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마의 낮은 목소리 "세상을 바꾸는 길에 동반자가 되어달라"

이용마 MBC 해직기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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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막암 투병 중인 이용마 MBC 해직기자가 최근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지금까지 MBC뉴스 이용마입니다’를 펴냈다. 그는 프롤로그에서 “이 글은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정리이자, 우리가 살아온 세상, 우리가 바꾸어야 할 세상에 대한 진솔한 기록”이라고 했다. 사진=허핑턴포스트코리아/윤인경

▲복막암 투병 중인 이용마 MBC 해직기자가 최근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지금까지 MBC뉴스 이용마입니다’를 펴냈다. 그는 프롤로그에서 “이 글은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정리이자, 우리가 살아온 세상, 우리가 바꾸어야 할 세상에 대한 진솔한 기록”이라고 했다. 사진=허핑턴포스트코리아/윤인경

 

“아빠, 죽기 전에 소원이 뭐야?”

열 살 먹은 큰놈이 대뜸 물었다. 책 원고를 컴퓨터에 띄워 놓고 교열을 보고 있었는데 내가 12~16개월 정도밖에 못 산다는 대목을 가리키며 눈물을 주르르 흘리던 녀석이다. 철부지인 줄로만 알았는데 어느새 이렇게 컸나 싶었다. “우리 현재와 경재가 공부 잘하는 거지. 엄마, 아빠 말 잘 듣는 거….” 그렇게 웃고 넘겼지만 찬바람이 가슴 한쪽을 훑고 갔다.


복막암과 싸우고 있는 이용마 MBC 해직기자가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지금까지 MBC뉴스 이용마입니다>를 냈다. 이 책은 이용마 기자가 자신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더듬으며 그간 만난 사람들, 맞닥뜨린 세상에 대한 진솔한 기록이자 우리가 바꾸어야 할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2012년 공정방송을 위한 MBC 170일 파업 때 노조 홍보국장을 지내다 해고됐다. ‘사내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이유였다. 어느덧 해고된 지도 5년 7개월. 인생의 황금기인 40대 초·중반의 인생이 그렇게 날아갔다. 그는 영화 <공범자들>에서 ‘싸움의 의미’에 대해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싸웠던 많은 사람들의 청춘, 인생이 날아갔지만 적어도 그 기간에 우리가 침묵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일 경기도 분당에 있는 자택에서 만났다.


-책은 언제부터 썼나?

“올 1월부터 조금씩 써서 6~7월에 탈고했다. 처음엔 아이들이 10년 정도 지난 뒤에 읽을 것이라 생각하고 썼다. 쓰다 보니 젊은 세대가 읽어도 특별한 문제가 없을 것 같아 출간하게 됐다. 우리 사회를 제대로 알아달라는 취지로 썼다.”


-현재와 경재를 위해 썼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얘기해주고 싶었나?

“우리는 공동체를 떠나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다지 아름답지만은 않다. 정의를 얘기하지만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다. 그런 것들을 바로 잡아야 한다. 공동체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 그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나의 인생도 의미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걸 얘기하고 싶었다.”


1998년 입사 3년차인 이용마 기자. MBC 뉴스데스크 캡처.

▲1998년 입사 3년차인 이용마 기자. MBC 뉴스데스크 캡처.


-대학원 졸업하고 군에 다녀온 뒤에야 MBC에 입사했다. 왜 기자를 선택했나.

“할 게 없어서(웃음). 박사학위 받아 학계로 나가려면 유학을 다녀와야 하는데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취직을 해야 했는데 일반 기업은 들어가기 싫었다. 대학 다니면서 한국사회를 어떻게 하면 바꿔볼까 고민하던 사람인데 돈을 추구하며 살기는 싫었다. 그러다가 기자가 됐다. 기자는 가까이서 한국사회 변화를 지켜볼 수 있고, 현실과 이론을 겸비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기자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사회부에서 10개월 만에 쫓겨나고, 경제부에서 자리 잡으려 하면 문화부로 발령나고, 법조팀, 정치부에서도 계속 밀려만 났다.

