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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감이 교차하는 키덜트 본능

[그 기자의 ‘좋아요’] 김중배 연합뉴스 기자

김중배 연합뉴스 기자2017.09.20 13:53:43

▲김중배 연합뉴스 기자

“이건 최고급 전문가용이에요. 5만XXX원입니다. 그리고 이건 보급형, 초보자용이에요.”
‘당신이 이런 것을 알기나 하겠느냐’는 듯한 점원의 눈길이 맞부딪히자 나는 슬며시 눈길을 떨궜다. 그러나 오기가 발동한다. 그 순간 마치 눈앞에 날아든 것 같이 떠오르는 아내의 눈총. 충동을 억누른 어조로 한발 물러선다. “보~급형으로 주세요.”


내가 구입한 ‘니퍼’란 도구는 주로 군사무기나 각종 탈 것, 로봇 등의 정밀 플라스틱 모델을 만드는 데 쓰이는 칼과 같은 도구다. 이와 함께 접착용 액체, 그리고 일본 타미야 사의 ‘토요타 86’ 스포츠카 조립 모델이 봉지에 담겼다. 네 살난 아들이 부쩍 자동차를 찾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나 자신을 위한 구매임을 나, 심지어 아내도 안다.


아들과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내 ‘키덜트’로서의 본능도 꿈틀꿈틀 되살아났다. 어렸을 적 세 살 터울 동생과 참으로 많은 프라모델을 사서 조립하고, 놀고, 소장했다. 무수한 역할 놀이 속에서 ‘선’과 ‘악’의 대결을 배웠고, 지혜와 술수를 익혔다. 그건 하나의 거대한 ‘세계’였고, 우리만의 ‘우주’였다.


어렸을 적, 일제 프라모델은 동경하는 대상이었을 뿐 우리의 꿈을 충족시켜준 건 토종 브랜드 아카데미과학이었다. 지금의 아련한 기억으로도, 조잡한 장난감이 판쳤던 우리 열악한 장난감 시장에서 아카데미과학은 특별했다. 물론 독창적이진 않았다. 그러나 품질 면에서 타협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한국에선 다시 프라모델 열풍이 불지만, 안타깝게도 일제 반다이와 타미야가 양분한 시장이 되어버렸다. 물론 아카데미과학의 명맥도 끊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독창적 영역을 개척하지 못한 채 규모도 쪼그라들어 과거에 비해 초라한 모습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프라모델 키드’에겐 안타까운 일이다. 매장 가득 쌓인 일제 프라모델들 한켠에는 여전히 아카데미과학의 제품 몇 개가 진열돼 있다. 여전히 독창적이지는 않아 보였고, 구박받는 며느리처럼 구석배기 신세다. 서운함과 상실감이 묘하게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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