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군의 시자쥔(習家軍)

[글로벌 리포트 | 중국]예영준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예영준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중국의 최고지도자로 낙점된 건 2007년 제17차 당대회에서였다. 후진타오(胡錦濤) 1기 체제를 마무리짓고 2기 체제로 넘어가는 전환점이었다. 상하이 서기로 있던 시진핑은 리커창(李克强) 당시 랴오닝성 서기와 함께 50대 초반의 나이에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발탁됐다. 중요한 건 서열이었다. 새롭게 진용을 짠 상무위원 명단이 발표될 때 시진핑은 6번째로 호명됐고 리커창은 7번째였다. 후진타오의 뒤를 이을 차기 지도자로 시진핑이 내정됐음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순간이었다. 시진핑은 5년 후인 2012년의 18차 당대회에서 예정대로 서열 1위의 공산당 총서기에 선출됨으로써 중국의 최고 지도자가 됐다.


그로부터 다시 5년, 시진핑 1기를 마감하고 2기 체제로 넘어가는 19차 당대회가 올 가을에 열린다. 관례대로라면 시의 뒤를 이을 50대 나이의 차기 지도자가 정해져 상무위원으로 발탁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그런 예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신 시진핑이 2022년에도 물러나지 않고 집권을 연장할 것이란 관측, 따라서 이번 당대회에선 후계자를 확정하지 않을 것이란 추측이 무성하다. 때문에 당대회가 반년도 채 남지 않았지만 공산당의 차기 구도는 오리무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건 있다. 중국의 미래 지도자는 현재의 지방 지도자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중국의 지도자는 2~3곳 이상의 지방 근무를 통해 수업을 쌓고 능력이 검증된 사람 가운데서 발탁하는 게 불문율이다. 허베이·푸젠·저장·상하이를 거친 시 주석 본인이 대표적이다. 허난·랴오닝을 거친 리커창 총리나 티베트·구이저우를 거친 후진타오 전 주석도 마찬가지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은 상하이 서기 재임도중 최고지도자로 발탁됐다. 따라서 5년 뒤가 될지 10년 뒤가 될진 알 수 없지만 시진핑의 바통을 이어받을 사람은 31개 성·직할시·자치구의 1인자인 당서기나 2인자인 시장·성장 가운데 나올 것이란 예상이 가능하다.


지난 주말 전격 발표된 베이징 당서기 인사가 안팎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파격에 파격을 거듭하며 자신의 측근인 차이치(蔡奇·61)를 베이징 서기란 요직으로 끌어올린 시진핑의 인사 스타일 때문이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광둥성 등 주요 지역의 당서기는 25명으로 구성되는 정치국원급 보직이다. 차이치처럼 205명의 공산당 중앙위원은 물론 그 아래 161명의 후보위원에도 포함되지 않는, 권력서열 367위 이하의 인물이 서기로 발탁된 건 예사 파격이 아니다.


차이치는 대표적인 ‘시자쥔(習家軍·시진핑의 옛 부하 출신 인맥)’이다. 그는 20여 년간 푸젠성에서 근무하다 1999년 저장성으로 옮겨 항저우 시장, 성 조직부장을 지냈다. 1985년부터 푸젠에서 근무하다 2002년 저장성으로 옮겨간 시 주석의 동선과 거의 일치한다. 두 살 차이의 시 주석과는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알려져 있다. 시진핑은 집권 초 차이치를 저장성 부성장으로 승진시킨 뒤 2014년 신설된 국가안전위원회 판공청 부주임으로 발탁해 베이징으로 불러들였다. 중국판 국가안보회의(NSC) 격인 국가안전위의 요직을 관련 경험도 없는 차이치에게 맡겼다는 점에서 시진핑의 깊은 신임을 읽을 수 있다. 차이치는 4년여만에 일개 지방 간부에서 베이징의 1인자로 벼락출세를 했다. 올 가을 당대회에서 정치국원은 따놓은 당상이고 앞으로 5년 뒤에는 상무위원도 넘볼 수 있다.


차이치뿐 아니다. 시진핑은 집권 이후 4년여 동안 31개 성·직할시의 서기와 시장·성장을 차례차례 자신의 측근으로 교체했다. 일찌감치 구이저우성 서기로 발탁돼 지도자 수업을 쌓고 있는 천민얼(陳敏爾·56)이 대표적이다. 시진핑이 저장성 서기일 때 선전부장이던 그는 시진핑의 신문 연재 칼럼 초고를 집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향후 대권을 꿈꿀 수 있는 나이다.


시진핑은 2012년 11월 집권 이후 62명의 지방 서기·성장 중 53명을 바꿨다. 새롭게 서기·성장에 오른 사람 중에는 차이치처럼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도 들지 못한 ‘뉴 페이스’가 21명이다. 이 가운데 대다수가 시자쥔이다. ‘지방 서기·성장=중앙위원 이상’의 등식이 대부분 지켜졌던 중국의 역대 정권에선 유례가 없던 일이다. 시 주석이 그만큼 전례에 얽매이지 않고 새 피를 수혈하는 인사를 통해 자신의 후계 구도 포석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예영준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