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레기' 평판 자초…이런 식이면 언론 생명 끝나

임금과 평판으로 본 기자사회(2)
권력·재벌 감시하는 선망과 동경의 '엘리트 집단'
언론 신뢰도 하락과 함께 냉대받는 '기레기' 전락
사회적 약자 배려하는 언론 본연의 역할 회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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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도 있고 여유도 있었던 시대
“그 땐 낭만도 여유도 있던 시대였다.” 통신사 고참급 G기자는 초년병 시절의 기자 생활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치열한 보도 경쟁은 비슷하다”면서도 “취재원과의 네트워크, 출입처에서의 대우, 업무량 등 많은 부분에서 과거와 지금은 너무도 다르다”고 했다.


어떻게 얼마나 달랐을까. 기자라는 직업을 바라보는 사회적 동경과 선망부터 달랐다. 말 그대로 ‘가오’가 있었다. A기자는 “1988년 대학원 시절 교수가 ‘지금 대한민국의 가장 엘리트는 언론사에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며 “1987년 민주화가 이뤄지고 난 후에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중반까지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동경이 꽤 컸다. 기자는 정의를 실현하고 권력과 재벌을 감시한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말했다.


경제지 B기자는 당시 기자라는 직업의 평판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과는 달리 신문방송학과 학생들은 일단 기자가 되고 싶어 했고 그게 안 되면 광고회사, 또 그게 안 되면 대기업 순으로 취직했다. 행정고시나 사법고시 합격자보다 그 해 메이저 언론사에 뽑히는 취재기자 수가 더 적었다.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고 그만큼 기자라는 직업의 희소성이 컸다.”


이 같은 평판은 기자, 언론이 지닌 사회적 위상과 무관치 않았다. 기자가 ‘정보의 독점력’을 갖고 있었던 시절. 출입처에서의 대우 역시 지금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종합일간지 30년차 H기자는 “옛날엔 포털 사이트도 없고 언론사 파급력이 컸던 때라 취재원이 먼저 접근했다”며 “경찰서를 출입해도 먼저 다가와서 술사고 어떻게든 우릴 이용하려고 했다. 기자가 다가가도 경계하고 말도 안 해주는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다”고 말했다.


당시 전통매체의 파급력, 아니 기자의 파워는 과거 미디어 이용시간에서도 드러난다. 언론재단의 ‘2016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서 1993년 텔레비전과 종이신문의 이용시간은 각각 172분과 42.8분이었으나 2016년 현재 TV는 22.2분 줄어든 149.8분, 종이신문은 10분이 채 안 되는 6.5분을 기록하고 있다. 종이신문 열독률 역시 1996년 85.2%에서 2016년 20.9%까지 가파른 하락곡선을 그린다. “(지상파 중 후발주자였던) SBS 뉴스만 해도 평균 시청률이 15%에 육박했던 때”와 지금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기자=기레기’가 된 시대
길게는 30년, 짧게는 15년 전 기자들이 받았던 사회적 존경과 대우, 언론에 대한 신뢰는 그러나 지금 현재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 됐다.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인 ‘기레기’가 고유명사가 되어 가는 시대. 기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급속도로 차가워졌다. 언론재단이 영국 옥스퍼드 대학 부설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와 공동 작업한 ‘디지털뉴스 리포트 2017’에 따르면 특히 우리나라 뉴스 신뢰도는 조사 대상 36개국 중 최하위였다.


평판의 하락을 드러내는 지표들은 많다. 일단 청소년들에게 기자는 더 이상 되고 싶은 ‘무엇’이 아니다. 교육부의 ‘진로교육 현황조사 2016’에 따르면 초등·중등·고등학생의 희망 직업에서 기자는 찾아볼 수 없다. 복수응답을 허용한 학부모의 자녀 희망 직업 상위 50개 중 겨우 49위에 들었을 뿐이다. 30년차가 넘은 지상파 I기자는 “당장 대학에서 언론고시반이 없어진다고 교수들이 말한다. 여건이 악화되고 평가도 별로라는 걸 학생들도 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사회 내부에서도 사기저하가 감지된다. 기자협회보가 기자협회 창립 53주년을 맞아 지난 1~4일 전국 기자 3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기자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응답은 37.5%에 불과했다. 또 42.6%가 언론사가 아닌 타 직장으로 전직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 스스로 초래한 평판 하락
왜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기자들로선 언젠가는 겪을 수밖에 없었던 시대와 환경변화의 수순이라는 측면도 있다. 기자들의 배타적인 정보 접근권이 허물어지는 순간에 도달한 것. 우리나라에선 2005년을 그 결정적 시점으로 볼 수 있다. 당시 노무현 정부가 신문법을 개정, 등록요건을 완화하면서 인터넷신문사의 증가가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2005년 286개에 불과했던 인터넷신문은 2010년 2484개로 늘었고 지난해 말 기준 6360개에 달한다. 이에 따라 1997년 7484개에 불과했던 정기간행물 수 역시 당시에 비해 248% 늘어난 1만8563개 수준이다.


