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협회보는 신년기획 ‘잃어버린 독자를 찾아서’를 마무리하며 좌담회를 마련했다. 독자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언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고 독자와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마주한 고민을 살펴봤다. 지난 25일 한국기자협회 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엔 김기화 KBS 기자, 이충원 연합뉴스 독자팀장, 진명선 한겨레21 기자가 참석했다. 사회는 김성후 기자협회보 편집국장이 맡았다.
-언제는 독자가 중요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요즘 독자가 자주 거론된다. 왜 다시 독자인가.
김기화 KBS 기자=전에는 기자들이 정보를 독점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독자, 시청자들이 기사가 맞는지, 틀린지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독자들이 그 언론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 지가 언론사를 판단하는 기준 중 하나가 됐다. 또 하나는, 언론사가 폭발적으로 많아졌다. 언론사끼리 경쟁해서 독자를 끌어와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어떤 언론사는 독자들이 듣고 싶은 얘기만 하고, 어떤 언론사는 속보에 신경을 쓰는 방식으로 독자를 끌어온다. 기자나 언론사가 우위에 있었다면 이제는 독자들이 중요하게 되지 않나 생각해본다.
이충원 연합뉴스 독자팀장=독자와 언론사 간 갑을관계가 바뀌었다. 정보를 누가 쥐고 누구한테 주느냐가 중요한 흐름이 됐다. 사진이나 영상 측면에서 보면 스마트폰 속 고급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수천만의 독자들한테 당해낼 수가 없다. 두 번째는 지금까지 언론사는 돈을 누가 주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모르는 상태에서 영업해온 게 아닌가 생각한다. 실제로 언론에 뭔가 지불하고 이용하는 건 독자다. 언론이 어려워지다 보니 돈을 누가 주는지 깨달을 수밖에 없다.
진명선 한겨레21 기자=한겨레21은 종이 기반 매체다. 먹고 살려다 보니 독자를 생각하게 됐다. 주간지는 구독료가 수입의 절반 이상이다. 독자가 줄면 존립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이고 구독이 줄어드는 만큼 광고 수입으로 채워야 한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과 관련돼 있다. 우리는 좀 더 중대한 위협으로 느끼고 있다. 그래서 독자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독자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는지 말씀해 달라.
이충원=연합뉴스 독자팀은 작년 조직개편 때 생겼다. 통신사에 독자 이름 붙은 조직이 생긴 건 처음일 것이다. 24시간 ‘okjebo’라는 카톡 아이디로 독자들의 제보를 받고 그 내용을 기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메일, 제보 전화, 우편물 제보 등 기존의 흩어진 제보기능을 독자팀이 관리하고 있다. 제보와 항의, 문의 다 받는다.
김기화=유튜브 채널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댓읽기)>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재미다. 재미와 매력을 주지 못하는 콘텐츠는 아무리 의미가 있어도 별로다. 재미 없으면 전파되지 않기 때문이다. 뉴스를 재미있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다. 기사를 쓴 기자를 직접 스튜디오로 불러 댓글을 직접 읽어준다. 댓글이 주요 소통자료다. KBS 기사에 달린 댓글 중에서 의미 있는 반박, 지적을 기자에게 소개한다. 기자가 자신의 잘못을 이해하고 사과도 한다. 독자들 입장에선 처음 보는 거다. 물론 독자들이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기자가 해명도 한다. 작년 8월 중순에 준비해 이제 석 달 정도 됐다. 처음엔 악플도 많이 달렸지만 지금은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분들이 많아졌다. 입소문이 나면서 구독자 수가 1만명이 됐다. 커뮤니티에 글 올리고 SNS에 공유하며 홍보해주는 구독자들이 많다. 그런 현상을 보면서 콘텐츠를 진정성 있게 만들면 구독자들이 알아주는구나 생각했다.
진명선=‘독편3.0’ 카톡방에는 독자들 70여명이 들어와 있다. 편집장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물으면 독자들이 의견을 준다. 표지 결정에도 참여한다. 기존엔 뉴스룸 구성원들이 표지를 정했는데 이제는 카톡방에 올려서 투표하고, 투표 결과는 표지 선정에 반영한다. 카톡방 안에서 이러 저러한 소소한 이야기도 많다. 오프라인 모임 신청을 받거나, 손바닥 문학상 독자 심사위원 모집도 했다.
-독자와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깨닫거나 배운 것이 있다면.
진명선=한겨레21 절독 사태가 몇 번 있었다. 표지에 문재인 대통령 사진을 실으면서 보기에 따라 비호감으로 보일 수 있는 사진을 썼다가 악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전 편집장의 설화 사건도 있었다. 그걸 겪으며 위축돼 있었다. 하지만 독편3.0을 진행하면서 한겨레21에 애정을 갖고, 좋은 저널리즘을 고민하는 독자들이 훨씬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만난 독자 한 분이 “독자들이 다 맞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독자와 소통하고 가까이하는 건 좋지만, 우리한테 쩔쩔매지 말아 달라”고 했다.
