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프랑스 칸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여성 영화인 82명이 팔짱을 낀 채 레드카펫에 올랐다. 영화계 성차별 철폐를 외치며 ‘성평등’ 시위를 벌인 것이다. 시위의 중심에는 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은 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있었다. 블란쳇은 심사위원단을 구성할 때 성적·인종적으로 평등하게 할 것을 요구했고, 그 결과 심사위원단 총 9명 중 5명이 여성이었다.
단순히 바다 건너 영화인들만의 ‘퍼포먼스’가 아니다. ‘성평등’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됐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당시 공언한 것 역시 ‘성평등 내각’의 실현이었다. 여성 장관의 비율을 30%에서 시작해 임기 내에 5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약속이었다. 30%는 OECD 국가 여성 내각 비율의 평균치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비리를 최전선에서 감시하고 폭로하는 언론사는 어떨까. 과연 ‘성평등’은 언론사 뉴스룸에서도 실현되고 있을까. 본보는 지상파 방송3사(KBS·MBC·SBS)와 전국 단위 종합일간지 9개사(경향·국민·동아·서울·세계·조선·중앙·한겨레·한국)의 여기자 비율과 뉴스룸 내 여성 보직 간부 비율을 조사했다. 단순히 여성 간부가 몇 명이고 얼마나 높은 지위에 있는지 파악하는 것을 넘어 뉴스룸의 의사 결정 과정에 여성이 어떤 비율로, 어느 정도로 참여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2017 한국언론연감’에 따르면 2016년도 언론산업의 남성 기자는 2만1940명(71.6%), 여성 기자는 8707명(28.4%)이었다. 전체 여기자의 수나 비율은 전년 대비 소폭 감소했으나, 길게 보면 여기자의 비율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진행한 ‘2017 언론인 의식조사’에서 여기자의 비중은 2007년 15.5%에서 2017년 27.4%로 급증했다. 그러나 뉴스룸의 ‘상층부’로 갈수록 여성의 비중은 줄어든다. 뉴스 제작과 관련한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 있는 여기자는 겨우 10~20%대에 불과했다.
지난 2014년 본보가 경제지 일부와 통신사 등을 포함해 19개 언론사를 조사했을 당시 여성 보직간부의 수는 평균 2.3명 수준이었다. 2018년 8월 현재, 주요 언론사 보도국과 편집국의 여성 보직간부 수는 조금 늘거나 그대로였고, 심지어 한 명도 없는 곳도 있었다. 여성 기자들이 주로 맡는 보직이 경제, 문화 분야 쪽에 한정돼 있다는 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세계·한국일보 여성 보직 부장 ‘0’
편집국에 여성 보직 부장이 없는 언론사는 한국일보와 세계일보다. 두 신문사 편집국은 국장을 포함해 보직 간부 전원이 남성이다. 한국일보는 전체 기자가 243명이고, 그 중 여성은 68명으로 28%를 차지한다. 하지만 편집국과 미디어전략실까지 합해도 전체 팀장급 이상 39명 중 여기자는 4명으로 10%를 겨우 넘는다. 그마저도 미디어전략실장을 제외하면 나머지 3명이 모두 팀장이다. 세계일보는 편집국장 출신인 황정미 편집인 겸 부사장이 있지만 임원에 해당되고, 편집국에는 여성 보직 부장이 없는 상태다. 본보는 세계일보 인사팀에 전체 여기자 비율과 여성 보직 간부 비율을 요청했으나, “조사에서 빼달라”며 응하지 않았다.
국민일보는 논설위원실과 종교국을 제외한 편집국 전체 기자가 146명이고 그 중 41명(28.1%)이 여성인데, 보직 부장과 부국장은 16명 중 여성이 단 2명(11.1%)에 불과하다. 한 명은 경제·문화·체육담당 부국장이고, 다른 한 명은 문화부장이다.
