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청탁 "예의를 갖춥시다"

권혁범 교수 "원고 요청하는 분께" 홈페이지 글 올려

권혁범 대전대학교 교수는 원고청탁을 받으면 먼저 자신의 홈페이지(http://dju.ac.kr/∼kwonhb)에 올려놓은 글을 읽게 한다. ‘원고 및 강연 요청하시는 분들께’라는 제목의 A4 용지 2장 분량의 글이다.

청탁한 원고가 사정상 지면에 실리지 못했는데 ‘바빠서’ ‘깜빡 잊고서’ 그 사실을 필자에게 알리지 않았거나 필자에게 사전 통보없이 내용을 크게 손봤던 적이 있는 기자라면 혹은 앞으로 기분좋게 원고청탁을 하고 싶은 기자라면 눈여겨볼 만하다.

권 교수는 서두에 “고의적인 나쁜 의도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원고 처리 과정에서 보여지는 자의성이나 무책임은 때로 곤혹스럽다”며 원고청탁시 몇 가지 사항을 당부했다.

첫째, 청탁시 원고료가 얼마이며 언제 지급되는지 정확하게 알려달라. 돈에 관련된 문제라 학자들이 얘기하기 좀 껄끄러운 문제지만 원고료는 청탁과정에서 정확하게 쌍방간에 인지돼야 한다. 때때로 원고료를 받지 않고도 글을 쓰지만 말 한마디 없이 청탁을 하고 나중에 일방적으로 원고료를 정하거나 주지 않으면 학자의 개인적 시간을 헐값에 빼앗는 비도덕적인 일이 아닐까.

둘째, 원고를 받는 즉시 반드시 연락해달라. 원고를 받기 전까지는 그렇게 자주 연락하고 친절한 분이 원고받고 나서는 감감 무소식인 경우가 적잖다.

셋째, 자의적 수정이나 편집을 삼가해 달라. 편집자의 일방적 고치기로 내 주장의 뜻이 손상되고 미묘한 암시의 의도가 천박하게 단순화되는 일을 너무 많이 겪었기에 하는 부탁이다. 수정할 시에는 사전에 동의를 구해달라. 어떤 신문에서 ‘내 몸속의 괴물 혹은 일상적 파시즘?’이라는 내가 제의한 제목을 뭐라고 바꿨는지 아는가. ‘내 몸속의 괴물을 부수자!’.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파시스트가 된 느낌이었다.

넷째, 원고가 게재된 신문 잡지 저널을 빠른 시일내에 1∼2부 보내달라. 1년이 지나도록 받아보지 못한 적도 있다. 아울러 즉시 원고료도 보내달라. 만약 늦어지면 언제까지 가능한지 정확히 알려달라. 1년도 더 지난 원고료를 아직도 기다리는 것은 사람에게 ‘돈’보다 ‘신의’ ‘예의’가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다.

다섯째, 사정상 원고를 게재하지 못하거나 약속한 호에 싣지 못하면 사전에 알려달라. 청탁자의 간곡한 부탁으로 아주 바쁜 시간을 내어 간신히 마감 시간을 맞춰 원고를 썼는데 아무 연락없이일방적으로 게재를 연기한 일이 있다.

‘서울공화국의 무례와 무지’라는 제목의 여섯째 당부사항은 강연요청에 관한 것이다. “서울에 가서 강연이나 발표를 할 때 ‘서울공화국’ 사람들은 별도의 차비가 든다는 사실에 가끔 무감각하다. 강연료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지방’에 대한 예의를 지켜달라.”

권 교수는 “글을 많이 쓰다보니 문제가 종종 생겨 청탁자에게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읽게 한다”며 “사소한 문제일 수 있지만 한국 지식인 사회의 무례함, 철저하지 못함, 자존심을 지켜주지 않는 문화와 관련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주선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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