이충원=우리는 제보가 기사화 되면 독자에게 답례한다. 커피 교환권이다. 그런데 상당수 제보자들이 답례에 기분 나빠했다. 제보자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라 그 제보가 기사에 도움 됐다는 말 한마디다.” 독자들은 사회를 개선하고 싶은 마음에서 제보한다. 기자들한테 이거 왜 안 쓰냐고 얘기하는 건 그런 일이 다시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마음 아닐까.
김기화=댓읽기 영상 하나에 댓글이 500개 정도 달리는데, 대부분 ‘마음 줄 언론이 없다’고 한다. 우리는 KBS 뉴스의 잘못된 보도를 얘기하고, 독자들은 ‘이제는 제발 뒤통수치지 말아달라’고 한다. 제 별명이 ‘프로대댓글러’인데, 모든 댓글에 대댓글을 달아드린다. 악플을 다는 분들에게 ‘어떤 부분은 오해고 더 잘하겠다. 잘못했다. 반성한다’는 대댓글을 달면 금방 존댓말로 다시 댓글이 달린다. 욕을 하다가도 ‘이러이러했다. 죄송하다’고 하면 응원한다는 답장이 오더라.
우리 방송에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국정조사 때 박범계 의원의 발언을 비판한 적이 있다. 그때 댓읽기를 공동진행하는 기자가 박 의원의 발언을 듣고 “아 짜증나”라고 했다. 누리꾼들의 항의가 많이 들어왔다. 넘어갈 수 있고 모른척 할 수 있었지만 박 의원을 직접 찾아가 사과했다. 그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 올렸더니 사람들이 ‘아 얘네는 진짜 진정성 있구나’라고 댓글을 달더라. 그때 구독자가 확 늘었다. 이런 시도가 처음이기 때문에 맞는지, 틀리는지 잘 모르겠다. 독자들에게 이런 파격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독자를 보면 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실제론 더 고민이 깊어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뭐가 고민인지 궁금하다.
진명선=한겨레신문에 있다가 2016년 9월에 한겨레21로 옮겨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볼 때 훨씬 더 공들인 기사를 썼는데 반응이 없더라. ‘뭐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겨레21이 독자하고 친밀해지긴 했는데, 그렇다고 예전에 하던 고민은 사라졌나. 그건 아니다. 한겨레21 저널리즘을 기자들만큼이나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만족감과 효능감을 주는 방법이 어떤 건지 고민이 든다. 그런데 그런 고민의 답은 독자들이 갖고 있지 않더라. 독자들이 갖고 있을 이유도 없다. 우리가 찾아야 하는 거다. 뉴스룸이 풀어야 하는 문제인데 ‘독자한테 무작정 가면 있겠지’했던 거다.
김기화=약간 비슷한 고민이 있다. 댓글에서 맨날 나오는 얘기가 ‘KBS 많이 바뀐 거 같은데 메인뉴스는 아직도 엉망이다. 왜 그런거냐’는 내용이다. 독자와 소통이 메인뉴스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되더라. 그래서 우리는 기자들을 계속 부를 거다. 독자들의 생각이 뭔지 기자들이 체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떡볶이 먹고 황제보석 중인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보도가 나오고 기자들끼리 ‘아 좋았어’ 했는데 독자들은 떡볶이 얘기만 하더라. 뉴스가 원하는 바랑 전혀 관계없는 것들이 얘기되고 있었다. 기사 쓴 기자 본인도 이런 반응일지 몰랐다고 당황스러워했다.
이충원=독자 제보와 민원을 기사화하면서 독자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갈지 확신이 생겼다. 문제는 독자 제보가 보도가 안 되는 경우다. 심층보도가 필요한 제보인데, 사실과 사실 아닌 것이 뒤섞여 있다. 취재가 더 필요할 뿐이지 하나하나 따져보면 기사화할 수 있는 내용이 있는데, 이런 제보들이 사장되고 있다. 그냥 넘길 수 있는 제보는 없더라.
김기화=댓글을 보면 우리 채널을 어떤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진보적인 성향 분들이 많다. 구독자 성향을 알게 되니, 사실 콘텐츠를 만들 때 구독자 성향에 맞게 만들고 싶을 때도 있다. 있는 독자를 지키고 싶고, 떠나지 않게 하고 싶어서다. 결국 스스로 정파성을 갖게 되는 걸 경계해야 한다. 어떤 이슈를 다룰 때 정파성을 최대한 띄지 않고 기자로서 중립적 입장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걸 놓치는 순간 우리는 어느 진영의 스피커가 될 수 있고, 누군가 비판 했을 때 취약해질 수 있다.
