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경 '청와대 국가안보실 보고서' 오보, 무엇을 놓쳤나
① 문제의 문건 받고 열흘간 확인취재 허술 ② 해당 학회도 불참
사건 발단은 '해킹된 이메일'이지만 기초취재 부실이 화 키워
취재·편집·데스킹 총체적 문제… 편집국장 "내부시스템 정비"
아시아경제가 ‘청와대 국가안보실 보고서’ 보도 이후 사흘 만에 오보를 인정하고 독자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아경은 지난달 29일자 신문 1면과 2면에 사과문을 싣고 “문제의 문건에 대해 청와대와 행사를 주최한 연구기관에 사실 확인 절차를 거쳤지만 소통 미숙 등으로 인해 미흡했던 부분이 있었다”고 인정하며 “독자 여러분께 폐를 끼친 데 대해 깊이 사과드리며 청와대와 해당 연구기관에도 심심한 유감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을 사칭한 가짜 메일이 발단이 된 이번 사건은 청와대의 의뢰로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아경 역시 “아시아경제를 악의적으로 노린 이유 등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해 경찰에 수사의뢰서를 금명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때문에 사건의 전말은 수사 결과를 확인해야 알 수 있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아경이 단순히 ‘피해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당사자 확인 등 기초 취재만 확실히 했어도 막을 수 있었던 사고이기 때문이다.
아경은 지난달 26일자 1면과 3면 머리기사에서 단독 입수한 청와대 국가안보실 보고서를 토대로 “청와대가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싼 정체 국면에서 지난 수개월간 한국에 대한 미국의 우려와 불신이 급증하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미국은 물론 주변국의 불신과 우려가 크다는 사실을 청와대가 인지하고도 대외적으로는 “한미 공조 우려를 차단하는데 온 힘을 쏟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사를 쓴 A 기자는 지난달 17일 이메일로 해당 문건을 받았다. 문건 작성자는 국가안보실 비서관, 발신자는 한-중 정책학술회의를 주최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 B 연구원이었다. 청와대 비서관은 학술회의에 참석해 오찬 강연을 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메일대로라면 청와대 비서관이 한-중 외교 전문가들 앞에서 청와대의 외교 실책을 폭로하는 ‘대형사건’인 셈이었다. 그러나 해당 메일도, 보고서도, 모두 가짜였다. B 연구원의 메일이 해킹당하면서, 앞서 학술회의 자료를 요청해서 받았던 A 기자에게까지 해킹된 계정을 통해 메일이 발송된 것이다. B 연구원과 며칠 앞서 해킹 사실을 인지했던 연구소장은 학술회의 참가자들에게 메일 해킹 사실을 알리고, 개인 페이스북에도 관련 내용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학술회의 공식 참가자로 등록되지 않았던 A 기자는 이 같은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경은 지난달 28일 취재경위를 설명하며 “이전 다른 강연자들의 원고를 받았을 때와 제목, 발신자, 내용 형식 면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문제의 메일을 받고 기사가 나간 26일까지 약 열흘 동안 보고서의 작성자로 알려진 비서관을 포함해 청와대에 확인 취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아경은 마감 직전인 26일 오전 10시에야 청와대 측에 문건의 존재를 알렸고, “문건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을 기사 말미에 실었을 뿐이다.
또한 A 기자는 지난달 22일 열린 학술회의 취재도 하지 않았다. 연구소 측에 따르면 A 기자는 회의 당일 수차례 B 연구원에게 전화를 걸어 청와대 비서관의 참석 여부와 도착 시간 등을 확인하면서도 정작 행사장에는 나타나지 않았고, 발표문 내용에 대해서도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B 연구원은 기자협회보와의 통화에서 “청와대 비서관의 강연문은 행사 전은 물론 당일에도 배포된 사실이 없고, 강연 내용도 아경 기자가 받았다는 내용과 전혀 달랐다”며 “당시 강연을 직접 들은 기자도 있고, 참석자들에게 확인 취재만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사건의 발단은 메일 해킹에서 시작됐지만, 부실한 취재가 화를 키운 셈이다. 취재부터 데스킹, 편집 등에 이르는 전 과정이 ‘총체적 문제’였다. 아경은 이번 사태에 대해 특정인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보고, 인사위원회를 열어 징계를 하는 대신 해당 기자를 다른 부서로 보내고 정치부장을 교체하는 선에서 매듭을 짓기로 했다. 이학인 편집국장은 4일 기자협회보와의 통화에서 “이번 사안을 전체 조직 차원의 문제로 보고 일부 개인에 대해서는 징계하지 않았다”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깊이 자성하고 독자의 신뢰를 되찾을 방법을 강구하겠다. 앞으로 충실하게 기사 확인이라든지 내부 시스템을 정비하는 작업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달 27일 “단순한 오보 차원을 넘어서 언론 역사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악성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끝까지 파헤쳐서 누가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밝혀내겠다”고 밝혔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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