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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방송 되찾으려는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파업에 참여한 당신에게 힘이 되고 싶은 가족의 마음

한국기자협회2017.10.11 14:08:11


양대 공영방송 파업이 6주차에 접어들었다. 경영진은 사태 해결은커녕 무책임의 끝이 어디인지 보여주고 있다. 그 사이 과거 정권과 국정원이 방송계 내부자들의 조력을 받아 언론인 사찰과 프로그램 퇴출 등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던 공작이 드러났다. 열흘간의 연휴로 잠시 쉬어갈 뿐 파업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기자협회보는 파업 중인 남편과 아내에게 보내는 가족들의 편지를 싣는다. 가족들은 공정방송을 외치는 남편을 응원하고, 망각한 저널리즘의 꿈을 다시 키워가길 소망하며 이제 막 태어난 아이가 파업 덕분에 더 좋은 세상에서 자랄 수 있기를 염원했다.




이형은씨(김민식 MBC PD 아내)
“우리 아이들에게 사람은 안락한 잠자리와 먹을거리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고, 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칠 수 있어 다행이야.”


예전에 당신이 ‘내조의 여왕’을 연출할 때, 라디오를 틀어도 TV를 켜도 온통 당신 프로그램이 나오고 얘기되니 참 비현실적이다 생각했는데, 요즘 그 데자뷔를 경험하는 것 또한 참 비현실적이야. 출근길에 김현정의 뉴스쇼를 듣고 있으면 당신 얘기가 나오고 또 당신이 출연하고, 회사 사람들이 당신 작품이 아니라 당신의 페북 라이브를 얘기하고 당신을 응원한다고 할 때는, 이 사람이 내가 연애하고 결혼했던 딴따라 김민식이 맞나, 예전 TV 드라마 <브이>에 나오는 외계인들처럼 겉만 김민식이고 속은 파충류가 들어있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어.


생각해보면 그 김민식과 지금의 김민식이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니지. 그 김민식이나 지금 김민식이나 공통점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참 미친 듯이 열심히 한다는 거야. 그 열심히 하고 좋아하는 일이 주식, 부동산 대박이 아니어서 다행이야. 덕분에 집도 없는 무주택자로 살고 진경준이나 우병우처럼 자식들에게 거액의 재산을 물려줄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적어도 아이들에게 사람은 개나 돼지가 아니어서 안락한 잠자리와 먹을거리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고, 이를 위해서는 기꺼이 자기를 던져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으로 우리 아이들은 양심적인 세계시민으로 클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당신이 두 딸의 아버지로, 또 한 여성의 남편으로, 양성평등을 안팎으로 몸소 구현하는 남성이 되었으면 해. 그러려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는 김민식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할 일을 하는 김민식이 되어야겠지. 당신이 힘든 일을 끝내고 몇 달씩 혼자 여행을 다니는 것은 멋있음의 표본이 아니라 부인에게 독박육아를 짐 지우는 일임을 알고 (그러니 두 아이를 둔 워킹맘 부인을 두고 향후 2년 내에 1년간 안식년을 내어 세계여행을 간다는 야무지다 못해 무도한 꿈일랑 둘째가 대학에 갈 때까지 고이 접어두도록 해), 아이를 보러 집에 일찍 들어가야 하는 것은 창피해야 할 일이 아니라 당당하고 자랑스러워야 할 일임을 체화해 낸다면, 당신을 응원하는 82년 김지영들은 바깥에서 보여지는 김민식만이 아닌, 김민식이라는 온전한 인간을 열렬히 응원할 수 있게 될거야. 그날이 온다면 당신은 너무도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되겠지만, 괜찮아. 당신은 동남아 사람처럼 생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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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영씨(최준혁 KBS 기자 아내)
“당신이 꿈꾸던 지난 시간처럼, 누군가의 꿈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마이크를 들 수 있는 날이 오길! 간절히 기도하고 응원한다. 힘내라, 자기야. 사랑한다, 쭌아.”