-독자를 찾으려는 노력은 궁극적으로 우리 매체 콘텐츠에 기꺼이 지갑을 열 충성 독자를 확보하는 것 아닐까.
진명선=얼마 전 김승섭 고려대 교수가 페이스북에 글을 썼는데, ‘한겨레21 너무 좋다. 하지만 구독은 못한다. 왜냐면 읽을 시간이 없어 쌓이고 버려야 해서 죄책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 대신 한겨레21에 후원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한겨레21을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게 후원의 잠재력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럼에도 구독자가 많이 떠나고 있다. 디지털 영향이 분명 있을 것이고 그 변화에 우리가 대응을 잘 못하고 있다. 가디언이나 뉴욕타임즈 등 외국 언론은 디지털 구독으로 가고 있는데, 한국 언론은 기술적으로 뒤쳐져있는 게 사실이다. 프로퍼블리카 후원자가 2만6000명이다. 한겨레21은 4만 정도였다. 인구 비율로 봤을 때 한국에 저널리즘을 후원할 수 있는 파이가 미국보다 훨씬 큰 것이다. 디지털 구독을 충족시킬 수 있는 포맷을 개발해야 한다. 프로퍼블리카, 인터셉트 등 이름 있는 비영리 저널리즘을 보면 지불 과정이 너무나 간단하다.
이충원=독자 항의 속에 기회가 있지 않을까. 미국의 한 기업 부사장은 콜센터 부스에 앉아 고객들의 항의 전화를 받는다고 한다. 부사장이 왜 항의 전화를 받느냐는 물음에 항의 전화를 안 받으면 어디서 변화의 아이디어를 얻느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연합뉴스도 마찬가지다. 민원이나 항의를 받다 보면 독자들이 우리한테 뭘 원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김기화=재밌고 살아있는 이야기로 콘텐츠를 만들면 구독자들이 문의를 계속한다. 뭐 도와줄 방법이 없냐고. 볼만한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고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면 방법이 있을 것 같다. 우리 채널의 고객층은 30대 남자이지만 목표 구독자는 10·20대다. 초등학생들은 네이버도 찾지 않는다고 한다. 유튜브만 보니, 트와이스도 모르는 애들이 많다. 보겸이라는 게임 유튜버의 구독자는 300만명이고 주로 10대다. 10대들이 그 콘텐츠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고 거기서 유튜버는 돈을 벌고 있다. 뉴스 소비할 시간을 유튜버들이 다 가져가고 있다. ‘아 저런 자극적인 콘텐츠를 만드는군’ 이런 공자같은 얘기를 할 시간이 없다. 그런 말 하고 있다가 우린 다 굶어 죽는다.
-독자와 연결을 고민하는 기자들이 많다. 들려줄 얘기가 있다면.
진명선=독자를 만난다고 할 때 무엇을 위해 만나려고 하는지가 중요하다. 목적이나 목표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 프로퍼블리카를 취재하며 놀란 게 있다. 후원이외에 독자가 취재풀이 되는 독자 참여 방식이 있다. 독자가 자신의 인적사항, 자신이 갖고 있는 콘텐츠를 등록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독자 취재풀을 관리하는 사람도 따로 있다. 독자를 후원자로 끌어오는 일방적 방식이 아니라 진짜 독자 참여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거다. 제보에 대한 답례를 거부하는 수준 높은 ‘깨시민’에겐 단지 카톡방을 통해 기자랑 말을 주고받는 것으로는 해소가 안 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독자 참여 저널리즘의 구조화 시스템을 만들고, 뉴스룸 안에 하나의 파트로 들어오게 하는 방식을 고민했으면 좋겠다.
김기화=방송 중간에 ‘나는 기레기가 싫어요!’ 외치는 스팟이 있다. 이걸 본 주변 기자들이 서운하다고 얘기한다. 왜 스스로 기자를 비하하냐는 거다. 그런 것 신경 안 쓰면 좋겠다. 기자의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사람들은 기자를 보통 직장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충원=제보를 통해 독자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다 보면 심층적인 도움을 얻는 경우가 있다. 세월호 부품 사진이 필요했는데 사진을 구할 데가 없었다. 그래서 예전에 제보하신 분 중에 원양어선 선장이 있던 게 기억이 났다. 그분에게 카톡을 했는데 부품에 대해 설명해주고 사진도 직접 찍어 보내줬다. 독자들하고 어떻게하면 고차원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기자들의 고민이 필요하다.
김성후·박지은 기자 kshoo@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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