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 얇아진 월급봉투…물가상승 못 따라가

임금과 평판으로 본 기자사회(1)
호황 누리던 언론산업, IMF 직격탄에 매출 반토막
회복 기미 보이다 다시 사양세…임금도 동반 하락
'무관의 제왕'에서 '돈'도 '가오'도 없는 직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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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수갑 차고 다니면서 가오 떨어질 짓 하지 말자.”
지난 2015년 개봉한 한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재벌 3세의 범죄혐의를 좇는 정의감 넘치는 형사 캐릭터가 하는 말이다. ‘돈’과 ‘가오’란 무엇인가.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경제적 대우와 사회적인 평판·자긍심 정도가 아닐까. 나아가 많은 경우 이 두 요소가 생활인으로서, 직업인으로서 개개인이 사회적으로 맺는 관계의 총체, 그 자체가 된다는 걸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지금 여기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선 바로 그 토대의 흔들림이 감지된다. 앞선 대사에서 ‘수갑’이란 단어만 ‘펜’이나 ‘마이크’로 바꾸면 전혀 거리감 없이 대치되는 바로 그 직업. 한 때 ‘판검사 다음’이고, ‘무관의 제왕’이란 평가를 받던 이 일은 지난 25년 간 사회변화와 언론계의 부침 가운데 현재의 위상에 다다랐다. 경제적 대우는 날로 안 좋아지고, 평판은 ‘기레기’로 대표된다. 2017년 대한민국에서 기자는 ‘돈’도 없고 ‘가오’도 없는 직업이다.


언론의 위기는 필연적으로 언론인의 위기를 가져온다. 그 원인이 산업적 문제든 기술의 측면이든 신뢰의 차원이든 현실은 정확히 이 궤에 놓여 있다. ‘돈’과 ‘가오’라는 두 축의 흔들림은 기자가 공동체 구성원으로 역할하는 최소한의 조건이 무너짐을 의미한다. 이 붕괴는 대지로 뛰쳐나가 업계의 미래를 짊어져야 할 젊은 기자들의 지평을 발밑까지 좁혀온다는 점에서 특히 위험하다. 업계 등의 근원적인 반성과 대책이 요구된다. 그 시작은 현실에 대한 직시다.

25년간 기자들 호주머니엔 무슨 일이 생겼나
지난 25년 간 우리나라 주요 언론사의 1인당 실질 평균임금(직원 1인당 평균임금에 소비자 물가지수 변화를 반영해 계산한 임금)이 지속 감소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자협회보가 지난 1991년부터 2016년까지 주요 종합일간지 9개사(경향, 국민, 동아, 서울, 세계, 조선, 중앙, 한겨레, 한국)와 지상파 방송사 2개사(MBC, SBS) 등 총 11개 언론사의 직원 1인당 실질 평균임금을 분석한 결과다.



분석결과 1991년 이들 언론사(방송사 제외)의 1인당 평균임금은 2643만원으로 현재 가치(2016년 기준) 환산 시 6019만원에 달하는 연봉이었다. 이후 실질 평균임금은 1996년 7520만원(환산금액, 당시 임금 4282만원)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2001년(이후부터 지상파 2사 포함) 6299만원(4323만원), 2006년 6562만원(5212만원), 2011년 6262만원(5874만원)으로 출렁이며 크게는 하향 곡선을 그렸다. 2016년 1인당 평균임금은 6171만원이었다.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1990년대는 언론산업의 전성기였다. 1980년대 들어 호황을 맞은 언론사들은 1997년을 전후로 IMF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게 된다. 당시 반토막난 매출이나 급여, 구성원수 등이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이후 2002년 월드컵 등 호재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언론사들은 안정기에 접어든다. 다만 지속 감소 추세의 안정이다. 명목임금은 상승했지만 물가 상승분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도 일관된 경향이다. 지상파 26년차 A기자는 “DJ정부 들어서고 어려움이 오래가진 않았다. IMF때 나간 사람도 있고 주춤했지만 바로 회복했다”며 “월드컵 때가 월급 피크였다. 이후엔 떨어졌고, 대기업에 월급이 역전된 게 2000년대 중반 쯤”이라고 했다.


평균임금 변화를 통한 신문과 방송산업의 역전은 2000년 초중반을 전후해 확인된다. 매출액 1000억원 이상의 신문사와 방송사 평균임금을 비교하면 2001년만 해도 신문사가 방송사보다 400여만원이 많았다. 하지만 2006년 조사에선 방송사가 신문사보다 오히려 800여만원이 많아졌다. 이후 그 차이는 1500~2000만원 차까지 벌어졌다.

타 업종과 비교해도 하락세 뚜렷
언론산업의 사양세는 시간축을 통해서만 확인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다른 업종과 비교해도 좀 더 가파른 하강세가 보인다. 기업분석 업체인 ‘재벌닷컴’이 기자협회보와 동일한 방법으로 산출한, 업종별 평균임금으로 순위를 매긴 과거자료와 비교하면 언론산업의 랭킹은 최근 5년 간 계속 떨어졌다.


