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항거'와 뮤지컬 '신흥무관학교'

[스페셜리스트 | 문화] 장일호 <시사I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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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호 <시사IN> 기자.

▲장일호 <시사IN> 기자.

‘100’이라는 숫자에는 어떤 완결성이 있다. 민족에 별 감흥 없는 나같은 사람도 괜스레 기념하거나 참견하고 싶어지는 어떤 낯간지러움을 느낀다. 그러니까 영화 <항거>나 뮤지컬 <신흥무관학교>를 예매해놓곤 ‘국뽕’을 걱정하면서도 결국 보고야 마는 식이다.


<항거> 속 유관순은 홀연히 나타난 ‘초인’이 아니다. 영화는 유관순이라는 탁월한 개인이 아닌, ‘유관순들’의 이야기를 낯선 방식으로 직조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위인 유관순과 3·1 운동의 전사를 과감히 뛰어넘고 그 다음으로 거침없이 직진한다. 영화에서 독립운동은 주변적이다.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실이 극의 주요 무대인 동시에 주인공 그 자체다. 특히 유관순 열사의 감옥 동기인 수원 권번 김향화가 다음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마지막 장면에는 어떤 짜릿함이 있다. 그동안 문화 콘텐츠가 보여준 ‘미래’가 언제나 남성의 몫이었음을 떠올린다면 <항거>는 새로운 독법을 관객에게 제시한다. 흥행은 손에 쥐지 못할망정, 그를 의식하지 않는 태도가 야심차다.


육군본부와 쇼노트가 함께 만든 창작 뮤지컬 <신흥무관학교>는 이른바 ‘군지컬(군대+뮤지컬)’이다. 병역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가수와 배우를 앞세웠다. 정작 눈에 띄는 건 여성 캐릭터에 대한 적극적 해석이다. 육군이 제작하고 군인이 주연 배우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다. 이를테면 우당 이회영에게 아내 이은숙은 “어쩌라고”라는 답변을 반복한다. 유쾌하게 이어지는 만담같은 대화 속에서 이은숙은 남성에게 종속되지 않은 ‘동지’이자 ‘독립운동가’라는 점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신흥무관학교 여성 생도인 나팔과 그들을 돕는 혜란은 로맨스의 대상이 아닌 한 명의 개인으로 선명하다. 노비 출신이라 글자를 모르는 남성 생도 팔도가 난생 처음 글을 깨치는 과정 역시 인상적이다. 팔도는 글자를 모른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친구들은 그에게 기꺼이 글을 가르친다. 그 장면은 신분과 성별을 떠나 잠시일망정 모두에게 ‘평등’할 수 있었던 공간으로 <신흥무관학교>를 위치시킨다. 독립과 애국과 민족이 그 장면에서만큼은 부차적이 된다.


‘문화’라는 말처럼 다양한 맥락 속에 단단히 놓여 있는 단어도 없다. 문화는 사회에 보이지 않는 선을 긋는다. 그 경계를 기준으로 우리는 어떤 행동과 사건들에 의미를 부여한다. <항거>와 <신흥무관학교>는 그 각각의 사건이 다루고 있는 주제와 무관하게 민족주의에 매몰되는 않는 시도와 실험을 이어간다. 좀 더 강하게 의미를 부여하자면 새로운 맥락을 만들고 새 시대의 문화를 결정하겠다는 도전의 기미를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나는 <항거>와 <신흥무관학교>에서 이미 달라진 시대의 공기를 맡았다. 101년은 ‘다를 것’임을 예고하는 목소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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