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가 한미동맹 균열이 심각하다는 내용의 ‘한반도 정세 보고서’ 보도에 대해 이틀 만에 '취소한다'고 밝혔지만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아시아경제는 스스로도 ‘피해자’라는 입장이지만 대형 오보를 낸 언론사로서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아경은 28일자 석간신문 2면에 사고를 싣고 “해킹 논란을 야기한 지난 26일자 1, 3면에 게재한 ‘한미동맹 균열 심각…靑의 실토’ 등 2건의 기사를 경찰의 관련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취소한다”며 “혼란을 겪은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본지는 진행 중인 경찰 수사에 성실하게 임할 것”이라면서 “해킹 조작이 있었다면 본지 또한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이어 3면 머리기사 <“이상無” 외치던 靑, “한반도 비핵화 주변국 동상이몽” 진단>에서도 “국가안보실은 현재 한반도 비핵화 국면에 대해 한마디로 ‘주변국 간 동상이몽’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의 장기화 국면을 예상했다”고 전했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미국은 물론 주변국의 불신과 우려가 크다는 사실을 청와대가 인지하고도 대외적으로는 “한미 공조 우려를 차단하는데 온 힘을 쏟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경이 입수했다는 해당 보고서에 대해 청와대는 “국가안보실에서 작성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즉 보고서가 ‘가짜’라는 것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27일 브리핑에서 “안보실을 사칭한 가짜 메일이 외교전문가들에게 발송되고 결국 언론에 기사화까지 된 사건과 관련해 경찰청 사이버수사과에 수사의뢰서를 발송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설명과 26일 JTBC ‘뉴스룸’ 보도 등에 따르면 해당 보고서는 지난 17일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 연구원 명의로 보내졌다. 메일에는 ‘권희석 청와대 국가안보실 비서관의 강연 원고’라고 적혀 있고, PDF 파일이 함께 첨부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권희석 비서관 명의로도 ‘민감한 사안이 포함된 보안메일을 보내니 취급 주의해달라’는 메일도 발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당사자들의 이름을 사칭한 가짜 메일이었다.
아경도 28일 취재·보도 경위를 밝히며 지난 17일 해당 메일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아경은 “본지 취재기자가 지난 17일 오전 이 학술회의 주최 측으로부터 받은 메일에는 청와대 국가안보실 전략비서관의 특별강연 원고라고 적시돼 있었다”며 “이전 다른 강연자들의 원고를 받았을 때와 제목, 발신자, 내용 형식 면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고 밝혔다.
아경은 이어 “학술회의가 열린 지난 22일 오전 문제 메일의 발신자로 적시된 A대학 B연구원과 통화했고, 청와대 비서관의 행사 참석과 강연 여부를 확인했다. 당시 통화에서 이 연구원에게서 청와대 비서관의 참석과 그 자료의 발표 여부에 대해 ‘점심에 발표한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전했다. 또 “일부에서 주장하는 주최 측이 해킹의 위험을 고지하는 메일을 보냈다는 데 대해 본지 취재기자는 그러한 메일을 받은 바도 없다”며 “따라서 본지는 기사 출처에 대해 신빙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관련 보도를 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아경 기자가 통화했다는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 연구원에 따르면 권희석 비서관이 당일 오찬 강연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발표문은 행사 전은 물론 당일에도 배포된 사실이 없다. 게다가 아경 기자는 연구원에게 권 비서관이 강연을 한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 강연 주제나 자신이 메일로 받았다는 문건에 대해서도 전혀 확인하지 않았고 행사 당일 취재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협회보는 이와 관련해 정확한 취재 경위 확인을 위해 29일 오전 해당 기사를 쓴 기자와 편집국장과 전화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또한 아경은 “이 기사가 보도되기 이전인 지난 26일 오전 10시께 청와대 측에도 문건의 존재를 알리고, 최종 확인을 요청한 바 있다”며 “청와대 측으로부터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라는 수준의 답변을 받은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난 26일자 3면 기사에 따르면 청와대 관계자는 아경과의 통화에서 “문건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건 자체를 모른다”고 했는데, 이를 생략한 것이다. 게다가 이 문장은 1면과 3면 기사 전체에서 아경이 직접 확인한 청와대의 ‘유일한’ 입장이기도 하다.
지난 17일 받은 메일과 문건에 대해, 그것도 실제 학술회의가 열린 날(22일)로부터 나흘이 지난 26일 마감 직전에야 청와대에 문건과 관련해 확인을 요청했다는 점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지점이다. 이 역시 아경 측으로부터 추가적인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한편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는 이 사건이 단순한 오보 차원을 넘어서 언론 역사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악성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끝까지 파헤쳐서 누가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밝혀내겠다. 최소한의 확인도 거치지 않고 보도한 언론사에도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