“기사 가치가 떨어지는 단순 사건사고 기사를 주문하는 데 정말 싫었다. 기사가 안 된다고 하니 지방선거기획단, 전국부로 쫓아냈다. 경제부도 마찬가지다. 시답지 않은 아이템을 내놓고 보도를 지시했다. 뜻이 안 맞는데 어떻게 하나. 후배인 내가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안티조선운동 보도에 적극적이라는 이유로 보수 성향 선배들은 날 따돌렸고, 최문순 사장 재임시절엔 ‘반최문순’ 인사들이 보도국의 실권을 장악하면서 정치부에서 시사매거진 2580으로 쫓겨났다.”


-굽히고 들어갈 수 있는 부분 아닌가.

“다른 것도 아니고 기사잖아. 내 이름으로 나가는 기사다. 기사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나에게 있다. 적당히 타협하기는 어렵다. 기록으로 남는 거니까.”


-보도국 게시판에 여러 차례 ‘삼성공화국’이란 글을 올렸다.

“삼성 관련 비판 기사가 뉴스데스크에서 쉽게 빠졌다. 삼성 관련한 기사를 쓰면 회사 선배들은 물론 주변의 아는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전화가 걸려왔다. 개혁을 외치던 노무현 정부가 들어섰는데 이런 비현실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용납하기 어려웠다. 백주에 대로에서 사람을 조폭들이 무차별적으로 때리는 데 다 손 놓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있는 격이었다. 그런 현실이 개탄스러웠다. 누군가는 소리치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


-삼성 비판 기사를 많이 쓴 이유는.

“내가 쫓아다닌 건 아니다. 삼성이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웃음). 경제부에 있을 때 이재용의 불법상속 문제가 이슈가 되기 시작했다. 삼성 관련 기사는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검찰로 출입처를 옮긴 뒤 삼성의 불법상속 공소시효가 임박했다. 그런데 검찰은 아직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는 말만 반복했다. 검찰 내 삼성장학생들이 장난을 치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검찰 비판 기사를 썼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다른 언론사들은 기사를 제대로 쓰지 않았다. 삼성이 로비로 기사를 철저하게 막았다.”


그는 책에서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온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삼성은 검찰뿐 아니라 거의 모든 정부 부처와 언론사, 국회 등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 인맥을 활용해 끊임없이 지인들을 공략하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문화 속에 그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그 결과 정부 부처에서 승진하려면 삼성에 잘 보여야 하는 웃기는 현상이 일반화되었다.”

 

1989년 대학 3학년 때 심포지엄 팀원들과 춘천 소양댐 부근 청평사로 워크숍을 갔다. 가운데 앉아 있는 이가 이용마 기자.

▲1989년 대학 3학년 때 심포지엄 팀원들과 춘천 소양댐 부근 청평사로 워크숍을 갔다. 가운데 앉아 있는 이가 이용마 기자.


그는 서른다섯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노량진동의 한 연립주택 전셋집에서 신혼살림을 차린 뒤 신길동, 봉천동, 역삼동으로 옮겨 다녔다. 올해로 결혼생활 15년째, 기쁜 날은 물론이고 해고 통보가 날아올 때, 복막암 판정을 받던 순간에도 두 사람은 함께였다. 아내에게 못한 기억보다 잘해준 기억이 많았겠다고 묻자 “하하하”라고 웃으며 “집사람은 그렇게 기억을 안 할 텐데”라고 했다. 결혼식 두 달 전, 눈에 덮인 시골 길을 내달리며 그에게 다가오던 아내의 빨간색 누비라 승용차를 결코 잊을 수 없다.


“2001년 12월31일 친구들과 강촌의 한 기와집 한옥으로 1박2일 동안 놀러 갔다. 그날 밤 사람들과 장작을 때며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느지막이 일어났는데 밤새 내린 눈으로 세상이 하얗게 덮여 있었다. 그때 빨간색 누비라 승용차가 눈 위에 새로 길을 내며 다가왔다. 그림 같은 장면이었다. 아내가 차 문을 열고 내리자 모두가 탄성을 질렀다. 깜짝 놀래주려고 온 거였다. 눈이 그렇게 많이 내렸는데….”