매년 기념일마다 자기에게 편지를 받으면서, 정작 나는 참 오랜만에 자기에게 편지를 쓴다.
이번 추석 연휴는 참 즐거웠어. 온 가족이 동물원도 가고 맛있는 음식 먹으며 웃음이 넘치는 시간을 보냈었지. 단 하나, 자기가 부모님과 이야기 도중 ‘저 같은 쓰레기를 누가 받아줘요’라고 말한 순간을 제외하고. 아들로부터 그런 말을 듣는 부모님의 마음이 어떨지 어머님, 아버님의 심중이 걱정되면서도 저런 말을 쉽게 꺼낼 수 있게 되기까지 지난 7년이 자기에게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구나 라는 생각에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가난하더라도, 남 보기 부끄럽지 않게 우리 식구 행복하게 살자 했는데, ‘쓰레기’라는 말속에서 남들에게 숨기고 싶던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짓눌린 자존감을 내가 본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다.


24살의 학생 신분으로 만나, 서로가 원하던 꿈을 이루었음에도, 행복하지 않은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보다 자긴 오죽 힘들었을까. 앞이 보이지 않아 불안함이 가득했지만 설렘 또한 가득했던 그때에 비해, 우린 지금 그때보다 안정적인 삶을 살면서도 마음 한편은 더 외로워진 거 같아.


혼수로 해온 TV를 보며 많은 눈물을 흘렸던 아픔의 2014년 봄. 겪은 이도 지켜보던 이도 크나큰 아픔이고, 충격이었기에 어느 때보다 살을 아리는 바닷바람을 맞을 자기가 난 많이 걱정되었다. 슬픔을 겪는 이를 지켜보는 것도 고역임을 자기와 함께 10년을 보낸 내가 누구보다 잘 아니까. 그 후에도, 당신의 이름이 붙은 텍스트가 당신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멍이 되었고, 3년이 지난 지금도 생채기로 남아 주기적으로 통증을 호소하는 자길 보면서… 살아갈수록 사는 게 무섭고 어렵다는 어른들의 말씀들이 떠오른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른 선택이 있었을까 라는 내 질문에, 속상함과 슬픔으로 가득했던 자기의 눈빛은 나만이 알겠지.


트렌치코트에 온 마이크를 들고 있던 방송기자를 보며 꿈을 키웠던 자기. 자기가 좀 더 공부를 잘했더라면, 지금의 우리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결국에는 기자가 되었을 거라며 농담처럼 진심을 보이는 자기. 그토록 간절했고 갈망했던 기자가 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나 또한 뛸 듯이 기뻤는데…(실제로 전화통화 받으며 폴짝폴짝 뛰었단 건 비밀!) 생각과는 너무도 다른 현장 모습에 연거푸 좌절을 거듭하고 자신을 부정하는 지금의 모습이 된 거 같아서 정말 우리 모두에게 좋은 직장인지 의심이 들 때도 있었어. 당신도 참 꿈 많고 자신감이 가득했던 20대 청년이었는데 말이지.


다시 24살의 설렘을 품을 수 있는 기자가 되길! 좌절이 아닌 보람을 맞볼 수 있는 일터가 되길! 내일은 더 행복해라~ 주문을 외울 당신이 되길! 당신이 꿈꾸던 지난 시간처럼, 누군가의 꿈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마이크를 들 수 있는 날이 오길! 간절히 기도하고 응원한다. 힘내라, 자기야. 사랑한다, 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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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일씨(변예린 KBS 엔지니어 남편)
“할 수만 있다면 나도 함께 파업을 하고 싶다. 나 역시 정의롭지 못한 언론에 몸담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언론은 스스로 바로 서며, 불의한 자들을 솎아내는 힘이 있다는 걸 이번 파업을 통해 증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낯선 낯선 여자의, 낯선 향기의, Yes! I want some (손바닥 휘저으며) new face!!”
싸이의 강렬한 비트가 임신 36주차의 볼록한 배를 요동치게 한다. 아빠의 대화 요청에도 요지부동이던 태아는 좀 더 신나는 소리에 격렬하게 호응했다. 요즘 핫한 워너원의 ‘에너제틱’이라는 곡도 꽤 반응이 좋다. 아빠의 심금을 울린 윤종신의 ‘좋니’는 영 신통치 않고. 이런 데이터를 종합해 볼 때 흩어지면 죽는다고 호소하고, 동지들의 투쟁심을 고취하는 노동가들은 좋은 태교 음악이 되리라.


아내는 출산을 한 달 정도 남겨놓고 파업에 뛰어들었다. 임신 초기에 혼절을 두어 번 할 정도로 임신 후유증도 매우 심했던 아내. 임신 전에 튼튼했다고는 하나 소화불량과 만성피로, 체력 저하로 하루하루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람 많은 곳은 어지럽다고 해 집회 현장에 가는 것도 걱정, 크고 격정적인 노동가에 우리 ‘키키’를 놀라게 하지는 않을까 걱정, 그렇다고 이런 저런 이유로 파업에 참여하지 않으면 남 얘기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재료가 되지 않을까 걱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간섭할 수 없었다. 모든 선택은 아내의 몫이었기에.