경향신문과 서울신문, 한겨레신문은 전체 여기자 비율도 언론산업 평균보다 높았고, 여성 보직 간부의 비율도 상대적으로 높은 편에 속했다. 경향신문은 전체 기자 수 259명 중 여기자가 85명(32.8%)이며, 전체 팀장급 이상 보직 간부 25명 중 여성은 5명(20%)이다. 5명 중 부장이 2명(정책사회부장, 문화부장), 팀장이 3명(뉴콘텐츠팀장, 교열팀장, 오피니언팀장)이다.
서울신문은 전체 기자 202명 중 여기자가 72명(논설위원실 포함)으로 35.6%에 달해, 이번 조사 대상 언론사 중 여기자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장급 이상 보직 간부는 16명 중 4명(25.0%)이 여성이었다.
한겨레신문은 전체 275명 중 여성이 93명으로 33.8%였다. 편집국 팀장급 이상 간부는 60명 중 14명이 여성(23.3%)이며, 부장급 이상으로 좁혀 보면 17명 중 4명(정치에디터, 한반도국제에디터, 문화스포츠에디터, 토요판에디터)이 여성으로 23.5%를 차지했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전체 기자 수와 보직 간부의 수는 공개하기 어렵다며 편집국 내 여성 보직자 명단만 알려왔다. 이에 따르면 동아일보에는 강수진 부국장을 포함해 총 11명의 여성 보직자가 있다. 이 중에는 차장이 6명 포함돼 있고, 부장급인 국제부 전문기자와 동경지사 지국장, 어문연구팀장도 보직자로 분류돼 있다. 편집국 내 기획·취재·편집부서의 보직 부장으로는 하임숙 산업2부장이 유일하다.
현재 중앙일간지 가운데 유일하게 여성 편집국장이 있는 중앙일보는 행정국장까지 2명의 여성 국장이 있고, 최근의 팀제 개편에 따라 부장급으로 분류되는 여성 팀장이 6명(글로벌경제팀장, eye24팀장, 산업팀 부팀장, 아트팀장, 대중문화팀장, 스타일팀장)이다.
조선일보는 디지털편집국에 파견된 2명(디지털편집국장, 부국장 겸 사회부장)을 포함해 워싱턴지국장, 문화1부장 등 총 4명의 여성 보직자가 있다고 밝혔다.
◇방송3사 보도국 여성간부 비율 10%대
방송사 보도국은 신문사 편집국에 비해 유리천장이 더 두텁다. 지상파 3사에서 여성 보도국장은 지금껏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현재 KBS 보도국(통합뉴스룸)의 여성 보직 부장은 단 2명(경제부장, 문화부장)으로 전체 보직 간부 21명 중 9.5%에 불과하다. 이는 보도국 주간 5명과 경인방송센터장을 합하고 영상부서는 제외한 수치다. 팀장급을 포함하면 전체 62명 중 12명으로 19.4%까지 늘어나지만, 취재제작회의에 참여해 뉴스의 편집과 방향을 결정하는 부장급 이상 보직 간부의 수는 적다.
MBC는 지난 6월 말 박성제 보도국장 취임과 함께 기존의 취재부서를 정치국제에디터, 소비자경제에디터, 사회문화에디터 등 3개 에디터로 나누고 팀을 세분화 하는 에디터-팀제로 조직을 개편했다. 이에 따라 국장 직속의 탐사보도팀을 포함해 팀장역 이상이 전체 총 23명(영상콘텐츠에디터 제외)인데, 이 중 4명(소비자팀장, 라이프팀장, 뉴스데스크팀장, CG팀장)이 여성이다. 조만간 여성 보건복지팀장이 추가로 임명될 예정이다.
SBS는 본부장을 제외한 보도본부 전체 보직 부장 이상이 19명이며, 그 중 여성은 2명(보도제작부장, 전략뉴스부장)이다. 비율로는 10.5%다. 논설위원실과 뉴미디어국을 제외하고 보도국만 놓고 봐도 여성 보직 부장의 비율이 13.3%로 소폭 늘어나는 정도다.
