에서 흐느낀 주민들... 덤덤히 취재하던 마음 흔들려"

[강원 기자들의 산불 재난 취재기] 박주석 강원도민일보 속초주재기자

박주석 강원도민일보 속초주재기자.

▲박주석 강원도민일보 속초주재기자.

지난 4일 밤은 정말 정신없었고 길었던 밤으로 기억될 것이다. 퇴근 후 집에서 한창 늘어져 있던 오후 7시25분쯤. 고성 원암리에서 산불이 발생했다는 첫 연락이 왔다. “사진만 확보하고 또 쉬자”고 마음먹고 집에서 나와 차에 시동을 걸었다. 7시50분쯤 경찰의 교통 통제를 피해 발화지점 인근인 속초 예비군부대 앞 주유소에 도착했을 때 바로 ‘심상치 않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유소를 둘러싼 산불은 당장이라도 주유소를 집어삼킬 듯이 이빨을 들이세우고 있었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의 강풍을 타고 불씨들은 수십 미터를 날아 불을 옮기고 있었다.


이후 상황은 급박하게 전개됐다. 각종 매체에서 산불 뉴스가 잇따랐고 전화기도 연신 울리기 시작했다. “현장 사진을 찍어 올려라”, “실시간으로 기사를 쏴라”, “본사 사회부와 사진부가 내려가니 현장으로 안내하라” 등 속초 주재기자가 한명이라는 사실을 잊었나 싶은 데스크들의 수많은 지시부터 시작해 “무사하냐”는 가족·지인들까지 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려댔다. 정신없이 취재하고 기사를 마감하다 보니 어느덧 자정을 훌쩍 넘은 오전 2시였다. 드디어 쉴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우려대로 토요일자 신문 정상발행이 결정됐고 새벽부터 다시 현장을 돌았다. 다행히 빠른 시간 내 주불은 진화됐지만 현장에는 여전히 열기가 남아 있었고 눈과 목을 자극하는 냄새도 가득했다. 인명피해는 나지 않았지만 수많은 보금자리와 일터가 잿더미로 변했고 피해 주민들의 울음소리도 곳곳에서 들렸다. 문을 연 지 8일 만에 전소된 식당을 비롯해 차량 400여대가 전소한 폐차장, 모내기를 앞두고 종묘와 농기계를 모두 잃은 농민 등 피해도 제각각이었다. 특히 시리아내전을 피해 고성에 정착했다가 이번 산불로 졸지에 모든 것을 잃은 난민 부부가 앞으로 딸을 어찌 키울지 물으면서 울던 모습은 덤덤히 취재를 이어가던 나의 마음도 흔들었다. 산불이 발생한 지 벌써 열흘이 넘었다. 정부가 움직이고 있지만 아직 현장에서 피부에 와 닿는 대책은 없다. 현재까지 정부가 발표한 대책은 약간의 생계 지원금과 저리의 융자 지원뿐이다. 애초 불이 나지 않았다면 떠안지 않아도 될 빚만 늘어날 뿐이다.


특히 이마저도 피해 주민들 상당수가 고령으로 경제활동 여력이 없어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국에서 보내오는 성금과 구호품, 자원봉사의 손길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반갑다. 하지만 근본적인 복구를 위해 정부는 이재민들이 정부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인식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 모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 만큼 조속한 시일 내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원책이 시행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 지면을 빌려 이번 산불로 2년 전 지은 새집이 전소된 와중에 지난 11일 쌍둥이 딸까지 출산하면서 정신없을 친구 박웅호에게 위로와 축하 메시지를 함께 전한다. “아빠 힘내라고 예정일보다 한 달이나 일찍 두 공주님이 찾아왔으니 빨리 기운 차리고 예쁘게 키우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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