지난 2012년 재벌닷컴이 약 2000여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에 기자협회보가 산출한 해당년도 평균임금을 대입, 순위를 매기면 주요 언론사 11개사의 평균임금은 40개 업종 중 17위(5669만원)를 차지한다. 그 해 평균임금 1위부터 3위까지의 업종은 각각 자동차업(8046만원), 정유업(7883만원), 은행업(7466만원)이었고, 평균임금이 가장 박한 업종은 여행업(3084만원)이었다. 2014년 자료에 같은 방식으로 위치시키면 이들 언론사는 20위(5756만원)에 놓인다. 지난해(2016년) 이 순위는 22위로 떨어졌다.


실제 기자들의 체감은 좀 달랐을까. 기자들은 실제로 이 같은 경제적 대우의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경제지 30년차 B기자는 “우리만 하더라도 입사 초기 딱 수습 끝났을 때 봉급이 72만원이었다. 당시 삼성에 공채로 들어간 동기가 월급이 50만원이었으니 내가 40%는 많았다”며 “지금은 내가 절반도 안 된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방송사 25년차 C기자는 “지역신문도 예전엔 나쁘지 않았다. 급여도 영향력도 괜찮은 수준이어서 지방대 뿐 아니라 ‘SKY’ 출신도 많이 왔다”며 “지금은 지역 메이저라고 하는 곳들도 20년차 기자 연봉이 5000만원이 안 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지상파 14년차 D기자 역시 “대학 친구들과 입사가 비슷해도 내가 술을 사고 했는데, 나 정도 연차만 돼도 이젠 비슷하거나 역전된 수준”이라며 “정년이 보장되니 멀리봐 나을 수 있지만 지금 거기까지 갈 수 있을지 장담을 못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봉급이 많다는 것도 노동시간이 많아 수당 때문에 착시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10년은 일해야 진급 한 번 하는 언론사 특성도 기자가 임금 상승분이 낮은 이유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실종된 언론 비전…젊은 기자들 암울
언론계가 더 이상 젊은 기자들과 기자 지망생들에게 매혹적인 분야가 되지 못한다는 건 업계 미래가 달린 문제다. 언론사는 무엇으로 젊은 기자들을 유혹할 수 있나. 적어도 돈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온라인 기업정보 서비스 ‘크레딧잡’에 따르면 2016년 지상파 3사와 종합일간지 9개사(앞선 조사에 KBS 포함) 입사자 평균연봉은 3925만원(세전)이었다. 3552만원(세계)부터 5198만원(SBS)까지 범위였다. 월별 인원 변경이 없을 경우의 추산 등으로 한계가 있지만 국민연금 역산을 통한 계산 방식 때문에 입사자 연봉은 비교적 정확한 것으로 평가되는 자료다. 그런데 지난해 또 다른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그해 대졸 신입 초임을 확정한 국내 500여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대기업(207개사) 입사 평균연봉이 3893만원이었다. 실제 연봉을 추정·조사한 결과가 이 같은 만큼 언론계가 젊은 기자들에게 충분한 경제적 대우를 해주는 업종이라 보일 수도 있지만 이는 현실과 거리가 있다.


조사대상으로 삼은 신문방송사는 전체 언론사 중 최상급의 대우를 받는 업계 ‘톱20’급 회사 중 일부다. 언론계 전체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의미다. 언론재단의 ‘2016 신문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기자직 종사자 2만5951명 중 1만959명이 인터넷신문사 소속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6년 말 기준 정기간행물 등록현황을 봐도 인터넷신문이 6360개로 전체(1만8563개)의 3분의 1이 넘었다. 이 조사에는 일간·주간·인터넷신문 기자들의 초임에 대한 내용도 포함됐는데 월급 100만원 미만이 25.0%, 100~150만원 미만이 48.1%, 150~200만원 미만이 22.2%, 200만원 이상이 4.7%였다. 즉 업계 상위 4.7% 그룹 중에서도 최상위권을 대상으로 나온 분석이란 뜻이다.


젊은 기자들에게 기자는 과로와 박봉을 견디는 ‘직업’이 된 게 현실이다. 최소한의 ‘직업적 정의감’ 말곤 어필할 수 있는 요소도 없어진 상황. 인터넷신문 6년차 E기자는 “얼마 전 다른 인터넷매체로 이직하면서 월급이 늘긴 했는데 월급날이 가까워지면 매달 빠듯함을 느낀다”며 “비전? 미래? 잘 모르겠다. 다른 생각은 전혀 못할 정도로 바쁘다가 가끔씩 답답해지면 그냥 다 내 탓인 것만 같다”고 말했다.


종합일간지 25년차 F기자는 “불확실성이 확실히 더 커진 게 느껴진다. 환경부터가 달라지지 않았느냐”며 “그땐 열독률이 지금처럼 급감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현재 사람들(고참들)보다 (후배들이) 미래에 대한 고민이 더 클 수밖에 없는 거 같다”고 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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