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너머로 보이는 다른 세계

[그 기자의 '좋아요'] 김은지 시사I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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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지 시사IN 기자

[책] 김연수 ‘여행할 권리’


긴 연휴, 너도나도 어딘가로 떠났다던데. 사람이 붐비는 인천공항 사진을 보고 있자니 왠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괜스레 항공권을 뒤적여보기도 하고, 여행지를 검색하다 이내 그만둔다. 못 가거나 안 갈 이유가 발목을 잡는다.


그럴 때 나름의 처방법이 있다. 책장 한편에 자리 잡은 김연수 컬렉션의 <여행할 권리>를 꺼내든다. 작가 김연수가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의 국경을 넘은 발자취가 담긴 산문집이다. 일본 토오꾜오(출판사 창비에서 펴낸 이 책의 표기다)부터 미국 버클리까지, 취재차 들리기도 하고 초청을 받고 몇 달 머문 곳도 있다.


열한가지 에피소드 중 몇 개를 기분에 따라 골라 읽다보면, 뿔난 마음은 어느새 간 데 없다. 하루 전날 픽업 서비스를 신청하고서, 중국 옌지공항에 저자를 데리러 나온 민박집 주인이 “환영. 서울 김연수 사장님”이라고 쓰인 종이를 흔드는 장면은 피식피식 웃음을 짓게 한다. 김사량의 자취를 쫓아 간 중국 후뻬이성에서 저자가 떠올리는 김수영의 표현(작가는 경계선 주변에서 경계선을 “온몸으로 조금씩 밀어대는” 자)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밑줄을 긋게 만든다.


시간 순으로 나열되어 있지 않아 들쭉날쭉 페이지를 펼치지만 마지막 장은 매번 다시 읽는다. 저자는 언제라도 자신을 매혹시킬 공간으로 공항을 언급한다. 다른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이 공항을 찾게 만들지만, 공항 바깥에 발 딛기 위해서는 여권이 필요하다. 이렇듯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역설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다보면 내가 느끼는 갈증이 뭔지 되묻게 된다. “우리에게 오직 질문하고 여행할 권리만이 있다”는 저자의 말이 설렌다면 그건 월경과 지평을 가리키기 때문이라 믿는다. 경계를 넘고 그 경계에서 다른 세계를 보는 일이 단지 작가의 일만이 아닐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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