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동아일보 논설고문이 펴낸 '박종철 탐사보도와 6월항쟁'.
당시 석간신문이던 중앙일보는 1판을 찍다가 오후 12시10분경 윤전기를 멈췄다. "박종철 군이 경찰조사를 받던 중 숨졌고 경찰은 사인을 쇼크사라고 검찰에 보고했다"는 내용의 2단 기사를 급하게 집어넣고 윤전기를 다시 돌렸다.
하지만 박종철의 죽음은 ‘쇼크사’가 아니라 ‘고문치사’였다. ‘쇼크사’로 묻힐 뻔했던 박종철의 죽음을 ‘고문치사’로 밝혀낸 데는 동아일보의 젊은 사건기자들이 있었다.
당시 법조담당 기자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취재의 중심에 섰던 황호택 동아일보 고문이 ‘박종철 탐사보도와 6월 항쟁’을 펴냈다. 이 책은 저자가 당시 미처 보도하지 못한 사실과 함께 언론 통제 속에서도 진실을 캐기 위해 노력한 기자들의 취재과정이 생생하게 담겼다.
저자는 박종철 사건의 속보를 30년 만에 다시 쓴다는 생각으로 이 사건 진상규명에 기여한 딥 스로트(deep throat·내부고발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보충취재를 했다고 밝히고 있다.
부검에 입회한 의사에게 안기부 수사과장을 사칭해 전화를 걸어 고문이 있었다는 답변을 받아내고, 물고문 의심 발언 기사가 작게 보도되자 윤상삼, 황열헌 등 사건기자들이 회사로 복귀하지 않고 스트라이크를 일으켰던 취재 일화도 흥미롭다.
저자는 "박종철 고문치사에서 6월항쟁을 거쳐 그의 1주기까지 고비고비마다 진실 규명에 기여한 사람들이 많다. 사슬에서 한 고리만 빠져도 체인의 기능이 상실돼 버리듯 그들 중 누구 하나가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민주화는 더 늦어졌거나 더 많은 희생을 치렀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블루엘리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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