아내의 인생은 아내의 것이다. 그녀는 34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삶의 여정 속에 가족이나 친구의 조언을 통해 길을 탐색할 순간은 있겠지만, 누군가에 의해 강압적으로 결정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파업은 아내 회사의 일이고, 직장 동료들과 연관된 일. 아내 인생에서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영역의 일을, 아내와 아기의 건강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게 되면 혼자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들 하지만, 꼭 족쇄를 차고 살아야 한다는 뜻도 아니지 않은가. 나는 아내의 인생에 마이너스가 되는 결혼 생활을 안겨주고 싶지 않다.


이렇게나 방목(?)할 수 있었던 건 아내의 성격 덕이다. 아내는 긍정적이고, 합리적이며,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 아래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 모습에 반해 나를 거둬 주십사 고백했고, 그러한 믿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여기에 맞춰 생각해보면 파업을 하더라도 아내 자신과 아기에게 무리가 갈 일은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굉장히 쿨한 척 하고 있지만, 인간적인 의구심도 들기는 했다. ‘거절할 수 없어서, 혹은 분위기에 휩쓸려 건강에 해가 될 만한 일을 하지는 않을까?’라고 말이다. 원래 옛날부터 투쟁은 밖에서 구호 외치는 사람의 몫, 걱정은 집에 있는 사람의 몫 아니었는가. 곧 태어날 키키는 파업 덕분에 더 좋은 세상에서 자랄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지켜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사실 할 수만 있다면 나도 함께 파업을 하고 싶다. 나 역시 정의롭지 못한 언론에 몸담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나흘 뒤, 나는 KBS 아침 프로그램의 리포터로 팽목항 현장에 있었다. 6시9분 정도에 현장 리포팅을 해야 했는데, 신기하게도 내 손에는 대본이 쥐어져 있었다. 바로 옆 방파제 끝자락에서는 실종자 가족들이 목 놓아 울부짖고 있는데 나는 현장에 한 번도 와보지 않은 사람들이 내려보낸 원고를 외우고 있었던 거다. 정의도, 예의도, 책임감도 모두 사라졌던 그 순간. 그때의 기억 때문에 나는 아직도 세월호 기사를 보면 심장이 두근거린다. 죄인이니까.


언론계에는 나 같은 죄인이 많을 거다. 이런 죄인들이 죗값을 치르는 유일한 방법은 언론을 바로 세우는 것밖에 없다. 언론인들 스스로 권언유착도 아닌 권언일체였던 암울한 시대를 청산하고 기사다운 기사를 쓸 때 독자와 시청자들은 다시 신뢰를 보내주지 않을까. 또한 언론은 스스로 바로 서며, 불의한 자들을 솎아내는 힘이 있다는 걸 이번 파업을 통해 증명해서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엔딩을 Fade가 아닌 Cut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언론인들이 애를 쓰고 있을 것이다. 명절에 가족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파업 때문에 타박을 들은 분도 계실 거고, 얄팍해진 월급봉투에 한숨이 깊어진 분도 많으실 거다. 회사 밖에서 제대로 된 응원 한 번 받지 못하고 투쟁하는 분들이 훨씬 더 많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이 길을 걷고 계신 모든 언론인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아울러 몸이 무거워서 파업에 더 열심히 참여하지 못해 아쉬워했던 아내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싸이 노래처럼 new face 사장과 이사장의 등장을 기대하며,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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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미씨(최건일 KBS 기자 아내)
“지난 9년의 썩은 곳을 도려내려 이 사람, 동료들과 함께 다시 또 강하게 부르짖는 것 같다. ‘퇴진 고대영! 해체 이사회! 다시 KBS!’ 나도 함께 외친다. ‘다시 KBS, 국민의 방송으로!’”


영화 ‘공범자들’에서 경찰에 끌려 나오는 남편을 봤다. 2008년 여름, 여느 해처럼 무더웠다. ‘저렇게 바닥에 뒹굴었구나’. 8월8일 그 날의 모습을 처음 눈으로 확인했다. 찢어진 양복바지 가랑이를 부여잡고 땀에 절어 집으로 기어들어 온 사람. 무슨 사고를 친 거냐며 다그쳤던 그때의 난 참 순진했다. 각자 일하고 공부하고 아이 키우며 버둥대던 시기라 그 일은 한참 혈기왕성함이 넘쳤던 수많은 사건들과 함께 흐릿해져 갔다.