언론계 관계자 J씨는 “예전 한 대선후보가 ‘요즘엔 고대 나와서도 기자합니까’라고 얘기했다는 말이 있지 않았나. 진위여부를 떠나 전엔 기자 위상이 ‘판검사’ 아래 급이었다는 얘기”라며 “그런데 2005년 이후 매체가 우후죽순 늘어나고, 기자가 쏟아지면서 양이 질을 담보하지 못하게 됐다. 어느 직종이든 숫자가 많고 경쟁이 치열하면 사회적 평판이라는 것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로 엄청난 경쟁은 정보의 질적 수준을 현저히 떨어트렸다. I기자는 “기자들이 워낙 많아지다 보니 정부 관리라도 장관이나 차관, 국장급을 상대하던 것이 이제는 과장이나 사무관 등 실무자들을 상대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면서 “취재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그날그날 브리핑이나 발표자료 등 발생 기사를 좇는 경향이 커졌다. 자연히 현장 확인이 줄어들고 언론에 대한 불신 역시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디어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현상만으론 지금 나락으로 떨어진 언론에 대한 평판을 모조리 설명하긴 어렵다. 사실 상당수 이유는 언론 스스로 초래한 측면이 크다. 정치권력과의 결탁이 단적인 예다. 30년차가 넘은 지상파 K기자는 “언론사에서 고위직에 오르고 경영진 사장으로 입신해 정권에 부역한 이들이 그 증거”라며 “언론의 덕목을 배신하고 감시·비판해야 할 대상에 충성하는 이들 때문에 기자들이 ‘기레기’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말했다. J씨는 “2008년 MB정권의 출범이 언론위상 하락과 밀접하다고 본다”며 “‘낙하산 사장’을 내려보내면서 공영방송 보도가 이상해진 게 국민적 인식이 안 좋아진 결정적 계기”라고 했다.


자본권력에의 종속 역시 마찬가지다. 종합일간지 15년차 L기자는 “기자들에게 기대하는 윤리 수준은 높은데 그에 비해 언론사는 생존과 수익이라는 미명 하에 자본에 굴복한 것이 한두 해가 아니다”라며 “최근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만 봐도 알 수 있듯 기자들이 기업을 상대로 비굴하게 영업이나 청탁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B기자도 “60~70년대 기자들 월급이 적었을 때도 기자들이 기업을 상대로 영업을 했지만 지금은 아예 영업이 제도화돼 있다는 게 달라진 점”이라며 “후배들 부장 승진에 영업 실적이 중요 요소인 게 지금 언론의 모습”이라고 했다.

우회로는 없다
경제적 대우와 평판 두 축 모두 무너져 내린 곳에서 기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언론사들은 그런 기자들이 무엇을 하도록 해야 할까.


I기자는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통제에서 벗어나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며 “탐사보도를 강화하고 성역 없는 취재를 통해 권력에 대한 감시 기능을 살려야 한다. 또 여론을 제대로 반영·수렴하는 공론장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 언론의 평판을 회복할 수 있다”고 했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답이다. ‘언론의 본령’에 충실해야 ‘신뢰회복’이 된다는 것. 우회로는 없다는 말이다. 전제는 그동안 그러지 못했다는 것. 다만 기자들만의 힘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언론사들 역시 이를 기조로 기자들을 도울 필요가 있다. 기업의 평판에 관한 연구들은 당위의 차원이 아닌 이익의 관점에서 ‘평판’을 무형의 자산으로 간주한다. 언론사라는 기업의 ‘평판’은 ‘뉴스’와 직결된다. 이런 측면에서 단기 이익을 위한 ‘엿바꿔먹기’나 ‘보도누락’ 등은 결국 장기적으로 언론사에 해가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볼 수 있다.


K기자는 현재 언론상황에 대해 “참담하다. 진짜 참담하다. 나이든 사람들이 정말 미안한 일, 못난 작태를 보인 것”이라며 “이런 식이라면 언론 생명은 끝난다. 후배들의 절치부심을 부탁한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제 할 일을 못하거나 안 하면 그 빈틈을 다른 사람들이 대신하게 된다. 역할전도의 시대라는 말이 있다. 대다수 언론이 입을 다물면 정치가나 시민단체, 아니면 일반 시민 등 기자가 아닌 사람들이 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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