2017년 9월 집 거실에서 촬영한 가족사진. 사진=시사IN

▲2017년 9월 집 거실에서 촬영한 가족사진. 사진=시사IN


-결혼한 지 6년 9개월 만에 현재와 경재가 태어났다. 늦게 본 아이들인데.

“그동안 아내가 세 번이나 유산했다. 아내는 임신 확률을 높이기 위해 과배란을 유도하는 주사를 자신의 배에 꽂기도 했다. 어렵게 임신에 성공했다. 30주째 하혈 증세가 나타나 병원을 찾았는데 조산 증세가 있다면서 입원을 권유했다. 아내는 병원에서 조산을 억제하는 주사를 맞으며 5주를 버텼고, 35주 만에 현재, 경재가 태어났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아이들이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다.

“첫째가 엄마를 닮았고, 둘째는 날 닮았다. 큰애는 남들보다 책을 정말 좋아한다. 영어나 수학하자면 싫어하는데 책을 던져주면 하루 종일 본다. 둘째는 머리가 좋으면서 활동적이다. 스포츠를 좋아하는데 요즘에는 야구에 푹 빠져 있다.” 아이들에 관해 얘기를 할 때, 그의 얼굴은 다른 때보다 환해졌다. “언젠가 아이들이 엄마한테만 말하고 밖에 나가 몰래 라면을 먹고 들어왔다. 왜 그랬냐고 하니까 ‘아빠가 먹고 싶어할까봐’라고 하더라(웃음). 아픈 아빠가 라면 안 먹는 걸 알았던 거다.”


-5년7개월째 해고 상태다. 억울하기도 할 것 같은데.

“팔자려니 하고 있다. 안분지족이라고 하잖아. 사람들이 안분지족을 하면 이 사회가 흐려지지 않는다. 다 욕심 때문에 그런 거다.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이 얻으려고만 하니 정도가 아니라 사도를 걷는 것이다. 남에게 로비하고 처세에 매달리고 학연 지연 따지고, 김재철이나 김장겸 등이 그런 부류들 아닌가.”


-1·2심 모두 해고무효 판결이 났다. 2년6개월 넘게 대법원 판결이 미뤄지고 있는데.

“올해 안에 대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법원 판결나면 양복 입고 출근해야죠.

“하하. 글쎄. 첫날만 출근할까. 회사 생활이 가능하겠어?”


-다시 언론현장으로 돌아오면 무엇부터 하고 싶나. 전동건 기자는 “이용마가 MBC 뉴스데스크 앵커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미지와 목소리가 배우 현빈과 비슷하다고 했다.

“뉴스데스크 앵커라면 나도 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다. 근데 지금은 몰골이 너무 추해져서. 현빈의 모습은 다 사라지고(웃음).”


-노조 활동은 후회하지 않나.

“당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노조에 가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나의 삶이 나았을까. 노조에 가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아 더 힘들어했을 것이다. 기껏해야 해고밖에 더 되겠는가 생각했다.”


2012년 공정방송을 위한 170일 파업 현장에서. 사진=언론노조 MBC본부

▲2012년 공정방송을 위한 170일 파업 현장에서. 사진=언론노조 MBC본부


-김종구 한겨레 논설위원은 지난해 9월 <암에 걸린 후배 해직 기자를 바라보며> 칼럼에서 “암 발병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입을 모아 ‘화병’이라고 말한다. 얼마나 속이 썩었으면 그런 몹쓸 병에 걸렸을까”라고 한탄했다.

“의사가 12~16개월 정도를 보고 있다고 했을 때 믿기지 않았다. 길어야 16개월 남았다고? 난 이렇게 멀쩡한데? 내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병원에 오기 며칠 전에도 후배들과 술을 마셨다. 내 주변엔 암 환자도 없다. 16개월 후에 무슨 일이 있을 거라고 어떻게 예상을 하지. 아이들은 겨우 아홉 살인데.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김재철이나 김장겸 등 언론인 같지도 않은 사람들하고 싸우다 몹쓸 병까지 얻었다.