2012년 봄은 아란이와 함께 쑥덕쑥덕 대던 나날들이었다. 아빠와 동료들이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뉴스를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 함께 촛불에 대고 소원을 비는 것이라 했었다. 예쁜 색깔의 파업돗자리를 고르고 촛불을 들고 ‘김인규 아웃’을 외쳤다. 동네 조기축구회 복장으로 1인 시위 나가는 아빠를 보고 배는 좀 들어가겠네라며 키득키득 거렸다. 100일 가까운 파업에 생활비가 쪼들렸지만, 함께 마주하고 보내는 저녁 시간이 길었던 만큼, 행복하기만 했다. 백일동안 달콤한 꿈을 꾼 듯한 기억으로 남았다. 적어도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3년 전 봄, 라일락 향기로 기억에 남은 밤. 아린이를 재우는 데, 순간 눈이 마주쳤었다. 눈이 정말 바다처럼 깊고 맑아서 더 이상 바라볼 수가 없었다. 눈을 감고 기도를 시작했다. 그리고 함께 잠이 들었다. 2014년 4월16일. 6년간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 같은 그 전의 일상들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꽤 오랫동안, 잠들기 전 나의 기도는 세월호의 아이들만을 향해 있었다.


무기력함은 계속될 것 같았지만, 그래서 모두들 힘을 내고 있었던 것 같다. 지난 연말의 촛불은 우리 가족의 마음을 그렇게 따뜻하게 어루만져주었다. 썩은 곳은 도려내고 상처는 치유해야 함을 한겨울 내내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 9년의 썩은 곳을 도려내려 이 사람, 동료들과 함께 다시 또 강하게 부르짖는 것 같다. “퇴진 고대영! 해체 이사회! 다시 KBS!”
나도 함께 외친다 “다시 KBS, 국민의 방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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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련씨(이필희 MBC 기자 아내)
“훗날 ‘상식과 공감’이 통하던 예전의 MBC가 되었을 때 여러 조합원들과 남편이 겪어야 했던 노고와 노력의 결과를 아이들이 자랑스럽게 기억하길 바란다.”


MBC 파업이 한창이던 2012년, 보도국 뉴스편집부 AD로 있던 나는 퇴근길에 보도본부장을 향한 시위를 목격했다. 다음 날 MBC 뉴스의 톱기사는 조합원들이 본부장을 폭행했다는 거짓뉴스였다. 현장에 있었던 나로서는 ‘무려 MBC’에서 사실이 아닌 기사가 흘러나왔다는 게 대학원 진학의 계기가 될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파업에 동참한 남편을 둔 아내이자 두 아들의 엄마로 파업을 맞이하게 되었고,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가고 있다. MBC에 소속된 조합원이 아닌 입장에서 남편의 파업에 대해 객관적일 수도, 주관적일 수도 없다. 하지만, 5년 전 파업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MBC의 현실은 생계의 책임감을 뒤로한 채 ‘공정방송’만을 외치는 남편을 응원할 수밖에 없게 한다.


남편의 파업은 세 살 아들과 이제 갓 백일이 지난 아이를 함께 보살피는 일, 소소한 가사일에 도움이 되는 여유도 있긴 하지만 야속하게 빨리도 지나가는 시간 앞에 씁쓸한 미소를 짓게 하기도 한다. 월급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사라졌고 마이너스 통장에 의지하며 넉넉하지 못한 추석을 보내야 하기도 했다. 더불어 파업 후에도 월급은 돌려받지 않는다는 사실도 주위에 설명해야 했다.


이 모든 것들이 쉽지 않지만 항상 응원하고 힘이 되는 반려자가 되고 싶은 것이 모든 파업에 동참한 가정의 마음이겠거니 생각해본다. 훗날 ‘상식과 공감’이 통하던 예전의 MBC가 되었을 때 여러 조합원들과 남편이 겪어야 했던 노고와 노력의 결과를 우리 아이들이 자랑스럽게 기억하길 바라며,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빼앗긴 남편과 자기 자리에 있지 못하고 있는 모든 분들이 자기 자리를 찾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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