◇중년 남성 위주 언론사 조직 ‘균열’내야
여기자 수는 늘고 있고, 취재 영역에서의 차별은 전에 비해 많이 사라지거나 거의 없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하지만 통계에서 보듯이 뉴스룸의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여성은 배제되거나 소수만 참여하는 상황이다. 인사권을 쥔 쪽도 대부분 남성이다. 권력이 한쪽에 집중돼 있으니, 성희롱이나 성추행 등 불미스러운 사건도 끊이지 않는다. 최근 불거진 한국경제신문 부장의 ‘여성혐오’ 논란이나, 세계일보 전 편집국장의 기자 성추행 사건 등도 이 같은 조직문화가 씨앗이 됐다. 심지어 세계일보는 성추행 행위에 대한 징계를 결정하는 위원회조차 8명 중 7명을 남성으로 구성해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한국일보의 한 기자는 “언론이 사회의 진보를 부르짖지만 내부 조직은 제일 안 변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언론사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간 간부급의 여기자들이 육아나 자녀교육 등의 문제로 중도 퇴사하는 경우가 많아 ‘쓸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박성제 MBC 보도국장은 “가급적 여성 팀장을 늘리고 싶은데, 해당 연차의 인력 자체가 모자란다”며 “1~2년 내에 승진이 이뤄질 텐데, 그러면 여성 간부도 자연스럽게 늘어나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뉴스룸의 성평등이 단순히 성비 균형을 맞추는 것을 넘어 다양한 시각을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0일 여성가족부 주최 토론회에서 ‘미투 보도를 통해 본 한국 저널리즘의 관행과 언론사 조직문화’를 연구·발표한 김세은(강원대)·홍남희(연세대) 교수팀은 뉴스룸의 간부급 여성 비율이 증가하면 조직의 젠더 감수성과 다양성이 확보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투(metoo)’ 운동 이후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요구하는 여성들의 혜화역, 광화문 시위에 이르기까지 젠더 이슈들이 연이어 터져 나오는 최근의 상황에선 더더욱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구팀이 10개 언론사 여기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심층 인터뷰에서도 중년 남성 간부 중심의 언론사 조직에서 여성 관련 이슈를 중요하게 판단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한 기자는 “간부급 이상에서 여자가 있냐 없냐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세은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우리 뉴스는 주류 남성의 관점에 의해 상당히 동질화돼 있다”고 전제한 뒤 “거기에 균열을 내려면 다양한 사람이 게이트키퍼 역할을 해야 하는데, 외국에선 인종의 다양성이 부각된다면 우리는 1차적으로 성별의 다양성이 중요하다”며 “민주주의와 여론의 다원성을 위해서라도 다양성은 중요한 가치”라고 말했다.
흐름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KBS에선 최근 방송사 최초로 여성 캡이 나왔고, 첫 여성 기자협회장도 탄생했다. KBS는 또 지난달 직장내 성폭력 관련 조사 및 피해자 보호와 성평등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성평등센터를 신설했고, 시청자위원회를 구성할 때 특정 성별 비율이 40% 이상 되도록 관련 운영규정을 개정하기도 했다. 올해 KBS 신입기자는 남녀 성비가 반반이었고, 그 전에는 여기자가 훨씬 많은 기수도 있었다. 다른 언론사에서도 차장급 밑으로 갈수록 여기자들이 많은 만큼, 3~4년쯤 뒤에는 여성 보직 부장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한편 여기자들 또한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거나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물론 ‘일-가정 양립’을 위한 조직 내부와 사회 전반의 문화 개선이 병행되는 것은 필수다. 김균미 여기자협회장은 “위에서도 여기자들에게 기회를 주고, 여기자들 역시 완벽히 준비되지 않았더라도 주어진 역할을 해나가면서 성장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며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작은 팀이나 기획팀의 팀장을 맡아서 이끄는 경험들부터 축적해 가다보면 나중에 기회가 주어졌을 때 부담도 덜 하고, 충분히 자기 몫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김고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