“그게 억울하다. 싸울만한 상대라 싸워서 졌다면 덜 억울할 텐데. 그들은 깜냥도 안 되는 찌질이 같은 사람들이다. 못날수록 극악하다고 할까. 한번 쫓겨나면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걸 알아서 더 끈질기고 치졸하게 매달린다. 삼국지 보면 그렇잖아. 예우해줄 수 있는 적장이 있다. 인품도 실력도 있는 적장이라면 패배해도 인정해줄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너무 형편이 없다.”


-투병 중인데도 사회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꾸준히 내고 있다.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다. 언론문제에 대한 책을 쓰고 있는데 중단한 지 두 달됐다. 의식을 집중해서 글쓰기가 어려워졌다. 우리나라 수구언론들이 객관성을 가장해서 사람들을 호도하는 언론보도 행태를 분석하는 책인데 한 40% 정도 썼다. 지금은 힘들어 쉬고 있다. 대신 페이스북에 가끔 글을 올린다. 웬만하면 안 쓰려는데 현안이 자꾸 튀어나온다.”


2016년 8월 기자협회보와의 인터뷰에서 찍은 사진.

▲2016년 8월 기자협회보와의 인터뷰에서 찍은 사진.


-공영방송 사장을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한 ‘국민대리인단’으로 뽑자는 소신을 여러 차례 밝혔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활동과 비슷하다. 평범한 시민들로 구성된 471명의 시민참여단이 한 달여 숙의 끝에 현명한 결론을 내렸다. 공영방송 사장도 이런 방식으로 뽑자는 거다. 공영방송 사장에 입후보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여야가 청문회를 실시한다. 청문회를 통해 각 후보자들의 면면이 낱낱이 드러난다. 이 모든 과정을 국민대리인단이 지켜본 뒤 투표를 하면 된다. 시민들은 당리당략에 따라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정치권보다 현명하고 상식적이다. 해고무효소송 1심을 국민참여재판으로 경험하면서 깨달았다. 처음엔 배심원단의 경력을 보고서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재판을 지켜보며 배심원단의 평결이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라는 걸 알았다.”


-고영주 이사장이 방문진에서 퇴출됐다. 이런 소식이 치료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엔돌핀이 솟는다고 하잖아. 고영주는 자기망상에 빠진 사람이다. 주변 사람들을 전혀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자기만 옳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이 MBC를 5년 동안 좌지우지하고 있었으니 MBC가 망가지는 건 당연했다. 대한민국의 1%도 안 되는 사람을 앉힌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뭐냐. 암흑이 걷혀가는 느낌을 받는다.”



-김장겸 사장이 해임되면 노조도 파업을 접을 모양이다.

“이번에 우리가 김장겸을 쫓아내면 사상 처음으로 노조가 이기는 싸움이 되지 않을까. 이기는 싸움이 된다고 해도 그동안 흘린 피가 얼만데, 처절한 승리다. 그런 만큼 앞으로 재건해야 할 과제가 굉장히 많다. 새로운 사장이 누가 오느냐가 중요한 과제다.”


-10년 동안 망가졌으니 재건도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우리 사회 최대 과제가 적폐청산 아닌가. MBC도 마찬가지다. 고영주나 김재철, 김장겸같은 일베 집단이 MBC를 장악해왔다. MBC에 만연해있는 일베문화부터 청산해야 한다. 그러려면 인적·제도적 물갈이가 중요하다. 어정쩡하게 화합이라는 이름으로 적당히 봉합해서는 안 된다.”


-기자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후배들이 더 잘 알 거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다는 두 가지 기조만 유지하면 선배들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잘 대변해야 사회가 바뀔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용마 기자는 책 에필로그에 “생과 사의 갈림길을 지나는 이 순간 주유를 떠올리는 건 나 혼자만의 연민의 감정인가”라고 썼다. <삼국지>엔 제갈량, 유비, 관우, 조조 등 여러 영웅이 나오는데 왜 주유일까.


“주유는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주유는 ‘하늘은 왜 주유를 내시고, 왜 또 제갈량을 내셨습니까’라고 탄식했다. 주유가 무대를 잘 만났다면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주유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


김성후 기자 kshoo@journalist.or.kr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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